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일: 2021년 8월 1일 |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

마오즈와 이스라엘 국가의 초기 이야기를 다룬 “그 모든 시작" 시리즈를 쓰기 위해 지난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와 여러 서류들을 뒤져보다가, 1980년대 초반 1차 레바논 전쟁에서 싸우던 중에 아리가 쓴 일기를 발견했다. 이 내용은 그가 소집되었던 1983년 3월과 4월의 이야기이다. 아리의 글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역사적 시점 가운데 보기 드문 관점을 보여준다. 지난 달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에서 “장군과 백만장자"를 읽어보셨다면, 이 일기에 담긴 내용이 IDF 군인이었던 아리의 삶 가운데 바로 이 시점에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해줄 것이다.-샤니 소르코람 퍼거슨

월요일 - 1일차

난 예비군으로 소집되었다. 매년 예비군으로서 기술을 갈고 닦기 위해 1개월 가량씩 우리는 소집된다. 하지만 전쟁이 있을 때 병역 기간은 분명치 않다. 도착해보니 수백 명의 군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내 목적지는 레바논이라고 한다. 우리는 군용 버스를 타고 무기, 군복 그리고 침대를 지급 받았다.

화요일 - 2일차

우리 버스는 북쪽으로 향하더니 유명한 “좋은 펜스”를 넘었다. 쌀쌀하긴 하지만 우리는 창문을 내리고 창틀에 총을 겨눈 채 갔다. 어제 PLO(야쎄르 아라파트가 세운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매복 공격으로 9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레바논의 한 마을에 있는 우리 기지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거기서 우리는 현지 임무를 부여 받았다. 나는 물 순찰을 맡았는데, 우리 기지로 물을 가져오는 트럭을 무장 차량이 호위하는 것이었다. 주로 우리는 매복 공격이나 레바논 도로의 패인 곳에 지뢰가 있는지를 살폈다.

금요일 - 5일차

난 미 육군에서도 복무를 해봤지만, 이스라엘은 안식일에 가능한 한 많은 군인을 집에 보내주려고 한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난 주말 담당이라 집에 못 갔다. 군대는 절기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킨다. 기지에서 안식일 식사 시간이 되면, 모두가 식탁에 앉고 문을 잠근다. 아무도 출입을 못하며, 기도와 축복이 끝날 때까지는 먹지 못한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종교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안식일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식사 전 안식일 축도에 참여했고, 이후 식당엔 시편 등 성경을 근거로 한 노래들이 울려퍼졌다.

토요일 - 6일차

나는 새벽 6시에 보초 근무를 선다. 갑자기 한 아랍인이 술취한 상태로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뭘 원하냐고 물었다. 그는 아랍어로 소리쳤다. 나는 히브리어, 영어, 불어(많은 레바논인들이 불어를 할 줄 안다)로 말을 걸었다. 계속 아랍어로 소리치며 나를 향해 왔다. 그가 무장을 했거나 수류탄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

나는 멈추라고 그에게 더 공격적으로 소리쳤다. 그는 계속 나를 향해 왔다. 총에서 안전 장치를 풀었더니 크게 딸깍 소리가 났다. 그는 뭐라고 지껄이며 계속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세 가지 언어로 말을 시키며 더 동작을 취했다. 그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가운데 주변 아랍인들이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약실에 장전을 하자 모두가 쳐다보았다. 레바논 사람 같이 보이는 이가 차에서 나오더니 그를 붙잡아 차에 태워 떠났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아무도 해칠 일 없도록 구해주신 하나님께 조용히 감사 드렸다.

수요일 - 10일차

며칠 동안 집에 가도록 허가 받았다. 레바논에서 나오면서, 시골 풍경을 제대로 볼 기회가 있었다. 야쎄르 아라파트가 그 땅을 정복하고 통제하기 이전 여름의 모습을 다룬 뉴스 화면과 비교해 보았다. IDF가 동맹인 남부 레바논군과 함께 그 땅을 해방시킨 지가 1년이 채 안 되었다. 아라파트 하에서 그곳의 밭들은 헐고 버려지고 정돈되지 않았었는데 이제 다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모든 골짜기의 과수원들도 돌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곳곳에서 놀고 있었다. 축구장엔 젊은이들이 가득 했다. 가게들엔 상품과 농산물들이 넘쳐났다. PLO 통치 중엔 잦아들었던 사고파는 분주한 소리가 이제 복수심을 품은듯 회복되었다.

쉬라와 아이들을 보러 집에 갈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키에 맞는 침대와 이불 속에서 잘 수 있어 감사하다.

주말 안식을 위해 레바논에서 아리가 돌아왔을 때 집밖에서 찍은 아리, 쉬라, 아얄과 샤니의 사진.

일요일 - 14일차

텔아비브에서 레바논 기지까지 가려면 거의 하루가 걸린다. 도착해보니 전날 심어놓은 지뢰 위로 우리 군용차가 지나가 장교 두 명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휴전 협정이 맺어졌지만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고 사람들은 목숨을 잃고 있다는 현실로 재빨리 돌아와야 했다. 우리는 물 트럭으로 늘 도는 순찰을 돌았다.

월요일 - 15일차

나는 보초 당번이었다. (남부 레바논군의 지도자) 하다드 장군이 여러 군보좌관 및 붙잡힌 PLO 잠입자 한 명과 함께 기지에 도착했다. 나는 조지 오티스의 라디오와 TV 방송국을 위해 촬영한 영화 등 하다드 장군을 인터뷰해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우린 우호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나처럼 위로를 받았을까 모르겠다. 레바논 군 지도자인 그와 이스라엘 군인인 내가 서로 거듭난 신자라는 것을 안다는 면에서 말이다.

화요일 - 16일차

나는 말씀 묵상을 하기 위해 4시 45분에 일어나 죽은 장교들을 떠올렸다. 하나님께서 잠잠히 내 곁에 계신 것이 느껴졌다.

보초 근무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최소 3명이 탑승한 1대 이상의 호위 차량이 없이는 누구도 기지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모두가 기지를 나가려면 방탄 조끼를 착용해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왔다. 내가 그 소식을 전했다.

대혼란이 벌어졌다. 장군부터 사병까지 모두가 탄 여러 대의 차량 행렬이 눈에 보이는만큼 죽 이어졌다. 왜 규정에 따를 수 없는지 저마다 사정이 있었다. 1시간 반 동안 사람들은 내게 소리를 치며 기지에서 내보내 달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모든 게 끝난 뒤, 나는 군대 교육을 담당하는 고위 장교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나를 자기 사단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유월절 전날

오늘 저녁부터 유월절이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통적 세데르를 하기 위해 집에 가게 된다. 우리 가족은 내가 유월절에 집에 못 오게 되어 실망했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기지에 남아야 할 이유를 두셨음을 깨달았다. 쉬라도 주님께서 이 기간에 내가 부대에 남게 하신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침 근무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주님의 손이 역사하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갔고, 사람들이 세데르 준비로 분주히 돌아다니는 가운데 침대에 앉아 기타 코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군인들에겐 별로 놀이거리가 없기 때문에 십수 명의 군인들이 금세 내 방에 몰려들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여러 곡을 했는데 그중에는 시편을 가사로 한 “로누 샤마임"이라는 찬양도 있었다. 번역하면 “하늘이여 기뻐하라"는 뜻이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질문을 해왔다. “너 다티(종교인)야?” 나는 대답했다. “뭐, 성경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내가 정통파냐, 보수파냐 개혁파냐를 밝혀달라고 하길래, 나는 메시아닉 유대인이라고 대답했다.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유대 민족의 회복과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으로부터 모세가 자기 뒤에 세워질 거라고 한 “선지자"에 대한 깊은 논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이후 정통파 출신의 한 사람이 내가 한 말을 확인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탐구하는 마음을 귀히 보시고 그 구절을 찾도록 도와주실 거라고 확신을 주었다.

유월절 저녁

세데르를 인도한 랍비에겐 카리스마가 부족했지만, 세데르 자체는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모든 전통적 노래를 알고 있었고 나는 모두가 뭔가 기념하려는 의지가 강함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하가다를 후다닥 읽고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후에 군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멘, 남미, 북미, 유럽과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온 유대인들이 출신지의 성경 노래를 각자 불러주는 문화 대잔치였다.

유월절 당일

오전 6시 보초 근무. 절기 중이라 첫 1시간 반은 아주 조용했다. 좋은 기도 시간을 가졌다. 7시 반쯤 되어 한 군인이 게이트로 나와 어제 있었던 대화에 대해 내게 말을 붙였다.

그 저녁에 나는 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룸메이트 샤울(가명)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180cm 키의 세파라디 유대인으로 인상이 짙었고, 35살쯤 되었을 것 같은데 정통파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왜 내게 시두르(기도서)를 들고 회당에서 기도하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개인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으며 시두르를 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마음에 있는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무슨 기도를 했냐고 묻길래 나는 그 친구와 다른 여러 군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깜짝 놀라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가 배운 종교에서는 기도서를 가지고만 기도해야 하며, 그중 여럿은 회당에서만 해야 한다는 전통적 구전 율법을 가르쳤던 것이다. 퉁명스럽고 의견이 뚜렷한 사브라(이스라엘 토박이)였던 그는 내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선 안 되고 나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내게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의무가 있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때에 이르러선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고, 나는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과 언약 관계를 갖고 계시며 우리는 그 언약에 따라 행해야 하는데, 거기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님께서 샤울에게 이렇게 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신약과 메시아의 정체와 오심에 대한 태도를 바꿔주실 것이라고.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심령 가운데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을 넣어주사, 그 역시 메시아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다. 나는 그에게 좋든 싫든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실 때는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예비군 복무 기간이 끝나기 전에 내 기도를 응답해주실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따라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휴가 나갈 때까지 나는 며칠 동안 계속 질문을 이어오던 여러 무리의 군인들과 토론을 해나갔다.

금요일 - 26일차

쉬라와 아이들은 유월절 주간에 예루살렘에 있었기에, 나는 그들을 만나 다른 신자들과 교제를 나눴다. 미 동부에서 온 한 설교자가 나에게 예언을 시작했는데,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 선포할 때 담대함과 권세를 더욱 주실 것이라고 했다. 부대로 돌아가는데, 나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고대되었다.

일요일 - 28일차

다시 돌아왔다. 여러 군인들이 즉시 내 방으로 왔다. 그들은 또 많은 질문을 해왔다. 그래서 나는 십수 명과 함께 성경을 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새로운 사람이 와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며칠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보여준 성경 구절들을 가지고 나와 논쟁을 벌였다. 나는 그들의 심령 가운데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모두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매우 갈급해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달라고 할 줄 알고 나는 히브리어로 번역된 우리 신간 여러 권을 가져와 나눠주었다. 3분만에 모두 가져갔다. (아, 50권을 가져와야 했는데!)

할 일이 끝난 저녁, 그들은 전에 내가 불러줬던 찬양 곡 하나를 불러줄 수 있냐고 요청해왔다.

나는 지난 주 내가 드린 기도에 응답하사 군인들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계신 주님께 감사했다.

유월절 마지막 날

절기 중 보초 근무를 서서, 부대에서 별 활동은 없었다. 이제 내가 메시아닉이라는 소식이 거의 다 퍼졌다. 많은 군인들이 근무 중인 나에게 찾아왔다. 어떤 이들은 정확히 어떤 주제로 향할지도 모른 채 어색하게 대화를 시작하기도 했다.

한 젊은 친구는 소심한 얼굴을 한 직업 군인이었는데, 내게 걸어오더니 불쑥 말했다. “난 하나님을 안 믿어요. 그쪽은요?”

또 다른 사람은 좀 더 성숙한, 40대였는데 억양으로 보기엔 남아공 출신 같았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뛰어난 히브리어로 이렇게 말했다. “예슈아가 메시아라고 생각하세요?” 난 말했다. “그렇게 믿을 뿐 아니라 이게 그 이유에요.” 그리고 이후 한 시간 동안 주님께서는 그가 깨닫도록 열어주셨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는 처음으로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것이 가능하며 어떻게 이런 것이 이해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이건 그냥 종교가 아니라 실제였던 것이다. 나는 보초 근무를 계속했지만, 속으로는 기뻐 뛰고 있었다.

화요일 - 30일차

수상 순찰 및 보초 근무.

이 날 저녁 내 방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여러 친구들이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성경을 향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친구 하나가 왔다. 그는 요즘에는 종교인들이 모두 위선자들이라 아무것도 믿을 가치가 없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정말 사람들과 관계하실 때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놓는지 이야기를 했다. 이런 것들을 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도해왔던 다른 친구의 심령을 이미 변화시키셨음을 내게 알려주셨다.

나는 돌아서서 말했다. “내가 유명한 랍비나 교사는 아니야. 온갖 위대한 지혜를 갖고 있지도 않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엔 능력이 있지. 듣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 영향을 미쳐. 예를 들면, 우리가 여기서 며칠 전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령을 바꿔주시기를 기도하겠다고 했지. 여기 있는 모두에게 물어볼게. 일주일 전과 너희들 태도가 다르지 않아?” 모두가 대답했다. “맞아!”

그리고서 나는 기도해주겠다고 했던 샤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마음이 변하지 않았어?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싶은 새로운 갈망이 있지 않아? 메시아가 누구시고 하나님의 새 언약이 무엇이며, 그것이 너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지 않아?” 그러자 그는 말했다. “맞아.” 나는 말을 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나 랍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한다고 깨닫게 해주시지 않았어?” 그는 대답했다. “그래, 난 바뀌었어.”

목요일 - 32일차

짐을 싼다. 집에 간다. 군인들이 사방에서 와서 내 주소를 묻고 있다. 책을 달라고 한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의, 가정 중심적인 한 군인은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하는 말은 맞는 것 같은데, 내가 겨우 한 사람으로서 여럿에 맞서서 뭘 할 수 있겠어? 난 배운 사람도 아니고 별 권세도 없는데 말이야.” 나는 그에게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힘과 용기, 그리고 필요한 배움을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했다.

부대에서 나올 때 나는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헤어지면서 따뜻함을 느꼈다. 이 32일의 시간을 돌아보니, 내 신앙에 대해 그 누구와도 충돌이 없었다. 오직 이스라엘의 왕을 증거할 문들이 열렸을 뿐이었다!

나에겐 많은 전화번호와 주소, 그리고 전국 각지에 와달라는 초대가 남았다. 씨는 심겼지만 많은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분명 하나님의 진리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책들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들에겐 성경과 성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줄 책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책들을 인쇄할 것이다.

후기

아리는 신앙을 전하는 데에 어떠한 반대에도 부딪히지 않았고, 군 정책에 따라 누군가가 그런 대화를 시작했을 때에만 논의를 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났을 때, 종교자유 반대 단체인 야들레앜힘은 우리가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에 실은 위의 기사를 읽고 당시 국방 장관이었던 이쯬학 라빈에게 아리가 개종을 시키고 있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라빈 장관은 아리가 소속 부대에서 이동될 것을 명령했다.

아리는 한 친구가 전화로 TV에서 아리의 케이스를 가지고 크네세트에서 논쟁하고 있는 걸 봤다는 이야기를 해주어 그제서야 비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극좌파 정당인) 메레쯔당은 라빈 장관이나 비서진이 명령을 내리기 전에 아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반대 의견을 냈다. 메레쯔당원 하나가 아리에게 연락하여 법정에서 그를 대표해주길 원하는지 물었지만, 아리는 그 당시로서 정당이 자신을 대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다.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가진 않았지만, 야들레앜힘은 증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법원은 사건을 기각했다. 아리는 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다시는 예비군에 소집되지 않았다. 군대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었을 때 아리는 표준적인 명예 제대를 했다.

이스라엘의 문화는 지난 40년간 먼 길을 지나왔다. 현재 군대와 다른 정부기관들은 충성되고 아주 청렴하며, 열심히 일하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성품을 인정한다. 많은 이들은 현재 지휘관 및 장교 등 요직을 맡고 있다.

흥미롭게도 아리가 레바논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이 글을 준비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해당 전쟁(이 전쟁에는 아직까지 공식 명칭이 없다)에 새로운 관심을 갖고 있다며 두 가지 매력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발표를 했다. 먼저 아리를 포함 레바논 전쟁 (1982~2000년)에서 싸운 IDF 군인들이 복무를 기리는 특별한 훈장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로 불과 몇 주 전에 이스라엘은 동맹인 남부 레바논 군의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추모비를 만들었으며, 수십 년 전 레바논에서 탈출해 이스라엘 북부에 정착한 레바논 군인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투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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