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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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24년 2월 1일 |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

다비드는 여섯 자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부모 하임과 미리암 라트너는 2005년, 다비드가 2살 반이었을 때 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로 알리야 했다. 라트너 부부는 당시 믿음이 없었다. 하임은 형이 러시아 군대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를 받아 전투 중에 죽음을 당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하임은 이 세상 이후에 정말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진리와 목적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임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갔다. 모든 친구들이 잠들었을 때, 그는 모닥불 곁에 서서 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구원 받을 것이다!”

하임은 몇몇 기독교 친구들에게 모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말이 너무 운명처럼 느껴져서 하임은 집으로 돌아와 미리암에게 말했다. “우리 가족은 우리에게 약속해주신 고토로 돌아가야 해.” 이스라엘로 이주할 준비를 하는 가운데, 한 친구가 아쉬도드에 아는 가정이 있어서 정착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그 이스라엘 가정은 하임과 미리암을 집으로 불러 거처를 정할 때까지 몇 주를 지낼 수 있게 해줬다. 그 시간 동안, 믿는 유대인이자 참된 기도의 용사였던 이 가족들은 라트너 식구들을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가 인도하는 베이트 할렐 메시아닉 공동체에 초청했다. 곧 그들은 예슈아를 영접하게 됐고, 그 공동체 가운데 자녀들을 양육했다. 다비드는 이스라엘 목사의 아들 가이와 절친이 되었다.

다비드의 군입대

어렸을 때부터 다비드는 모험심이 강했고,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는 스포츠를 너무나 좋아했고, 세속인, 종교인 뿐 아니라 다양한 민족적 배경의 친구들이 있었다. 다비드는 한번도 자신이 메시아닉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실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질 않았다.

훈련 작전 중 다비드와 동료

2021년 여름, 다비드는 IDF에 징집되었고 골라니 정예 전투 부대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 부모는 그곳이 단순한 전투 부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선발된 아이들 중에도 골라니의 훈련을 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주요 충돌이 있을 때면, 언제나 골라니가 최전방에서 싸웠다.

“가지 말거라!” 미리암은 처음에 아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다비드는 대답했다. “엄마, 이 전투 부대에 가지 않으면 아예 군대를 안 갈 거예요. 전 고만고만한 복무를 할 수 없어요.”

훈련 기간 동안 다비드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고, 모든 생각을 겉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암과 하임은 복무가 정말로 아들이 견디기에,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저희는 처음부터 바라보며 기도했어요.” 부모는 말했다. “하지만 그의 믿음에 영향이 생겼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들이 집에 올 때면, 저희 공동체에 안 나가게 됐죠. 메시아닉 친구들과는 계속 연락을 했음에도요.” 부모가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다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해요. 스스로 하나님을 구하고자 과정을 지나고 있어요.”

병사로서 다비드는 서안 지구, 레바논, 그리고 동예루살렘에서 많은 심각한 군사 작전에 투입되어 테러리스트들에 맞섰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다비드는 영적 민감성을 가지고 부모와도 계속 교류했다. 종종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묻기도 했다. “엄마, 방금 절 위해 기도하고 계셨어요?” 그러면 항상 “맞아!”라는 대답이 나왔다.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기분이 아니었다. 다비드는 조상들의 하나님으로부터 전해들은 기적들을 직접 체험했다. 한번은 서안 지구의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 집에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절 위해 기도해주세요.” 온 가족이 기도를 시작했다. 바로 그 작전 중에 다비드와 동료 병사들은 벽 하나가 통째로 폭발하는 것을 겨우 피했다! 2초만 늦었으면 다비드는 죽었을 상황이었다.

다비드 부모의 기도는 불타올랐다. “언젠가는 다비드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믿고 저희는 끊임없이 기도했어요.” 그리고 정말, 그는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나오면, 다시 공동체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부대로 아들을 태워다 주는 중에 사진을 찍은 미리암과 다비드

낙원으로 가는 여행

9월 중순의 어느 주말, 다비드는 엄마에게 키부츠 나할 오즈 곁에 있는 부대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가는 길, 다비드는 영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마에게 말했다. “제 친구 중 한 명이 하나님을 찾고 있어요. 그런데 예슈아를 이해하지 못해요. 기도해 주세요.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요.” 미리암은 말했다. “일단 너부터 기적을 체험해야 해. 네가 하나님께 돌아와야지.”

다비드는 미소지었다. “엄마, 저는 더 이상 기적이 필요 없어요. 이미 예슈아를 믿고 있어요. 그분이 저의 주님이세요! 저는 이제 주님을 알고, 믿고, 따르고 있어요.”

미리암은 회상한다.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파란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죠. ‘엄마, 우리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또 이렇게 덧붙였어요. ‘제게 너무 좋은 부모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더니 말했어요. ‘부모님은 불만이 전혀 없으시죠. 두 분처럼 되고 싶어요. 저도 결혼해서, 가족들과 함께 공동체에 소속되고 부모님처럼 살고 싶어요.’”

미리암은 말을 이었다. “아이가 보통 그런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아니,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미리암은 이스라엘의 그 지역은 본 적이 없어서 키부츠 나할 오즈 부대에 도착했을 때, 다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정말 아름답구나! 마치 천국, 에덴 동산, 낙원 같아!”

“모든 게 푸르고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전 다비드의 부대가 가자 국경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부대의 벽을 보며 말했어요. ‘넌 정말 국경에 딱 위치해 있구나!’”

“아들은 말했죠. ‘엄마, 밤마다 일이 터져요. 저희한테 쳐들어오려고 하거나, 잡아놓은 놈들은 빠져 나가려고 하죠.’ 그러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쳐들어오려는 모습, 최루탄이나 독가스를 떨어뜨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보여줬어요. 다비드는 무슨 일이 곧 생길 것 같다고 했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큰 전쟁이 있을 거예요.’ 제게 말했죠.”

10월 초, 다비드는 몇 시간 동안 집을 방문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장막절 시작 시점이었기에, 그는 가족들을 보고 싶어했다. 다비드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다음에 집에 오면, 같이 갈릴리로 캠핑 가요! 식구들과 시간 보내면 너무 좋겠어요!’ 물론 우리는 너무나 기대했다.

보통, 다들 그렇겠지만, 젊은이들은 친구들과 놀러 다닌다. 우리는 아들이 많이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아들과의 마지막 시간일 줄 상상도 못했다.

막 태어난 여동생을 병원에서 만나볼 수 있는 휴가를 받은 다비드

10월 7일 토요일

일주일 후, 장막절 마지막 날 동이 트기 전, 분대장은 다비드를 깨우며 정찰병들이 소대에 이런 보고를 해왔다고 했다. ‘하마스가 공격하고 있다!’ 다비드는 즉시 복장을 갖추고 기관총을 들었다. 그들의 12명의 전투병들을 2명씩 짝지어 6개 그룹으로 나누고, 부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도록 했다.

다비드는 망대에 올라가 수십 명의 테러리스트들을 죽였다.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완전히 혼돈스러운 상황이었다. 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목격자들에 따르면 다비드가 부대의 울타리와 벽으로 돌격해오던 대규모 테러리스트들 중 수십 명을 무찔렀다고 한다.

그리고서 다비드는 보호된 구역에서 나와 친구들을 확인하러 갔다. 거기서 그는 또 6-7명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했다. 동료에 따르면, 다비드는 그때 정찰병을 확인하러 갔다고 한다. 정찰병은 보통 여군인데, 거기서도 다비드는 6-7명의 테러리스트를 죽였다.

IDF 우수 병사로 세 번째 수상한 다비드

생존

다비드는 그렇게 엄청난 전투를 치렀기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었고 다른 많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해가 질 때쯤, 가족들은 다비드의 생사 여부를 알 수 없었다.

그 토요일 밤, 다비드의 형제자매 중 아기를 제외한 넷은 다비드 꿈을 꿨다! 모든 꿈 속에서 그는 멀쩡히 살아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 잠에서 깼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다비드가 살아 있어! 내가 방금 봤어!” 그들의 꿈은 너무나 실제적이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목사의 아들이자 다비드의 절친 가이조차 토요일 밤에 꿈 속에서 다비드의 살아있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가이의 부친인 이스라엘 목사는 그들이 꿈에서 다비드의 “살아있는" 모습을 봤다는 것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다르게 해석했다. “나는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10월 7일 학살은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었기에, 다비드의 가족은 이틀 후에야 그가 샤밭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가족들은 다비드가 수십 명의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고 보호된 구역으로 돌아오려 했을 때, 등 뒤에 총알을 한 발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료들은 임시 지혈대로 그를 처치하기 시작했다. 부상은 당했지만 다비드는 죽기까지 여섯 시간 동안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싸웠다.

다비드의 부대는 넓게 펼쳐진 곳이라, 그런 대규모 공격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가자 지구 주변에 있는 다른 유사 부대에서는 병사 전원이 전사했다. 다비드의 동료 전투병 하나는 가족들에게 다비드가 엄호해준 덕에 20여 명의 부상당한 병사들이 피신할 수 있었다고 가족들에게 전했다.

월요일에 가족들이 드디어 군대에서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다비드의 아버지는 자신이 예슈아를 체험하고 믿게 된 것을 동료 병사들에게 간증했다. “와! 대단한 일이네요!” 그들은 반응했다. “더 듣고 싶어요!”

그의 생일을 기리며

2024년 1월 11일, 살아 있었다면 다비드는 21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이다. 라트너 가족은 다비드의 부대와 주변 부대에서 그 흑암의 샤밭에 자녀를 잃은 모든 식구들을 초대하여 아들의 생일을 기리기로 했다.

아쉬도드에 위치한 베이트 할렐 공동체에서 열린 그 모임에는 약 150명이 참석했다. 하임은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이 예슈아를 믿게 된 간증 전체를 나눴다. 그 자리에 모인 거의 모든 사람이 처음으로 복음을 듣게 된 것이다. 행사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하임을 찾아오고 또 집으로 초대하여 그의 신앙에 대해 더 듣고 싶어했다.

이스라엘에서 주님을 높이며 살아가고 그렇게 성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비드는 예슈아를 선택했다. 죽어서도 그의 간증은 그들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빛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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