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의 능력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에녹에게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노아에게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이 기록된 말씀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노예가 된 후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슬픔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7-8)
세상을 뒤흔드는 역사의 한 순간에 모세가 등장했습니다. 기이한 우연의 일치로, 편집증에 시달리는 파라오가 남자 아기들을 죽여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줄이려던 와중에 모세는 파라오의 궁으로 끌려가 왕족의 딸에게서 양육되었습니다.
이집트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입양된 왕족으로서 모세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분명 상형문자에 능통했습니다.
믿지 않는 고고학자들은 모세가 토라를 기록했을 리가 없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히브리어를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고고학적 증거(다음 기사)는 결국 무신론적 부정의 관에 또 다른 못을 박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에서 발견되는 모든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은 결국 성경이 진실이고 정확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는 기원전 1445년경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했습니다. 모세는 생애 마지막 40년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받아쓰게 하신 말씀을 히브리어로 기록했습니다. 토라, 즉 모세 오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권위 있는 책으로 즉시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것을 모든 백성에게 읽어 주었다.
그는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읽어 주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고 순종하리이다. (출애굽기 24:7)
성경은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의 수가 약 200만 명이었다고 알려 줍니다. 마이크가 없었기에 모세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분명히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토라를 기록함으로써, 토라는 무한한 수의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한 지파, 레위 지파를 선택하여 주님과 백성을 영적 사역자로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토라 두루마리를 베껴서 언약궤 옆에 두어야 했습니다. (신명기 31:24-26)
사막에서 온 이스라엘에게 토라 전체를 읽어 주는 것은 조직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잠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모든 후대 왕들에게 레위 사람들의 율법 사본을 가지고 각자 율법 사본을 쓰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은 평생에 그것을 읽어야 합니다…그리하면 그는 이 계명에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여 그의 왕위에서 오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신명기 17:18-20)
조슈아
그러나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기 위한 사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52년 동안 이스라엘을 이끌면서 ( jbqnew.jewishbible.org ) 실로를 이스라엘의 영적 중심지로 선택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곳에 회막을 세웠고, 그 안에는 언약궤와 토라 두루마리가 보관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과 생각에 온전히 심어주는 데 충실했습니다.
모세가 명령한 모든 말씀 가운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과 그들 가운데 사는 나그네들 앞에서 읽지 않은 말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8:35)
더욱이 그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자신의 책을 추가했는데, 그 책에는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일어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여호수아와 그의 세대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주님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 지파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할당하신 땅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약속의 땅의 먼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판사들
바로 여기서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거의 3세기 동안, 각기 다른 지역에 살던 열두 명의 사사들은 주로 군사 지도자로 활약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특별히 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족들이 먼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많은 부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그들의 삶은 우상 숭배와 극심한 폭력으로 가득 찼습니다. 드보라와 기드온 같은 몇몇 사사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사들의 자질은 계속해서 저하되는 듯했고, 결국 삼손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전사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강력한 경건한 지도력이 없었기에 토라를 읽고 순종하는 일은 점점 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만연한 폭력, 성적 죄악, 그리고 우상 숭배가 만연했습니다. 부족 간의 전쟁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슬픈 사사기는 다음과 같이 끝맺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각 사람이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사무엘
그러나 지파 전체에 걸쳐 하나님께 가까이 머물렀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지도 아래, 그는 새로 형성된 나라의 적어도 일부에 질서를 가져왔습니다. 위대한 선지자였던 그는 베델, 길갈, 미스바, 그리고 자신의 도시 라마를 순회하며 백성을 섬겼고,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사사로서 백성에게 모세의 율법과 여호수아서를 가르쳤습니다. 사무엘이 죽기 전에 그는 사사기와 사무엘서를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추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영적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성읍과 마을들이 분명 많았을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받았을지는 의문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그다음은 왕들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마도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통치 기간 동안 모세 사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성경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다윗 왕은 목동으로 시작했지만, 교육받은 재판관, 음악가, 작가, 시인, 그리고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제사장과 레위 지파 전체, 즉 3만 8천 명에게 질서를 가져왔습니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데 가장 애용했던 방식은 예언과 예배의 노래, 그리고 수 세기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역사를 담은 역사적인 시편을 함께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4천 명을 음악가로 임명하여 노래와 악기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의 "하나님의 말씀"이 음악에 맞춰 여러 시대를 거쳐 이스라엘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의 노래는 여러 세기 동안 불려지거나 읽혀졌으며, 가사에는 많은 신적 계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다윗은 분명 그 시대에 사용되었던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시편 1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는도다 (시편 1:1-2)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통치 아래 레위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여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행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이 읽고 쓸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들, 즉 왕, 제사장, 레위 사람들, 그리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헌신하는 한, 그들은 백성에게 경건의 문화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왕으로서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생활이 더욱 육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 더 적은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는 토라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왕은 마음이 돌이키지 않도록 아내를 많이 두어서는 안 되며, 은과 금을 많이 쌓아서도 안 된다. (신명기 17:17)
이스라엘 북왕국
하나님의 지혜가 분명히 부족했던 솔로몬의 오만한 아들 때문에 왕국은 갈기갈기 찢겼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열 지파는 아시리아로 유배되기 전까지 예후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의로운 왕도 없었습니다! 스무 명의 왕 중 누구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에 두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이 악한 왕들은 유다 왕들에게 충성을 바칠까 봐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열 지파의 왕들은 백성이 유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보관된 언약궤 옆에 있는 곳에 백성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성벽을 쌓았습니다.
유다의 선지자 오뎃은 북이스라엘 왕국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참 하나님이 없었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었고, 율법도 없었습니다…" (역대하 15:3)
그러나 북왕국 시대에는 열 지파 가운데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 이사야, 호세아, 아모스 등이 그 당시에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전하며 말했습니다.
언제까지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려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 (열왕기상 18:21)
하지만 백성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후에도, 엘리야는 자신이 마지막 신자라고 확신하며 악랄한 이세벨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7천 명이 있다고 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 잔은 계속해서 차올랐습니다.
그런 비참한 상황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열 지파는 포로로 끌려가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남유다 왕국
느부갓네살이 바빌론으로 끌고 가기 전까지 유다에는 총 20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중 의로운 왕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솔로몬의 직계 후손들은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처럼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를 의롭고 경건한 나라로 회복시킨 것은 다음 왕 여호사밧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에도 그를 보호하셨고, 그의 나라를 맹렬한 적들로부터 지켜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그의 지도자들을]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가르치도록 보냈습니다. 그들이 유다에서 가르치고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 다니며 백성을 가르쳤습니다. (역대하 17:9)
안타깝게도 그 후 150년 동안 유다 왕들 대부분은 주님의 모범적인 사절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왕들은 처음에는 선하게 시작했지만, 권력이 커지면서 완전히 악하게 변했습니다.
진정으로 경건한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두 왕뿐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조상들의 많은 죄를 회개하고, 그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등한히 여김으로 초래된 황폐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의 문들을 열고 수리했습니다. (역대하 29:3)
레위 사람들은 버려진 성전의 모든 쓰레기를 치우고 8일 동안 성전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레위 사람들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유다의 영적 지도력이 백성이 주님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데 집중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지원하여 그들이 주님의 율법에 헌신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역대하 31:5)
그는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일, 곧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일, 곧 하나님을 찾는 일을 온 마음을 다해 행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형통했습니다. (역대하 31:21)
히스기야는 왕국 백성들 사이에서 부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번영하던 시절에도 히스기야는 말년에 교만해졌고, 그의 아들 므낫세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므낫세는 55년간 통치했는데, 아마도 유다 왕들 중 가장 악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말씀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백성들은 다시 굶주렸습니다.
놀랍게도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는 다윗 이후 유다 왕들 중 가장 경건한 왕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어머니가 경건했던 걸까요?)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열여섯 살에 그는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모든 우상을 헐어버렸습니다. 스물여섯 살에는 성전을 수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청소하다가 "모세가 준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 요시야는 그 책에 적힌 내용에 충격을 받아 옷을 찢었습니다.
가서 나와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된 책의 말씀에 관하여 여호와께 여쭈어 보십시오.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역대하 34:21)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이 섬겼던 모든 가증한 것들을 말 그대로 그 땅에서 깨끗이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사는 날 동안에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역대하 34:33하)
비극적으로 요시야는 31년간 통치한 후 39세의 나이에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요시야의 세 아들과 한 손자가 그 후 22년 6개월 동안 통치했습니다. 각 아들은 이전보다 더 악했습니다. 이 악한 왕들 아래서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은 "점점 더 죄를 짓고 하나님의 전을 더럽혔습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와 다른 사람들은 요시야의 네 아들에게 필사적으로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유다 왕국은 약 325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제 온 이스라엘의 종말이 다가왔습니다. 나라는 칼과 기근, 질병으로 황폐해졌고, 느부갓네살은 유배할 만한 유대인이 겨우 4,600명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 추종자들은 여전히 강했습니다.마지막 왕 시드기야와 함께 바빌론으로 유배되었던 제사장 에스겔은 공개적으로 예언하고 자신의 환상을 담은 책을 썼습니다.이스라엘에 재앙이 닥친 이유에 대해 말입니다.유다 왕조의 왕족 출신인 것으로 보이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그들은 모세의 율법과 예레미야서, 그리고 아마도 그때까지 기록된 모든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다니엘은 토라에 있는 계명과 저주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민족과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그는 예레미야서에서 유대인들이 70년 안에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보았 기 때문에 부지런히 기도했습니다.아직 희망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전체의 증거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부와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공했을 때, 그들의 나라는 언제나 번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과 경건한 지도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 그들은 다시 죄에 빠졌고, 그들의 나라는 쇠퇴했으며, 결국 멸망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개인과 민족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다음 달에 계속됩니다: 에즈라에서 메시아 예슈아까지.
이스라엘의 신자들과 함께 서십시오
마오즈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땅 구석구석에 예슈아의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부는 믿는 자들을 훈련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오늘 이 영원한 사역에 동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