게시일: 2022년 5월 1일 |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

비록 이스라엘 국가는 이전에 사사, 선지자, 왕, 그리고 많은 이방의 통치자들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정부 하에 불규칙하게 존재했지만, 1948년에 이스라엘은 처음으로 민주주의로 존재하게 됐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독립적인 민족으로서 기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처음으로 "우리 국민"이 통치하는 현대 국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통치 받는 유대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씨름하게 된다.

때는 1996년 가을, 미국에 본부를 둔 한 기독교 사역 단체가 평화라는 제목의 책 백만 권을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가정에 발송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예슈아의 주장과 약속들을 제시했다.

우린 그런 식으로 사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우 관계 중심적이며, 수천 년간의 박해와 예슈아 이름의 오용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왜 예슈아가 실제로 그들의 메시아인지 그리고 조상들이 십자군에 의해 살해되기 보다는 기독교로 개종했어야 했는지를 설명하고자 익명으로 책을 보내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몰이해로 말미암은 행동이다.

예상 가능하게도, 초정통파인 하레디 공동체는 이 책들을 불태우고 총리의 집 앞에서 쇼파르를 불면서 격분 상태의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내 메시아닉 공동체에 대한 보복 위협이 쏟아졌고, 텔레비전과 신문 모두 이 소동을 광범위하게 보도했다. 1997년 새해 직전, 이스라엘의 가장 큰 신문은 "종교 재판이 이미 이 땅에 침투해있다!"라는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실었다.

처음에는 그 기사가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을 강제로 개종시키기 위해 오고 있다고 경고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이스라엘 기자는 사실 이스라엘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다가올 일들을 경고하고 있었다!

기사는 정부가 모든 "선교적" 자료의 인쇄와 배포를 금지하는 새로운 법안에 대한 제의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정통파 유대교가 정의하는 "선교적 자료"는 메시아 예슈아의 이름을 전파하는 모든 것이었다. 기사는 이어 "니씸 쯔빌리, 모셰 가프니 크네셑 의원의 새로운 입법안은 종교를 바꾸려는 모든 형태의 강요를 포함하는 출판물을 소유하거나 인쇄, 복사, 배포 또는 수입하는 사람은 누구나 징역 1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사전에서 "강요"는 메시아의 대속을 통해 죄 사함을 받는 것과 같은 모든 유익에 대한 약속을 의미할 수 있다.

놀랍게도, 쯔빌리와 가프니는 21대 7의 표차로 크네셑 위원회를 통한 법안 심의 예비 독회를 빠르게 통과시켰다. "사설법"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4번의 추가 독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심지어 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사실에만도 소수의 이스라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식겁했다. 이 법은 활동을 하는 모든 이스라엘 신자들을 범죄자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약 성경 소지 죄로 징역 1년?

비평가들은 이 법안이 교묘하게 크네셑을 통과한다면, 단 하루 만에라도 실제로 법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법이 실행될 경우 전체적인 파장을 이해한 언론인 므낰헴 벤은 용감하게 이 법이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범죄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예슈아에 대한 예우를 갖춰 글을 쓰는 세속 이스라엘 작가들에게도 악의적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다소 열정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는 독자들에게 "신약은 세계의 일부 문화권에서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신약을 읽는 것이 법으로 금지될 것"이라고 상기시켰다.

벤은 이례적으로 직설적이었다. "[정통파는] 민주주의와 양심의 자유, 즉 여러분이 믿고자 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에 대해 점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금지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연합!

이 법안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우리는 너무 터무니없어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일탈, 즉 단순한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민주주의적이고 서구 지향적인 국가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곧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과 아랍 신자들 사이에 심각하도록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용어는 모호하고 광범위했다. 어떤 종류의 자료가 언급되었는지, 어떤 종류의 "소유"가 불법이 될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불쾌감을 주는 자료의 "배포"에는 개인적인 편지와 선물이 포함될 수 있었다. 심지어 말로 전하는 것도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경찰은 집을 수색하고, 문헌을 압수하고,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괴롭힐 권리를 갖게 될 것이었다. 범법자들은 감옥에 가게 될 것이었다.

1997년 3월, 크네셑 전원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독회를 통과시켰다.

메시아닉 유대인 공동체가 행동에 나섰다. 사상 처음으로, 사실상 모든 이스라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모여 이 법안에 대항할 방법에 대한 하나님의 방향을 모색했다. TV에서 이 법안의 토론이 방송될 동안, 일부 정통파 의원들은 향후 이스라엘 내의 모든 메시아닉 단체와 활동을 금지할 더 강력한 법을 제정할 계획을 제안했다. 그러한 법안이 만들어지면, 예슈아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국가 주도의 조직적 박해의 초석이 될 수 있었다.

텔아비브 지역의 유대인 목사 바뤀 마오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기 위해 메시아닉 리더들의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우리는 기도할 뿐 아니라 투쟁 행동을 할 것이었다. 그렇게 메시아닉 행동 위원회(Messianic Action Committee)가 구성되었다. 각각 독특한 관계와 연줄을 가진 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전체 메시아닉 공동체에 다양한 인구 통계를 제공했다. 그들의 신학적 배경은 매우 다양했지만, 정치인, 변호사, 그리고 언론인들과 만나면서 매끄럽게 협력하기 시작했다.

매우 보수적인 배경을 가진 바뤀은 처음에는 의장으로 선출되었지만, 곧 미국 정치에서 광범위한 로비 경험을 가진 우리의 오랜 친구이자 마오즈 이스라엘의 이사인 폴 리베르만에게 그 자리를 넘겨줘야 함을 느꼈다. 티베리우스 지역의 다니엘 야하브 목사, 하이파 출신의 마빈 크레메르 변호사, 텔아비브 출신의 교사 노암 헨드렌이 활동 회원이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 기독교 공동체를 대표하는 연합 이스라엘 기독교 협의회(United Christian Council of Israel) 의장인 찰스 코프와 아랍 기독교인 니자르 투마도 포함되었는데, 그는 아랍 기독교 공동체를 메시아닉 유대인들 편에 서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작지만 강력한, 통일된 힘이었다.

폴의 전략적인 경륜과 독창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이 나라 안에서 기득권층 랍비 지도자 세력과 싸운다면, 질 것입니다. 더 좋은 전략은 해외에서 반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폴과 찰스 코프는 유럽 전역을 다니며 정부 관계자들, 교회 지도자들 앞에서 입장을 호소했다. 놀랍게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모든 사람들이 그 싸움에 참여하기로 동의했다!

팩스로 하는 싸움

마오즈는 이스라엘과 해외의 여러 메시아닉 단체들과 함께 그러한 법이 위험하고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와 모든 미디어를 통한 검열되지 않은 정보 접근의 자유를 포함하는, 이스라엘이 서명한 UN 인권 선언에 위배됨을 최대한의 역량으로 공유했다. 우리는 매달 독자와 동역자들에게 총리실과 다른 정부 고위 관리들에게 팩스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그 당시에는 팩스가 전부였다!)

수천 통의 편지, 팩스, 이메일이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과 메시아닉 유대인들로부터 이스라엘 정부 관리들에게 보내졌다. 많은 마오즈 독자들이 참여했다. 게다가, 여러 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제안된 법에 관한 "문의 서신"을 공식적으로 보내왔다.

미국 메시아닉 유대교 연맹(Messianic Jewish Alliance of America)은 6개월 동안 매일 두세 시간씩 기계에 계속 종이가 걸릴 정도로 총리실로 팩스를 보내, 정상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운동에 동참했다!

폴은 이렇게 회상한다. "찰스 코프, 니자르 투마, 그리고 저는 통신국장과 이야기하기 위해 총리실로 갔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보내온 법률 관련 팩스나 서신들이 책상이 아니라 방 한 칸 가득 들어 있습니다.'라고 인사 대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지요. '생각해 보세요. 저희는 아랍인, 유대인, 기독교인입니다. 모두 서로 친구이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죠.'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나한테 전도하지 마요!'"

1998년도 제루살렘 포스트

우리를 옹호하기 시작한 신문들

수백, 수천 통의 편지가 총리실, 크네셑 의원로 굴러들어왔고, 신자들에 대한 정통파 유대인들의 폭력에 대한 보도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신문들은 제대로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몇몇 기자들은, 우리 신앙에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은 이들이었는데도, 우리 주장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초정통파 유대교는 이 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전면전을 개시했습니다. 극단적 정통파 단체들은 신자들을 공격하고, 신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이 모이는 구조물들을 물리적으로 해치고 있습니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인, 특히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진정한 위협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정통파들은] 메시아닉 운동에 새로운 신자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상황을 종결시키기 위한 결정이 내려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과 쯔빌리의 협상

쯔빌리와 가프니는 처음에 파도와 같은 국제적 항의를 이겨내고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위는 현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길고 강력한 시위가 되었다! 진보파 의원인 쯔빌리는 계속되는 열기로 인해, 법의 공동 지지에서 발을 뺄 체면치레 구실을 찾기 시작했다.

반면 전능하신 분이 주신 사명이라고 확신하는, 극우 성향의 가프니와 협상하는 것은 시작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의 초기 몇 년 동안, 그러한 제안이 심지어 진보적인 크네셑 회원으로부터 발의될 수 있었던 주요 이유들 중 하나는 사실상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빈부, 교육 수준을 막론하고, 외교관, 정치인과 배관공들까지, 세 가지를 믿었기 때문이다. 1. 기독교 단체들은 돈과 물질적인 상품으로 유대인의 영혼을 사고자 한다. 2. 교회는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고 미성년자를 유혹한다. 3.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를 원한다. 즉, 자신들의 유대성, 민족과 전통, 자신들의 하나님을 부정하고 유대 인종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 법안에 맞서 싸우고 기독교인들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널리 받아들여진 오해들을 고발할 기회를 감지한, 평화를 위한 가교(Bridges for Peace)의 클래런스 와그너와 에큐메니컬 박애회(Ecumenical Fraternity)의 페트라 헬트의 주도 하에 여러 이스라엘의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들은 쯔빌리 의원이 우아하게 법안 지지를 철회할 방법을 전달할 성명서 작성에 수 개월을 쏟았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현대 복음주의자들이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라 실제로 이스라엘을 사랑함을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이스라엘의 많은 주류 기독교 단체와 쯔빌리와의 협의, 그리고 MAC의 조언이 더해져, 성명서가 완성되었고 기자 회견이 열렸다. 그런데 성명서가 발표될 예정이던 기자회견 전날, 쯔빌리 의원은 기자 회견을 소집하여 이스라엘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개종 활동에 관여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그러므로 자신은 선교 반대 법안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며 자신이 속한 노동당도 반대표를 던지도록 설득하겠노라고 발표하여 이스라엘의 기독교계와 메시아닉 공동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메시아닉 공동체는 쯔빌리가 후원을 철회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안도했지만, 이스라엘에서 전도가 종식되었다고 외치며 전 세계를 돌기 시작한 헤드라인에 대해 적지 않은 실망이 있었다. 러시아의 한 신자는 심지어 이스라엘의 한 리더에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의 메시아닉 신자들이 모든 전도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국의 보도가 사실인지를 묻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의 반발

요즘 말로 가짜 뉴스라고 부를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 다음날 클래런스 와그너는 계획된 대로 준비된 성명을 공유했다. 그는 이어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추천할 권리와 의무를 확증하는 기독교인들을 대표하여 기자회견에서 읽은 성명서는 쯔빌리와 가프니 모두에게 보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종교적인 권리로서 우리가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신앙의 선언을 그칠 것이라고 착각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우리가 애초에 법이 거부되기를 원했던 이유입니다."

다만 모든 신자들이 관심자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것을 중단한다는 쯔빌리의 선제적 발언을 전 세계 신문들이 계속 해석하자 MAC는 유대인 신자들을 위해 특별히 우리만의 성명서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이 문서에서 우리는 니씸 쯔빌리 의원이 종교 검열 법안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용기 있는 조치를 칭찬했고 결코 "예슈아를 선포할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시아닉 광고가 백만 명에게 전달되다

하나님께서 MAC에 허락하신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미디어와의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탄생한 이래 우리는 이스라엘 신문사들과 미디어를 관계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불법화하려는 이러한 시도 때문에, 그것은 정치적인 이슈가 되었고, 따라서 언론은 메시아닉 신자들에게 대응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안된 법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침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가 우리에게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을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거대한 창을 주었다.

미국의 700 클럽(700 Club), 주스 포 지저스(Jews for Jesus), MJAA와 같은 단체들 및 마오즈 동역자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메시아의 몸을 위해 약 백만 달러를 모금했다. 이 자금으로 MAC는 1년 이상 광고로 신문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우리는 7개 신문에 3개 국어-히브리어, 러시아어, 영어-로 광고를 했다!

1998년 4월 29일, 이스라엘의 50주년 전날, 이 모든 신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 특별판을 발행했다. 이사야 53장이 실린 전면 광고가 이 모든 신문에 실렸다. 이 신문들은 백만이 훨씬 넘는 가구에 배달되었다! 극단주의 정통파 유대인들은 대중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자유에 겁을 먹었다. 이 광고들은 분명 종교 당국을 약화시키고 있었다.

시위가 계속되자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한 복음주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이 법안에 "강력히 반대할 것"임을 확약했다. MAC는 총리가 물러설 수 없도록 그 약속을 공개했고, 그래서 외교부는 계속해서 이어진 항의에 대한 대응으로 그 편지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모셰 가프니 의원이 초정통파 샤스 당의 아리예 데리 의원과 대화하는 모습

첫 법안보다 더 못된 법안의 등장

1998년 말에 이르러서도, 아슈케나지계 극단주의 정통파 크네셑 의원 가프니는 첫 번째 그 법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또한 극단적 정통파 세파르디샤스 당은 신자들을 상대로 한 어떤 법안도 아직 법으로 통과되지 않았다는 것에 점점 더 불만이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3주 후, 샤스 당 소속의 라파엘 핀카시 의원이 새로운 "반선교" 법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충격적게도, 네타냐후 총리를 포함한 전체 내각이 첫 번째 독회에서 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제안된 법은 기본 인권을 반대하는 모든 법률의 모체가 될 것이었다. 새로운 법은 "개종시키려는 의도의" 설교를 금지할 것이며, 이에 3년 징역 또는 13,000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개종"을 불법화할 것이었다. 이 법안은 "십자가 그늘 아래" 전도하는 사람들에게만 법이 적용될 것이라고 보장했다. 예슈아만 믿지 않으면 유대인들은 힌두교도, 불교도, 사탄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마지막 판

그리고 나서 또 다른 우파 국회의원이 크네셑의 승인을 얻어 또 다른 법안을 제출했다. 그가 메시아닉 유대교 운동을 완전 불법화하기 위해 전체 크네셑의 투표를 요구했을 때, 크네셑 위원회장이 "미국의 상부에서 안 된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 신자들에 대한 공격은 실제로 이스라엘과 전 세계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유명세에 올려놓았다. 이 전투 이후, 서구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현대사의 이 중요한 순간에, 수천 명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기독교 신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아, 말 그대로 이스라엘이 신권정치, 즉 종교 독재가 되는 것을 막았다는 점이다!

1999년 6월, 네타냐후 총리는 에후드 바라크에 의해 불현듯 축출되었다. 제안된 모든 법률들은 사라졌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비록 네타냐후가 수년 후에 권좌로 돌아와 이스라엘에서 하레디 공동체에 광범위한 권력과 통제권을 계속 부여하고자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메시아닉 유대인 공동체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는 다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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