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쉬트의 아이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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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23년 10월 1일 |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

사진: 베레쉬트(창세기) 공동체의 스테파노스. 


지난 달에는 데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데수는 다비드 사파파 목사, 티기스트 사모와 함께 이스라엘에서 가장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공동체 중 하나인 베레쉬트('창세기'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리더입니다. 연수로 가장 얼마 안 됐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젊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몇 년간 대다수의 공동체 지체들이 다비드 사파와 베레시트의 아웃리치를 통해 주님께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세 사람의 간증을 요약해서 하나로 묶으려고 했지만, 곧 각 사람의 간증이 독특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시간을 내어 이 젊은이들 각각의 간증을 나누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부언 없이 두 번째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스테파노스(왼쪽)

공동체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스테파노스(왼쪽)

스테파노스

에티오피아에서 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자렡이라고 불리는 큰 마을 근처의 원지라는 동네 출생입니다. 저희는 비슷한 집들이 아주 많은 동네에 진흙 벽돌로 지은 작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저희 집엔 흙으로 된 마당이 있었습니다. 거창한 것은 없었지만, 저희에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지공장에서 경비대장으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집에서 저희를 돌보셨습니다.

저는 에티오피아 밖의 세상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이 제가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해선 몰랐습니다. 미국으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해주겠다는 가족의 약속으로 인해 어머니가 13살에 출가한 탓이 컸습니다. 가족들은 어머니를 에티오피아에 머물게 하면서 가정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4살 때 가족에게서 도망쳐 18살에 결혼할 때까지 다양한 일들을 했습니다. 그녀는 결코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따라서 자신의 유대적 유산과 관련된 것은 묻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문득 어린 시절, 부모님 사이에서 이스라엘과 저희의 유대적 유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알리야(이민)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여섯 아이 중 다섯째인 열 살의 저는 어느새 비행기에서 내려 예루살렘에 있는 새 집이 되어줄 나라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희는 히브리어를 배우고 이스라엘 문화에 통합되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캐러밴에서 지내며 흡수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어를 배운 후, 저는 종교적인 유대 학교에 배치되었고 2년 안에 저희는 아파트 구입 지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 계셨고 아버지는 청소 일을 맡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청소를 좋아하십니다. 아버지는 80대이신데 아직도 청소를 하시고, 항상 더 많은 시간을 할당 받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류상"이라고는 해도, 저는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출신 올림보다 훨씬 나은 형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혼인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류는 서류이고, 현실은 항상 서류보다 복잡하죠.

각 학년을 어떻게든 마쳤지만 학업적으로 학교생활을 잘 해본 적이 없었고 물론 9학년 전에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제 주변에선 표준적인 취미생활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3년은 농업 기숙학교에서 보내면서 토지일과 농장 가축들을 돌보는 일을 배웠습니다. 아빠처럼 저도 힘든 일에 따르는 성취감을 좋아해서 그런 환경에서도 잘 해냈습니다.

군 입대 시기가 찾아왔을 때, 저는 도전적인 무언가를 원했기 때문에 골라니 전투부대에 배치를 신청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제가 적합하다고 보지 않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한 일을 주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2년 동안 씨름한 끝에야 군대는 저를 민간인으로 풀어주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정식 기술이나 자격증 없이 전적으로 혼자서 전기 기술자의 조수로 일했습니다. 좋은 직업이었습니다. 하지만 2년쯤 되었을 때, 친구가 저를 연예 기획사에 연결시켜주었고 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후 5년간 저는 전국적으로 큰 행사 무대를 기획하며 보냈습니다.

베레쉬트의 새 모임 장소에 무대를 만들고 있는 스테파노스

베레쉬트의 새 모임 장소에 무대를 만들고 있는 스테파노스

저는 이 일의 역동성이 좋았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었고, 매일 다른 곳에서 뭔가 다른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 세월 가운데 좋은 기억이 많았지만, 계속되는 대마초 흡연은 제 머리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의욕을 잃었고, 26살이었던 어느 날, 그냥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26살에서 32살까지 흔한 범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런 시도도 없었습니다. 저희 동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일상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번 체포되었고 경찰에 집을 수색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무언가가 발견되었고, 결국 저는 1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30살쯤에 저는 마스렡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났습니다. 저희의 관계는 빠르게 발전했고 제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두 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마스렡에겐 중독의 문제가 있었지만,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녀는 중독에서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알게 해준 재활시설에 자발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해 감옥에서 가족과 떨어진 저는 유순해졌습니다. 풀려난 뒤, 저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는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마초 흡연은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삿짐 도우미(현재도 이 일을 하고 있는 중)라는 직업을 얻었고 아이들을 위해 집에 머물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다비드 사파파 목사의 리더십 중 "베레시트의 아이들"을 쓰는 데 영감을 준 세 사람입니다. 지난 달 데수의 간증을 읽어볼 기회가 없으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데수, 스테파노스, 아사프의 이야기(다음 달쯤 발표 예정)는 어린 시절부터 오늘날과 같이 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모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환상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다비드 사파파 목사의 리더십 중 "베레시트의 아이들"을 쓰는 데 영감을 준 세 사람입니다. 지난 달 데수의 간증을 읽어볼 기회가 없으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데수, 스테파노스, 아사프의 이야기(다음 달쯤 발표 예정)는 어린 시절부터 오늘날과 같이 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모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환상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문제를 일으킬 때부터 알고 지내던 데수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항상 온갖 못된 짓들을 할 때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저희는 함께 대마초를 피웠는데, 데수는 성경을 읽으며 이야기를 꺼내곤 했습니다. 저는 머릿속이 너무 흐릿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감옥에 가기 직전에 크게 싸웠기 때문에 다시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제가 출소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코로나 직전, 오랫동안 신앙을 갖고 지내던 누나가 찾아와 예루살렘에 있는 에티오피아계 탈 목사님과 함께 가서 기도해 보겠느냐고 물었는데, 제가 왜 동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몽롱해서 "그래요, 손해볼 것 없죠"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말씀을 읽어보라고 하시더군요.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는 에베소서 구절을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지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경험은 강렬했고, 그 곳을 떠날 때 저는 거듭났습니다! 그날 집에 갔을 때, 저는 모든 것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요. 마치 아이들 엄마를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탈 목사님의 공동체에 출석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시긴 해도, 그분의 공동체는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고 제가 이해는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교육을 받은 탓에 읽고 쓸 수 없는 암하라어로 진행되어 예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식료품점에 갔다가 데수와 마주쳤습니다. 크게 싸운 지 1년이 넘었고 둘 다 화해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데수가 저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저는 웃으며 데수에게 "난 이미 주님과 함께 하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둘 다 마약과 난장판의 세계에서 서로를 알았기에 갑자기 둘 다 "하나님은 선하시지!"라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 낯선 분위기였습니다.

스테파노스와 다비드 사파파 목사가 결혼을 축하했습니다.

스테파노스와 다비드 사파파 목사가 결혼을 축하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마음이 맞으면서도 히브리어를 쓰는 신자들을 찾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흥분해서 형 다비드가 집에서 새로 개척할 베레쉬트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후로 저희 공동체는 세 번이나 이사를 했는데, 너무 빨리 성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시간을 동원해서 공동체를 돕습니다. 누구나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오면 어디든 가고, 공동체로 예배하는 건물에서 제 기술을 이용해서 무엇이든 해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아리와 쉬라 부부가 코비와 샤니 부부가 사는 곳으로 이사 갈 때, 그 집 짐을 싸는 것을 돕는 특권까지 누렸습니다.

스테파노스와 마스렡은 마침내 주님과 공동체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스테파노스와 마스렡은 마침내 주님과 공동체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바로 이 무렵 코로나가 덮치면서 1~2년이 더 걸렸지만 믿음이 자라면서 마스렡과 저는 상담을 받으며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시간을 보냈고 올 봄에야 주님과 모든 친구들, 가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데수와 제가 함께한 여정을 돌아볼 때마다 저희는 이렇게 멀리까지 왔고 결국 같은 팀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셨겠지만, 저희 공동체 리더십은 데수, 저, 그리고 아사프 이렇게 세 명입니다. 그리고 아사프의 이야기는 저희 둘의 이야기를 합친 것보다 더 말도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계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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