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8월, 2020

구출하고 힘 주고, 회복시킬 때 우리의 모습

이들의 이야기는 가슴이 찢어질 듯하면서도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들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심지어 당신 양떼 우리 안의 가장 깨어진 이들의 삶의 부분부분을 이런저런 모양으로 세심하게 지켜보시며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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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i Ferguson
으로 Shani Ferguson

오늘날 이스라엘은 인구 대부분이 이 땅에 산 지 한 세대도 안 되는 이들이다. 아마 독자들도 살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짐 싸서 이사를 해봤을 테지만, 많은 유대인 이민자들은 알리야를 할 때 지금껏 살아온 인생 전부를 가방에 담아내야만 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 그리고 많은 경우 새로운 트렌드까지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모든 일을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해낸다.

이들의 이야기는 가슴이 찢어질 듯하면서도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들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심지어 당신 양떼 우리 안의 가장 깨어진 이들의 삶의 부분부분을 이런저런 모양으로 세심하게 지켜보시며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로 가득하다.

우리는 IStandwithIsrael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정말 좋다*. 이를 통해 여러분이 규모와 관계 없이 마오즈의 사역에 참여한 덕분에 실제 인생의 상황들을 절망에서 감사로 바꿔놓았다는 사실에 격려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스라엘에서 신자들이 강력할 때, 그들의 삶은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에 대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그분의 왕국에 속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많은 이들에게 강력한 초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며, 이 이야기들 일부는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인명과 사진 일부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수정되었다.

회복————————–
메흐레트

아버지가 나와 형제들을 데리고 에티오피아에서 이스라엘로 오셨을 때 난 10살이었다. 이 나라는 우리를 이민 시스템에 집어넣었고, 난 히브리어를 배운 뒤 학교에 갔다. 고등학교를 마친 나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바로 군대에 갔다. 나는 정보 수집 전투 부대로 차출됐고, 국가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이 내겐 기쁨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앞서갈 수 있는 방법임을 배웠고,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나는 바로 취업을 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고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다가 25세 때, 나는 아름다운 사내 아이를 낳게 됐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가 나처럼 가정을 꾸려가는 일에 헌신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둘째 아들이 태어난 직후 그는 우리를 버렸다.

나는 계속 일했지만, 내가 번 모든 것은 두 아들의 양육 비용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아이 아빠는 감옥에 갔고, 그가 건네주던 조그마한 도움도 함께 사라졌다. 월세를 낼 수가 없을 때 사회복지 서비스가 개입하여 도움을 주려 했지만, 그들의 절차는 너무나 복잡해서 내 삶은 더 어려워질 뿐이었다. 내 은행 계좌의 마이너스는 점차 커지고 있었고, 나는 우울증에 빠져 과음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가 우리 아들들을 내게서 데려가고 나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추락했는지 깨닫고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무엇이든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베이트 예슈아 재활 센터에 들어갔고, 거기서 알콜을 청산했다. 그리고 모든 죄도 씻김 받았다! 사회복지사는 내 안의 변화를 보고, 8개월이 되지 않아 아이들을 돌려주었다. 나는 주님과 동행하고 있고, 믿음을 갖게 된 이후로 공동체에 소속돼 있다. 그것이 벌써 3년 전이다!

내 과거가 주님 앞에 깨끗케 되었지만 은행에선 여전히 깨끗해진 것이 없었다. 나는 빚이 너무 많았고, 수년치 이자도 밀려 있었다. 그 때 내 재활센터 상담사들이 IstandwithIsrael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서 도움을 요청했다. 빚 청산과 상담으로 도움을 준 IstandwithIsrael에 너무나 감사하다. 덕분에 나는 인생을 추스려 전진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영원히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모든 면에서 내 삶을 회복하셨다.

강화 ————————–
옥사나 & 안드레이

1997년에 우리 삶은 엉망이었다. 남편 안드레이와 나는 첫 아들을 막 낳았는데, 남편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나에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때였다. 어느 날, TV에서 예슈아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주님께 내 삶을 드렸다. 그리고 거의 즉각적으로 모든 것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을 감지했다. 나는 공동체에 소속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튼튼히 성장했다.

그리고서 이스라엘로 이민해야 한다는 이상한 강압감을 갖게 되었다. 어머니와 나는 함께 기도했고, 우리 공동체 리더들도 이것이 주님의 음성임에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5살배기 아들과 함께 알리야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을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수감 기간 동안 나는 그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1년도 되지 않아 안드레이도 주님을 영접했다. 우크라이나 감옥에서 풀려난 지 6개월 후,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재회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아이를 더 낳았다. 현재 우리 가족은 모두 주님과 동행하며, 이스라엘에 도착한 첫 날부터 쭉 멜렠 하카보드(영광의 왕) 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이스라엘 생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집이다. 우리 가족에 가장 맞는 장소를 찾고, 짐을 싸서 풀고, 여러 가지를 지적하는 주인들을 상대하고 하는 일들이 인생을 소진시킨다. 월세가 해마다 극적으로 오르내리기 때문에 우리는 이사를 자주했다. 현재 우리 아들은 결혼을 했고, 큰 딸은 대학교에 들어갔으며 둘째 딸은 전투 부대에서 군복무 중이다.

아이들이 집에 없으니 남편과 나는 나이도 들어가는데, 때마다 이사를 다닐 필요 없도록 작은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중산층은 결코 부동산 시장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정부는 신축 아파트 중 일정 물량은 할인가에 매매되도록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그중 하나의 자격 조건에 충족되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많은 게 그렇듯, 인생이 계획대로 되질 않았다.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 건축이 3년간 지연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택담보대출금을 내면서 동시에 살 집의 월세를 내야만 그 아파트를 지켜낼 수 있었다. 버겁긴 했지만, 그렇게 해야만 우리만의 집을 가질 유일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열쇠를 받기 위해 마지막 거액의 잔금을 낼 날이 두 달 밖에 안 남았을 때 난 회사에서 잘렸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로 시장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도착점을 코앞에 두고 모든 걸 잃는다니 너무나 낙심이 되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그만한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난 기도했다. 지금까지 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우리 공동체의 어떤 이들은이 상황을 듣고 이스라엘의 어려운 신자들을 도와준다는 IstandwithIsrael 기금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소망이 자라는 걸 보고 우리는 지원서를 냈다. IstandwithIsrael이 지원서를 승인했다는 연락을 받고 우린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아기처럼 한참 울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스라엘이라는 집으로 데려오시고 이스라엘에서 집을 주신 것이다.

만나본 적도 없는 이스라엘의 신자들을 도와주시는 후원자들의 너그러운 마음에 감사 드리며, IstandwithIsrael 팀, 마오즈에 감사를 전한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풍성히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힘 주신 것처럼 힘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구출 ————————–
라나

나는 철저한 공산주의 가정에서 자랐다. 내 인생의 누구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모든 이들이 유대인을 조롱했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유대인인 것을 알게 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알게 될까 겁에 질렸다. 이후로는 어느 곳도 안전하다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어느 곳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다. 집에서 부모님은 너무 많이 싸우셨고, 나는 가능한 한 빨리 결혼해서 나가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은 뒤, 나는 내 새 인생이 더 나을 게 없음을 깨달았다.

곧 나는 남편이 꾸준히 밤늦게 나가 다른 여자들과 시간을 보낸 것을 알았고, 우리 결혼은 무너졌다. 얼마 후, 나는 나 뿐만 아니라 내 아들을 받아준 남자를 만났고 곧 우린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힘들었지만, 믿음이 강한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우리 둘을 위해 기도해줬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예슈아 이야기를 해줬고, 나는 그들의 삶에서 빛을 보았다.

2005년, 남편과 나는 가족적으로 알리야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스라엘로 가기 몇 개월 전에 내 삶에 주요한 사건이 두 가지 일어났다. 임신을 한 것과 용서와 영생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예슈아께서 내 삶에 들어오시니, 이스라엘로 가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어졌고 도착했을 때, 나는 그 땅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우리 둘다 이스라엘로 오고 싶어하긴 했지만, 막상 와보니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업을 구할 노력을 하지 않고 내가 공동체에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사랑하는 고토에서 낳은 우리 첫 아이는 기쁨이 되었어야 하지만, 내 기억에 남은 것은 남편과의 싸움 뿐이다. 어느 날, 나는 집에서 수많은 포르노 잡지를 발견했고 남편이 보는 가운데 그것을 들고나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남편은 너무 화가 나서 내 머리를 주먹으로 쳤다. 나는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아이들과 나를 폭력 피해 여성의 집으로 데려갔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내 몸에 나타났고, 몇 달 후 딸의 첫 번째 생일이 되었을 때 나는 4기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을 순 있다고 했지만, 때로 기력이 없어지고 방사선 때문에 평생 불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생의 절벽에 선 나는 시어머니께 편지를 쓰게 됐다. 놀랍게도 시어머니는 즉각 이스라엘로 와서 내가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봐주시겠다고 했다.

시어머니께서 가정에 미친 영향 덕에, 마침내 나는 공동체에 출석할 수 있었다. 나는 화학요법을 받기 시작했고 남편이 한 직장에 머물러 있질 못했기 때문에, 우린 내가 받는 의료 지원 수당으로 지냈다. 배고플 때가 많았고, 잡지는 또 집에 나타났다. 3년 동안 이렇게 고생을 하다가 어느 날, 치료를 마치고 와보니 남편이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언제 죽을 거야?” 이 말은 내 가슴을 너무 아프게 때렸고, 나는 그가 내가 그토록 바랐던 남편과 아빠가 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이 어려운 때에 아주 지원을 많이 해줬고,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 시어머니 공동체와 힘을 합쳐 나와 암을 위해 기도해줬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의사들은 내 암이 흔적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기적이었다!

내 기쁨에 더해 또 이스라엘 정부는 시가보다 훨씬 적은 값에 내게 아파트를 제공해주었다. 이제 건강해졌으니 나는 일을 해서 집값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편 113편 9절의 성취였다!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나는 노인 요양사로 10년을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집값을 냈다. 그러던 중 한 환자를 들어올리다가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 더 이상 아무도 들어올릴 수 없게 되자 회사에선 나를 해고했다. 즉각 나는 그런 수준의 육체 노동이 필요치 않은 유사 직종의 공부와 훈련을 시작했다. 나는 대출을 받아 수업비를 대며,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과정을 마치고 나는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돕는 아주 좋은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족을 부양하고 빚을 갚을 수 있을만큼을 벌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공동체의 어떤 친구들이 마오즈의 IStandwithIsrael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서 나는 목사님을 통해 지원했다.

내 평생 두 번의 진짜 기적을 체험했다. 첫 번째는 암을 치유 받은 것이었고, 두 번째는 IStandwithIsrael이 내 빚 전체를 갚아준 것이었다. IStandwithIsrael과 후원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출해주셨다!

강화 ————————–
야니나

이스라엘에 오기 전 남편은 우크라이나의 메시아닉 공동체에서 랍비였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잘 지내고 있었고, 사역자로서 부부가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 네 자녀(8,6,5,2세)가 이스라엘을 집으로 알고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은, 두 딸이 경쟁이 센 예술 체조에서 아주 성공 대로를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어떤 체육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믿기로 선택했다.

야니나의 큰 딸이 이스라엘에서 열린 국제 댄스 페스티벌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가진 모든 것을 싼 우리는 사랑하던 모든 이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서 이스라엘행 비행기를 타기 바로 전날, 남편이 갑작스레 죽었다. 우리는 절망에 빠졌다. 더 머무르며 그를 묻어주고 애도했지만, 한 달 후 나는 이스라엘에 우리의 뿌리를 내려 우리 가정을 향한 남편의 꿈을 이루기로 작정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공동체를 찾아 거기서 섬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한 여자 아이들을 위한 굉장한 체조 프로그램을 발견했는데, 우리 딸들은 그곳 덕분에 이스라엘에서 아주 편안히 지내고 있다. 어린 식물을 땅에 심으면, 초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IStandwithIsrael이 우리에게 식료품비와 딸들의 체조 수업비를 도와줘서, 우리는 새로운 나라와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구출 ————————–
리지크

리지크와 아내 샤피카는 나자렡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결혼을 하고 둘에겐 캘리포니아로 이민 갈 기회가 생겼는데, 거기서 리지크는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아랍어 침례교회를 개척했다. 그들의 삶은 문제가 없었지만, 어느 날 주님께서 고향 나자렡으로 부르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짐을 싸서 세 아이를 데리고 예슈아께서 유년기를 보내신 도시(현재는 무슬림이 대다수)로 돌아갔다.

자리를 잡고 공동체에서 섬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샤피카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 사실에 너무나 절망스럽고 우울해하는 샤피카에게, 의사/심리 상담가는 몸을 계속 움직이고 생각을 쉬지 않도록 사업을 시작할 것을 추천했다.

직업상 건축가인 리지크(이스라엘 카르멜 산의 가장 아이콘이 되는 공동체 건물 중 하나를 설계)는 사업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느꼈지만, 아내를 지원하고 싶었다. 둘은 함께 갈릴리 바다 주변에 식당을 열었다. 식당이 처음엔 샤피카에게 기쁨이었지만, 치료가 이어지면서 그녀는 사업에 요구되는 강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실패했다.

얼마 후, 샤피카는 소천하게 됐다. 아직도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던 리지크에게 하나 뿐인 아들이 뇌수막염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아들은 수개월 내에 죽었다. 이제 60대 중반이 된 리지크는 두 딸과 사는데, 고인이 된 아내의 식당으로 생긴 빚은 3억을 훌쩍 넘었다.

이후 22년 동안 리지크는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나자렡 침례 교회에서 장로로 섬겼다. 그러나 계속 이어진 법정 소송, 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 그의 작은 아파트에 찾아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몰수하려는 대출 업체들 때문에 그에겐 온통 먹구름이 드리운 것 같았다.

그러다가 2019년 가을, 판사는 리지크에게 빚(5,500만원 가량) 중 10%만을 5개월 내에 상환한다면 나머지는 탕감될 것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갚지 못하면, 은행은 그의 유일한 자산인 작은 아파트를 몰수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를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딸과 사위, 그리고 손주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판결은 기적적인 돌파였지만, 벌써 84세가 된 그에겐 불가능한 작전처럼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리지크는 섬김의 삶을 심었고, 이제 하나님께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고 간구하고 있었다. 온갖 곳의 친구들-아랍인과 유대인 모두-이 리지크가 매달 돈을 갚아낼 수 있도록 운동을 벌였고, 결국 제때 늦지 않고 낼 수 있었다. 마지막 납부는 올해 4월이었는데, 바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닥쳐와 모든 게 폐쇄된 때였다.

결승선이 눈 앞에 보였지만, 돈이 없었다. 사업체들은 문을 닫았고 많은 은행들도 닫은 상태였다. 사람들은 일을 할 수 없고, 리지크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미 모든 걸 내놓은 상태였다.

우리 IStandwithIsrael 팀은 유월절 이전에 수백 가정에게 음식을 살 돈을 전달하고 있던 중에 팬데믹 한복판에 자신의 아파트를 잃게 생긴 나자렡의 남성 이야기를 듣게 됐다.

분명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실 일이었다.

일단 우리는 그의 기한이 유월절 연휴 중이었고 은행은 그때까지 열지 않을 것이기에 돈을 끌어모아 그에게 주었다. 그 때 당국이 유월절 봉쇄로 인해 모든 도로를 차단한다고 발표했는데, 우리는 그곳에 갔다가 제 시간에 돌아올 수 없을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 위기 중에 사람들을 도우려는 우리의 사역에 너무나 감동 받은 우리 은행이 굳이 수고를 하여 기한 이내에 돈이 리지크의 계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결국 리지크와 통화를 하게 됐을 때,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합니다”라고 겨우 고백했다.

강화 ————————–
생명의 도시 공동체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여행을 계획할 때, 마오즈에서는 보통 몇 주 전에 여행이 안전한지 “확인하는” 전화를 받는다. 우리가 즐겨하는 정형화된 대답은 (빙그레 웃으며)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 거리를 새벽 2시에 걷는 게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대답을 하고서, 주님께서 진짜 가라고 하시는 게 아니면 방문하지 않는 게 좋은 특정 지역들에 대해 이야기는 한다. 그중 하나가 스데롵이다. 스데롵은 가자 접경에서 몇 km떨어진 곳인데, 가자에서는 놀랍게도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에게까지 로켓 발사법을 가르친다.

캡션: 스데롵 경찰서에는 가자로부터 날아온 수백 발의 로켓의 잔재가 모여 있다. 출처: 셔터스탁

스데롵은 그 지역이 안전했던 수십년 전에 세워졌다. 그러다가 하마스가 장악한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집들이 방공호가 없이 지어졌다. 현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데롵 주민들이 밤낮 경보 소리를 듣기 때문에 공공 방공호가 사방에 있다. 최소 한 달에 한 번 로켓이 발사되고, 때로는 하루에도 수백 발이 날아든다. 주민들에겐 사이렌이 울리고서부터 로켓이 폭발할 때까지 불과 15초 밖에 없다.

이 마을로 미카엘과 디나 비네르 부부는 주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 20년 전엔 현지 대학교 청년들 대상의 아웃리치로 시작했는데, 이제 성공적인 구호 아웃리치이자 공동체가 되었다.

현지 정통파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사역을 공격함에도 불구하고, 시청 관료들은 공개적으로 미카엘과 디나가 청렴함과 긍정적 영향력으로 지역 사회에 얼마나 이바지했는지를 인정했다. 미카엘과 디나의 공동체는 PTSD(공격과 테러로 인한 트라우마 장애)가 가득한 도시에서 빛을 밝히고 있으며, 이들이 공동체의 새로운 모임 장소에 어떤 장비가 필요하다고 요청서를 냈을 때 IStandwithIsrael은 도울 수 있는 걸 영광으로 여겼다.


예루살렘에서 샬롬을 전합니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재밌는 일입니다… 단순한 드림을 통해서 말이죠!

            누군가의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선으로 표현하려면, 그들에게 IStandwithIsrael과의 만남이 크고 아름다운 전환점이자 그들이 자녀, 가족,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또 할 간증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전환점에서 이야기가 변화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여러분 덕분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전 세계 믿는 이들이 아낌 없이 사랑을 쏟아부어주셔서, IStandwithIsrael지난 한 해를 합친 것보다 지난 6개월간 많이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가정이 회복되고 절벽에 서있던 생명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 덕분입니다!

            오늘은 몇 개의 이야기를 소개했을 뿐이지만, 저희에겐 이스라엘 전국 70개 공동체의 아랍, 유대인 신자들로부터 산더미 같은 지원서를 받습니다. 모두 저희가 도와줄 수 있다는 소식과 그들이 요청한 부분을 위한 자금이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죠.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편 37:25)

            다윗 왕은 예루살렘 성에서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3천 년이 지난 현재, 여러분의 선물이 바로 이 말씀의 성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번에 하나의 선물(가정)으로 말씀을 성취해가며,

아리&쉬라 소르코람Ari and Shira Sorko-Ram
코비&샤니 퍼거슨Kobi and Shani Fergu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