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Shutterstock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7월, 2020

교회사에서 안 가르쳐주는 이야기

지난 해, 한 기독교 단체가 페이스북에 영상을 게시했는데 한 전도자가 예루살렘의 주요 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 거리는 우연인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정통파 유대교인들이 산다고 할 만한 곳과 접해 있었다. 그는 블루투스 마이크를 허리에 찬 스피커와 연결해 사용했고, 그의 “활동"을 녹화하기 위해 촬영자가 함께 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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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ra Sorko-Ram
으로 Shira Sorko-Ram

지난 해, 한 기독교 단체가 페이스북에 영상을 게시했는데 한 전도자가 예루살렘의 주요 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 거리는 우연인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정통파 유대교인들이 산다고 할 만한 곳과 접해 있었다. 그는 블루투스 마이크를 허리에 찬 스피커와 연결해 사용했고, 그의 “활동”을 녹화하기 위해 촬영자가 함께 다니고 있었다.

“분노한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저희를 돌로 치겠다고 위협합니다. 화난 사람들과 청소년들, 심지어 IDF 군인들이 저희를 막으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게시된 영상을 소개하는 글은 이런 내용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보행 전용 거리에서 소음을 내는 사람이라면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이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거슬릴 수 있다는)는 제쳐두겠다. 하지만 이 사람은 먹을 것을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를 팔고 있었다.

이 전도자가 2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기독교로부터 당해온 것에 대해 시간을 내어 공부를 했더라면, 유대인들이 회심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유대 민족의 용서를 구하며 겸손하고 더 적절하게 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유대인들은 예슈아를 믿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때, 기나긴 목록을 제시하기 시작하는데, 홀로코스트, 십자군, 종교재판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대인이 예슈아 신앙을 논하는 것은 실제 예슈아라는 인물과 거의 관련이 없다. 예슈아를 대신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 민족의 생존에 있어, 가장 중대한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되어 왔음을 증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어둡고도 슬픈 이 역사는, 깨달음만 있다면 우리 시대에 구속될 수 있는 것이다!

옛날이 좋았지

십자가 이후 한 세대 동안 온전히 예슈아를 따르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며 유대인 메시아 예슈아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사 죽으셨다는 영광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 믿는 유대인이 최소한 5만 명이 있었다고 추산하는데, 당시 이 도시 인구는 50만 가량이었다. 그러니까 현재 이스라엘 땅에 있는 믿는 유대인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전 이스라엘 국회의원이자 학자인 아바 에반은 나아가 예루살렘 주민의 ⅓ 가량이 예슈아를 믿었다는 주장을 기록했다.

곧 샤울(바울 사도)의 주도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 놀라운 소식을 비유대인들에게 전하라는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다. 새로운 메시지를 듣고 자신들의 이교적 생활 방식을 버린 비유대인들의 숫자는 늘어나기 시작하여 로마 제국 전역에 수십 만에 이르게 됐다.

그러던 중 주후 70년이 됐다. 유월절 사흘 전, 예루살렘은 절기를 위해 그곳을 찾은 유대인 순례자들로 가득 찼는데, 디도가 3개 부대로 도시를 둘러쌌다. 그들은 넉 달 동안 성을 포위하였고 마침내 로마군이 성벽을 뚫었다.

로마는 예루살렘을 유린했고 성전을 불태웠다. 살아남아 굶주려 있던 유대인들은 성에서 음식을 찾고자 몰래 빠져나왔다. 이 중 일부는 잡혀 노예로 팔렸다. 나머지는 하루에 약 500명 단위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겨우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지중해 주변 지역으로 도망쳤다. 유대에 남은 이들은 그 다음으로 로마를 통치하게 된 하드리아누스에게 박멸될 것이었다. 그의 통치 말인 주후 138년에 이르러는 믿는 유대인들의 공동체에 대한 모든 증거가 사실상 사라진다.

새로운 복음

로마 제국의 막중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들이 비옥한 이방인 토양에 심은 신약의 씨앗들은 깊이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신약의 모든 책들이 이제 다 쓰인 시점이었지만, 신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이 회람되는 것은 느리고 고르지 않았다. 믿는 유대인들의 숫자는 가히 0에 가까워진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반유대주의의 초기 징조가 눈에 띄게 됐다.

그 결과, 최후의 사도가 죽은 지 겨우 50년 밖에 안 됐을 때, (로마에 의해 순교 당한) 유스티누스 마르튀르는 혐오적이고 사랑 없으며, 심히 시기적인 영이 자신의 삶에 들어오도록 두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눈 멀고 목이 곧은, 이제 멸종된 신앙을 고수하는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유스티누스가 기독교의 영웅으로서, 또 유대인에 대한 선동가로서 미친 이중적 영향은 기독교 반유대주의의 사악한 씨앗을 심음으로써 주류 기독교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이 후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괴물스러우면서도 불가분한 공리를 이루게 된다.

유덴자우(유대인 암퇘지) 형상은 중세 내내 조각, 회화와 건축물에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 랍비가 돼지 항문에서 나오는 배설물을 먹고 유대인들은 돼지 젖꼭지에서 돈유를 빨아먹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불과 올해 2월에도 독일 법원들이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그 근거로 들며 이러한 형상의 조각을 개신 교회에서 제거해 달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 출처: Wikipedia

교부들

아래 열거된 교부들은 기독교의 영향력을 키우고 늘린 것을 인해 숭상된다. 하지만 그들이 끼쳤을지 모를 선한 영향에도 불구, 유대 민족을 향해 명백히 드러낸 증오는 수많은 유대인들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기록된 역사 가운데 아마도 선을 악으로 갚은 가장 슬픈 역사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암흑기에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독교리들 일부가 탄생되었음을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누스

(주후 184~254년) 그리스도의 죽음을 두고 유대 민족 전체를 탓하는 데에 최초로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 선언은 곧 로마 카톨릭 교회 교리의 규범이 되었다.

테르툴리아누스 (주후 155~240년) 다음과 같은 소송을 제기하며 주장했다. 1.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 지위를 유대인들로부터 넘겨 받았다. 2. 새 언약은 구약을 대체한다- 할례, 안식일 준수와 성전 제사는 과거의 산물이다. 3. 교회는 이제 구약에 약속된 바를 물려 받을 (유일한) 상속자다.

알렉산드리아의 유세비우스 (주후 270~340년) 유대 민족을 회심시켜야 한다는 좋은 근거를 깨달았지만, 동시에 메시아를 거부한 민족으로서 그들이 상징하는 바에 환멸을 느꼈다. 한때 그는 설교를 하면서 모든 문단을 이렇게 시작했다. “목이 곧고 할례 받지 않은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었다가 늑대가 되었고, 하나님의 어린 양을 향해 이를 갈았다. 지옥이 너희 아버지 마귀와 함께 너희를 옥에 가둘 것이다.” 이와 같은 초청을 보낼 때, 유대인들이 관심이 보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주후 306부터 337년까지 통치했는데, 기독교인이 되어 자신의 고문이었던 유세비우스로부터 유대인들을 향해 점점 더 커져가는 증오를 흡수했다. 권력의 위치에 있었기에 그는 교부들이 유대인들을 향해 갖고 있던 반감을 실행해낼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과의 혼인을 금했으며, 부활절과 “더러운” 유대 유월절 사이의 분리를 명령했다.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언제나 독려됐지만 기독교인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은 사형감이었다.

4세기 말에 이르러, 유대 민족에 대한 증오는 만개하게 된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주후 347~407) “유대인들에 반대하는 8개 설교”로 알려진 저명한 신학자로, 이 설교를 통해 그는 원색적인 모욕을 길게 나열한 뒤, 유대인들에겐 “속죄도 면죄도, 용서도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도들의 정서에 맞춰, 회당과 유대인들을 증오한다고 선언했는데, 그 이유는 귀신들이 그 안에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들은 청중들이 그대로 받아적었고, 이후 기독교계에서 회람되었다. 이 설교들은 기독교 반유대주의사의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2차 대전 중 독일의 나치당은 크리소스토무스의 저작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기독교인들에게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했다.

마르틴 루터 (주후 1483~1546)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최초의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인생 초반에 그는 유대인들을 루터교(개신교)로 개종시키길 바랐다. 초기 저작들은 카톨릭 세력에 의해 기독교 개종을 강요 당하며 괴롭힘을 받은 유대인들에 대한 동정심을 표했다.

“내가 유대인이었다면, 그리고 그런 멍청이와 얼간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치리하고 가르쳤다면, 나는 기독교인이 되기 보다는 수퇘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보다 개를 다루듯 유대인들을 대했다. 유대인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 말고는 거의 한 게 없다.”

하지만 이후에 루터는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에 질려, 유대인들은 “마귀의 배설물로 가득하고…돼지처럼 그 안에서 뒹굴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회당과 학교를 불태워야 하며, 그 기도서들은 없애버리고 랍비들의 설교를 금해야 하고, 그들의 집도 불태우고 부동산과 자산을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독을 품은, 독성을 가진 벌레들은 차출하여 강제 노동을 시키거나 아예 추방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내렸다. “이들의 목을 베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제3제국의 흥망>이라는 저서에서 윌리엄 쉬러는 말했다.

두 가지 사실을 알지 못하면 초기 나치 통치 당시 대부분의 독일 개신교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와 마르틴 루터의 영향이다. 개신교의 위대한 창시자 루터는 열성적인 반유대주의자로 정치 세력에 전적 복종을 맹렬히 믿었다. 그는 유대인 없는 독일을 원했다. 루터의 조언은 말 그대로 4세기 후 히틀러, 괴링, 힘믈러의 추종을 받았다.

잉글랜드 – 십자군

11세기 말엔 십자군의 등장했다. 본질상 이들은 교회의 군사 조직이었다. 그들은 무슬림이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땅을 기독교를 위해 정복한다는 임무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성지로 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십자군들은 유대인 가족들을 회당에 몰아넣고 가둔 뒤, 산 채로 불태워버리는 것에 대중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십자군들은 불타는 회당을 둘러싸고 행진하며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때로 유대인들과 그들의 소유물을 불태우는 것은 낭비로 여겨졌다. 그래서 십자군들은 붙잡은 유대인들을 종으로 팔고 그들의 소유물을 취하기도 했다. 일부 유대인들은 강제로 기독교 개종을 당했다. 많은 이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교회에 가담하기 보다 죽기를 택했다. 하지만 선별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유대인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공포가 두려워 자살했다.

십자군의 공격은 유대인들의 부패에 대한 거짓 이야기들이 번지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1144년 12세 영국 소년을 살해한 이야기는 새로운 종류의 소문이 돌게 했다. 유대인들이 모든 나쁜 상황에 대한 딱 좋은 희생양이긴 해도, 살해 배후의 이야기는 유럽 전역에서 그들이 매년 유월절을 위해 그리스도인 아이들을 죽여 그 피로 마짜(무교병)를 만드는 예식을 한다고 정죄를 받게 되기까지 변이를 일으켰다. 그들에 대한 정죄가 특히나 큰 상처를 준 것은, 유대인들은 인신 제사는 고사하고 어떤 피도 먹어선 안 된다는 철저한 율법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것을 믿었고 이제 유대인들은 악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세계의 많은 이들은 피의 중상으로 알려진, 이 조작된 이야기를 믿는다.

이 아수라장이 한창이던 1290년,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1세는 왕국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추방했다. 그렇다. 영국의 모든 유대인들이 남김없이 국외로 쫓겨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으로 들고갈 수 있는 만큼만 소유물이 허용되었다. 약 400년간 영국은 유대인들이 없는 땅이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동일한 증오는 프랑스, 독일, 그리고 유럽 대륙 전역에서 복사, 붙여넣기가 되었다.

개종이나 스페인으로부터의 추방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이단이라 불렸고, 화형될 수 있었다. – 출처: Wikipedia

스페인 – 종교재판

스페인의 종교재판은 오늘날까지도 그 잔혹성과 철저함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중세 스페인에 살고 있던 수십 만의 유대인들 가운데 대다수는 14세기 말 포그롬으로 알려진 폭력적 핍박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이었다.

고위층과 평민들이 의견 차를 보이지 않은 부분은 많지 않았는데, 유대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할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1391년 여름, 대중 폭도들이 발렌시아 유대인 공동체 외곽에 모여, 모든 유대인들의 개종을 요구했다. 폭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거기 있던 2500명의 유대인들 가운데, 200명은 그 자리에서 개종됐고 나머지는 살해됐다. 세비야라는 도시가 그 다음이었는데, 거기선 4천 명이 살해됐다. 유사한 폭동이 스페인 전역으로 이어졌다.

개종한 유대인들은 “꼰베르소스”로 알려졌지만, 계속해서 유대교 신앙을 비밀리에 실천한 이들은 “마라노스(돼지들)”라고 불렸다. 이 꼰베르소스 그러니까 “신규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신앙을 진실되게 지키도록 만들기 위해, 카톨릭 군주들은 1481년에 성 종교재판소를 세웠다. 이들의 역할 중에는 속이는 자들을 고문, 사살 혹은 추방을 통해 제거하는 표준 의무가 있었다. 물론 범법자들에겐 자신들의 악한 길을 떠나기로 선언하고 세례를 받을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마침내 1492년, 그러니까 교회 지도자들이 누가 진짜 카톨릭이고 누가 아닌지 씨름해온지 100년 만에 새로 세워진 이사벨라 왕비와 페르디난드 왕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유대인과 마라노들은 신분을 밝혀 추방한 것이다. 이 칙령으로 카톨릭에 굴복한 마지막 무리의 유대인들이 생겨났다. 추방을 선택한 이들은 수년 동안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살기에 안전한 곳을 찾아 헤맸다. 일부는 포르투갈로 갔지만 거기서도 곧 쫓겨났다. 또 어떤 이들은 바다를 건너 남미로 갔다. 현대 DNA 검사*에 따르면, 현대 스페인과 포르투갈 계통의 평균 20%가 유대 혈통의 DNA를 갖고 있다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그 수치가 더 높다. 많은 마라노들이 이 곳으로 도망했기에 23%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개종을 강요당하고 기독교 인구로 흡수됐던 스페인 유대인들의 거대한 숫자를 과학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다.

러시아 – 포그롬

순위를 매길 수 있다면, 러시아 정교회(11세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 분리)가 아마도 함께 거주한 유대인들에 대해 가장 일관되게 적대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첫 번째 선택지는 항상 정교회로의 개종이었다. 그것을 거부해도 유대인들은 다른 러시아인들과 함께 혹은 그 근처에서 사는 것이 허락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로 인해 유대인 공동체는 극도로 격리되게 됐다. 차별과 분리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교육을 비롯 참여가 허락된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탁월했다.

하지만 유럽이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겪는 동안, 러시아 통치자들은 유대인 국민들을 짓밟았다. 1791년, 예카테리나 대제는 러시아의 한 지역에 원을 그려, 모든 유대인들에게 그 안에서만 살 것을 명했다.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5백만의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정착촌 한계the Pale of Settlement라는 그 지역으로 이주하게 했다. 여전히 증오는 곪아갔고 교회 지도자들이 주도한 폭도들은 정착촌을 침략하여 유대인 슈테틀(마을)을 공격하며 살해, 강간, 절도를 일삼았다.

1880년부터 1920년까지 기간에 이 포그롬은 만연했고 2백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러시아를 탈출했다. 약 5만 가량은 이스라엘에 이르러 이후 이스라엘 국가가 될 것의 기반을 닦는 초기 선구자들이 되었다. 아리 소르코람의 어머니도 이 기간에 러시아를 탈출했다. 그녀가 탄 배는 이스라엘에 정박하려 했지만 입국을 거부 당했다. 결국 프랑스에서 출항한 그녀는 미국에 이르게 된다. 그녀는 살아남지 못했지만, 7남매 중 막내아들인 아리는 결국 이스라엘로 이민에 성공했다. 그는 조상들의 땅에 가족의 뿌리를 내리는 어머니의 꿈을 성취했고, 현대 이스라엘 메시아닉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됐다.

수십 개 국가에서 온 수천 명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과의 유대를 표명하며 예루살렘을 행진했다. 영국 그리스도인들이 축복하기 위해 멈춰서자 이스라엘 안보군이 미소 짓고 있다. – 출처: Dreamstime

결론적으로, 기독교인이라 자칭한 모든 사람들이 유대 민족을 경멸한 것은 절대 아님을 기억해야만 한다. 더욱이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은 암흑기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대 개신교 교단들-교회 교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앙 생활은 해온 이들-은 탄생 이래 유대 민족을 향한 비교할 수 없이 가장 큰 사랑을 보여줬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자면, 현대 교회 사상 가운데에서 여전히 반유대적 찌꺼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교단적으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스라엘의 자리를 배제하거나 아예 피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이 이 역사로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천년 묵은 상처는 하루아침에 낫지 않는다. 예슈아라는 선물을 인정하지 않은 유대인들에 대해 감히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 때문에 자신들에게 강요된 우상과 같고 이교적인 종교를 마땅히 거부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전 세계로 뻗어가기 위해 유대인들을 사용하시고, 또 그 다음으로는 이스라엘에 다가가기 위해 열방을 사용하실 것을 항상 계획하셨다. 하지만 원수는 그만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먼저, 하나님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스라엘이 존재해야만 했다! 이스라엘을 이 땅에서 멸절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 악한 패턴이 역사를 관통하여 반복되는 것은 기독교의 탄생 이전부터도 볼 수가 있다. 둘째,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라는 교회의 부르심(롬 11:14)을 알 때, 이스라엘로 하여금 교회라는 언급만 들어도 불쾌하게 만드는 것보다 그 부르심을 무효화하기에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사실들은 유대인들에게도 하늘 아버지와 화목케 되기를 바라는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죄 사함을 위해 예슈아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변개치 않는다. 그러나 미소 지으며 악수를 한다고 해서 이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랑과 신뢰에 근거하여 다리를 다시 놓고자 전 세계가 겸손, 긍휼, 인내로 나아가야 한다. “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세상에 전해준 민족에 대해 순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오늘날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독교가 금기이며 심지어 위험하다고 여기지만, 전반적으로 태도가 바뀌었음을 인정하고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전통적 교회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거듭난 기독교인”들을 구분한다.

완전한 치유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갖고 계시던 계획을 향한 첫 걸음으로는 좋다.

*미국 인간 유전학 저널


예루살렘에서 샬롬을 전합니다!

저 샤니는 최근 할아버지이신 고든 린지 씨가 1966년에 후원자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해 쓰신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엔 당시로서는 완전히 틀을 벗어난 두 가지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었습니다. 1) 유대인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갚아야 할 때다. 2) 우리는 “메시아닉 메시지”로 유대 민족에게 다가가야 한다.

할아버지의 첫 번째 아이디어는 요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합시다”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단체들이 잘 나가고 있는지 셀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아이디어는 달성이 훨씬 어려운 것으로 나타납니다.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나 많고, 선교, 복음, 십자군, 심지어 그리스도 같은 용어들이 수 세기 동안 잔혹한 내포적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첫 몇 마디를 넘어갈 수가 없어서 생명의 메시지 전체를 절대로 듣지 못할 것입니다.

마오즈는 40년 이상 이스라엘에서 사역해왔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대인 메시아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생명을 바쳐 왔습니다. 이들에게 다가가는 데에는 많은 인내와 기도, 그리고 창조성이 필요합니다.

교회사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수치를 안겨 오늘날 침묵하도록 만들어선 안 됩니다. 오히려 반대로 선조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고 새 언약을 유대 민족에게 돌려줄 동기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마오즈 사역을 후원하실 때, 바로 이런 일들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후원금과 모든 기도는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의 얼룩들을 밀어내고 씻어내는 데에 보탬이 됩니다.

이방인 교회는 처음에 그 일을 홀로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함께 하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종 된

아리&쉬라 소르코람
코비&샤니 퍼거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