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3월, 2020

거래는 성사될 것인가?

유대인들과 그들의 사촌인 아랍인들 간의 평화라는 불가능한 꿈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한 달 여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발표되었다. 평화 논의는 이스라엘이 재탄생한 1948년 이래 거의 쉼없이 이어져 왔지만, 실제로 마주 앉아 조약을 맺게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이 숭고한 책무를 떠맡는 엄숙함을 헤아려보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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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i Ferguson
으로 Shani Ferguson

유대인들과 그들의 사촌인 아랍인들 간의 평화라는 불가능한 꿈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한 달 여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발표되었다. 평화 논의는 이스라엘이 재탄생한 1948년 이래 거의 쉼없이 이어져 왔지만, 실제로 마주 앉아 조약을 맺게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이 숭고한 책무를 떠맡는 엄숙함을 헤아려보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약 40여년 전 이래 두 명의 총리-이쯔학 라빈과 아리엘 샤론-가 평화를 기대하며 팔레스타인 측에 땅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두 총리 모두 수개월이 지나지 않아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마법과 강신술과의 연관성 때문에 카발라를 수행하는 것은 수년간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도 이단적인 관습으로 간주된다.

카발라의 저주

1995년 이쯔학 라빈 총리가 살해되었을 때 나는 청소년이었다. 나라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 야쎄르 아라파트 PLO 수반과 오슬로 조약을 맺은 것을 탐탁잖게 여겼다. 이 조약은 유대-사마리아(서안지구) 지역의 상당한 부분을 팔레스타인 측에 넘기는 것을 평화 로드맵의 초기 단계로 요구했다. 수년 후, 아라파트와 그의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요르단에서 쫓겨났는데, 나라에 그만큼 위협이 됐기 때문이었다. 레바논에서 끔찍한 혼돈을 일으키자 이스라엘은 그들을 레바논에서도 쫓겨나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안타깝게도 더 이상 갈곳이 없게 된 아라파트는 자신의 PLO 본부를 서안지구에 세우고 여생 동안 이스라엘을 고문했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 있어 현대 테러리즘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됐으며, 또 어떤 이들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구원자라고 추앙하고 있다. 결국 아라파트가 원하던 바를 얻게 만들어준 것은 그의 폭력이 아니었다. 그의 정치적 수완이었다.

1993년 9월 13일 오슬로 조약 때의 이쯔핰 라빈, 빌 클린턴, 야쎄르 아라파트

전략을 재정비한 아라파트는 1960년대에 “고향 예루살렘”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그린 슬픔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억양은 분명 그가 이집트 출신임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며 PLO는 그들의 거친 주장이 실향에 대한 반응에 불과한 것이라고 세계 지도자들을 설득해냈다. 세계인들의 시각 가운데 그들은 (주변 아랍 영토에서) 맨손으로 여성과 아이들을 죽인 피비린내 나는 도살자에서, 따뜻한 집을 필요로 하는 다친 강아지로 입장이 바뀌었다. 일부 이스라엘인들조차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마치 “모든 것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실상 마음은 선하다”라고 한 안네 프랑크처럼 스스로 바라는 것과 믿는 것을 분리시킨 사람들이 됐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 PLO는 쉽게 아랍어를 통해 자신들의 피로 예루살렘행 길을 놓아 악한 시온주의자들에 대한 무장 저항을 해야 한다고 선동했던 한편 영어를 통해서는 고향 예루살렘을 그리며 그곳에서 가정을 꾸려가고 성전산에서 평화롭게 알라를 예배하겠다는 순전한 갈망만을 이야기했다.

이집트의 나쎄르 대통령은 요르단의 후쎄인 국왕과 PLO의 야쎄르 아라파트 간의 휴전을 성사시켰다. 국왕의 법을 무시하고 사실상 요르단 내에서 자신들만의 나라를 운영해 온 PLO는 요르단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이후 이스라엘 내에서 자신들만의 나라를 구성하는 동일한 전술을 사용한다.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경고의 조짐들은 다 있었다. 당시 PLO 로고에는 팔레스타인 지도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우연처럼 그것은 이스라엘의 지도와 정확히 똑같이 보였는데 “이스라엘”이라는 말만 빠져 있었다. 그러나 라빈은 다친 강아지 스토리에 넘어가 오슬로 조약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이 조약을 안 좋게 봤지만, 초정통파 유대인들은 격노했다. 라빈 총리가 평화라는 단순한 약속의 대가로 알라를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땅을 내어준” 것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신비주의 카발라를 수행하는 급진 유대교 한 분파는 즉시 풀사 드누라פולסי דנורא라는 저주를 라빈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걸었다. 이 예식의 많은 부분은 쉬쉬하는 내용이라, 이 저주의 성질과 행태에 대한 동의를 얻기는 어렵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주술 같은 저주는 하나님께 대한 막중한 죄를 저지른 개인의 죽음을 일으키도록 파멸의 천사들을 깨우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라빈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총에 맞아 숨졌다.

사건이 터진 것을 들은 장소가 기억에 남는, 일생일대의 순간이었다. 라빈만 살해 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이스라엘에 사는 우리는 이런 저런 테러 공격의 위협 아래 늘 있다. 그러나 라빈은 다름 아닌 우리 민족, 초급진 정통 유대인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세속 유대인과 종교인들이 폭넓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지만, 무언의 룰은 있었다. 우리를 죽이려는 적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서로를 죽임으로써 그들을 도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약 10년 후, 아리엘 샤론은 팔레스타인 측이 스스로 독립 국가를 평화롭게 영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주고자 수천 명의 이스라엘인들을 살던 집에서 철수시키고 가자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했다. 즉각 그도 카발라주의자들로부터 동일한 처리를 당했다. 나는 세속 언론에서 샤론 총리의 풀사 드누라를 둘러싸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그 효과를 믿지 않았지만 단순히 또 다른 청년 급진파를 고무시켜 자기충족적 예언을 만들어 낼까 우려했다. 하지만 6개월 후, 샤론 총리는 그를 뇌사 상태로 만든 뇌졸중을 맞았다. 그는 나머지 신체 부분들이 결국 멈출 때까지 7년 동안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 의식 없이 살았다.

1979년에 조인된 평화와 땅을 맞바꾸는 조약이 하나 있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에 맺어진 것으로, 이스라엘 총리의 죽음을 낳진 않았다(어쩌면 카발라주의자들이 당시엔 이후만큼 조직적이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상대국 지도자 즉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죽음을 낳았다. 그는 이스라엘이 앞서 6일 전쟁으로 정복한 시나이 반도 전체(이스라엘의 나머지 영토보다 2배 이상 큰 땅)를 내놓도록 이스라엘을 설득하며, 그 대신 이집트와의 냉랭하지만 굳건한 평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무도 카발라주의자들이 이 지도자들의 죽음 가운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역할이 있기라도 했는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분명 어둠의 능력은 실재한다. 또 반면에 카발라주의자들은 다른 많은 정치인들을 저주했지만, 그들은 지금도 건강히 살아있다.

“아브라함의 약속의 땅”을 검색해 보면, 다양한 일러스트 지도를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국경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이집트의 강까지”처럼 일반적인 영토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것을 보면 ‘이집트의 나일 강인가, 아니면 다른 강인가?’ ‘이 국경은 강 전체를 포함하는 것인가, 아니면 강의 북쪽 지점만 포함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지점이 어디인가?’와 같이 구체적인 부분들에 궁금증을 갖게 된다.

마음대로 내어줄 권한이 없다

분명히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요엘서 3장 2절에서 열국이 하나님의 땅을 나누는 행위를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주님께서는 너무나 거슬리는 것이어서 이 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특별한 심판의 날을 지정하기까지 하셨다. 어쩌면 그 땅을 나누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님이나 그분의 계획을 인정하지 않는 자일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무조건 그 땅을 다른 민족에게 주는 것은 누구의 권리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이 거룩한 땅에 대한 청지기에 불과하다. 이곳에 있을 권리가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나라들에게 다른 땅들을 나눠주셨을 때 이와 똑같이 확고부동하셨음에 주목해야 한다. 신명기 2장 9절은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일부 아랍인과 드루즈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을 포용했을 뿐 아니라, 유대인 편에서 싸웠고 현재 중동에서 가장 자유롭고 발전된 국가의 국적을 누리고 있다.

세계 1차 대전 중, 영국은 아랍 민족에게 그들이 오토만에 맞서 싸우면 각자의 영토에 대한 주권을 보상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보상의 때가 되었다. 그래서 오토만 제국이 세계 2차 대전의 끝에 패배했을 때, 국제연맹은 함께 모여 중동을 지역 별로 분할했다.

땅의 구획이 나뉘고 신생 아랍 국가들이 생길 때, 그들이 지정한 내용은 상당 부분 이의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영국 위임통치령 때문에 대영제국은 무릎을 꿇었다. 다시 한번 중동 전체를 자치할 것에 열광했던 아랍은 곁에서 유대인들이 같은 특권을 누리는 것에 맹렬히 반대했다.

결국 영국의 발푸어 경이 유대 민족의 국토로 주고자 의도했던 땅의 ⅔ 이상이 요르단이라는 또 하나의 아랍 국가를 만들도록 주어졌다. 또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 중에 요르단은 동예루살렘과 유대, 사마리아(현재 요르단강 서안 지구로 알려져 있는 지역)를 함락시켜 차지하기 위해 나섰다. 그들은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주류 유대 주민들을 내쫓고, 남아서 그곳 땅을 차지한 아랍 거류민들에게 요르단 시민권을 주었다. 이스라엘이 1967년 예루살렘, 유대와 사마리아를 수복했을 때, 그들은 많은 요르단인들에게 그곳에 남아있도록 허해주었다. 이 아랍인들은 집도 요르단 국적도 유지했지만,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정치적 투쟁에 가담하여 스스로 팔레스타인 난민이라는 정체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피해자

이스라엘에서 매일 생활을 하면서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아주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다. 주기적으로 테러 공격이 서로를 대립하게 하지만, 우리는 늘상 마주하여 일하고 서로의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그런다. 나는 평생 여기 살았지만도 사람을 처음 만나서 그 사람이 유대인인지 아랍인인지 분간을 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늘 응급 상황에 유대인이 아랍인을 도와줬고, 또 아랍인이 유대인을 도와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이런 게 절대로 국제 뉴스에 전해지진 않는다.) 나도 한번은 아랍 동네에 가서 아이폰을 잃어버렸는데, 그 동네 주민이 찾아서 돌려줬고 그 선행에 대해서 보상을 받기를 거절했다. 오히려 차를 마시고 가라고 나를 초대했다.

하지만 공공 장소에서는 그들의 정직한 의견을 듣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과 가족들의 생명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부 용감한 아랍인들은 공공연히 주장하기로 돌아보니 이스라엘과의 이 오랜 존재적 싸움에 돌입한 것이 사상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땅을 파볼수록 그들은 더 초라하고 비참해지는데 (폭력적인 봉기들과 그에 따른 분리장벽과 더불어) 그들의 지도자들은 세계에서 산더미 같은 돈을 받고 있다.

이 모든 난리 가운데 최고의 피해자들은 일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다. 그들은 기회만 있다면 그냥 살림을 꾸려가며 가족들과 살고 싶은 단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중동의 노리개가 되었다. 그들의 고난은 악화되고 이스라엘이 악하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기피되고 전체 아랍의 일원으로 결코 온전히 포용되지 않는다. 사실 아랍 연맹 회원국들은 주변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자국에 흡수하여 국적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회만 있다면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단체에서 그들의 탈출 비용을 대겠다고 제안하자, 아랍 지도자들은 인종 청소라며 소리질렀다. 무슬림 아랍 세계에 있어, 난민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이슈가 된 적이 없다. 오히려 난민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늘 그들에겐 중요하다.

한때 독립 국가를 만드는 꿈에 동의했던 사람이라도 자신들을 인도하겠다는 지도자들이 부패한 현실을 무시하기란 어렵다. 이들은 일종의 연옥에 갇혀 있다. 한편으로는 요르단에 있는 친족들(요르단의 인구는 70%가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을 바라보며,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인들(1948년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고 국적을 부여 받은 아랍인들)이 자유를 누리며 현대 민주 국가의 혜택을 받는 것을 쳐다보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압바스 수반은 UN에서 트럼프가 과거의 어떤 평화 구상들보다 적은 양의 땅을 제안했다고 자료를 사용해 주장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 말은 맞다. 그들은 진작에 제안된 국가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중동의 장기판

트럼프 대통령의 세기의 거래가 일자리와 번영에 대한 전망을 제공하지만, 아랍 사람들이 돈을 버느라 너무 바빠서 자살 폭탄 테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볼 때, 이 평화 구상의 가장 독특한 요인은 아랍의 지지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지원이 아니라,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과 오만이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이 구상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국가 중 일부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스스로 회담에 참여하기까지 시작했다. 이러한 발전은 이전에 이스라엘의 파멸을 바랐던 주변 아랍 국가들의 마음이 이제 그 존재의 유익-경제 부양과 중동 전역의 사회-정치적 안정 등-을 깨닫고 있는 가운데 본래 팔레스타인 아랍 어젠다라는 관에 단단히 못을 박고 있는 형국이다.

이 문제가 왜 웃어넘길 것이 아닌지 이해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네타냐후와 간츠 모두 (이번 달에 열리는 선거에서 총리직을 두고 경합하고 있는 두 후보) 트럼프의 이 구상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안을 이스라엘이 받아들이는 것은 이스라엘이 전략적으로 안보 상의 이유로 땅을 병합할 합법적 기회를 제공해주는데, 이는 지금껏 국제 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온 것이다.

세기의 거래에 합의하면서,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가자와 유대-사마리아 일부에 팔레스타인 주권 국가를 세운다는 생각을 받아들인 것은 최초다. 그러나 날 때부터 나를 증오하도록 가르침 받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대단히 전략적인 수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양측이 이에 합의하기로 결정을 한다면 트럼프 본인만큼 충격을 받는 사람이 또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의미심장한 진일보일 뿐 아니라 주문 같은 게 걸려 있는 위험천만한 거래다.

이 이슈의 복잡성은 가히 끝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고대의 것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사회적이면서도 정치적이고, 물리적이면서도 영적인 갈등이기 때문이다. 최대의 아이러니는 팔레스타인의 구속은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그치기로 할 뿐 아니라 그 한 분을 경배하기로 할 때에만 충만하게 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한 가지만 기도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 현 지도자들의 속박으로부터 아랍인들을 구출해주시고 또한 이슬람의 견고한 성으로부터 구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세기의 거래가 되진 못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2천년 간 연출되고 있는 계획이다. 여러분이 기도로 우리와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이것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 보장되어 있는 평화 구상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의 강탈 및 도용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혼돈이 잦은데 대부분 그 이유는 그 고대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가 아주 상이하기 때문이다. 고대에 로마가 광활한 영토를 통치했을 때, 그들이 정복한 유대 지역은 언제나 실망의 근원이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로마의 이교적 행위들과 가이사가 신이라는 주장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종교적 열심 가득한 자들의 난투와 봉기에 질린 로마는 마침내 예루살렘을 으스러뜨리고 그 안의 유대 주민들을 거의 다 추방시켰다. 그들이 카이사르에게 일으킨 그 끝없는 문제들에 대한 종지부로 로마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그들의 악명 높은 대원수 블레셋을 따서 “팔레스타인”으로 바꿨다. 블레셋은 이미 수백 년 앞서 멸종되었(고 그들은 아랍 인종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이 용어는 따지고 보면 어떤 민족에게도 이 땅을 할당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모욕감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겨난 주후 70년으로부터 그 후손들이 돌아와 독립을 선언한 1948년까지 박혀 있었다. 그 지역엔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주권 국가가 세워지지 않았다.

이 1939년 발행 불어 사전엔 “팔레스타인”이 분명 유대인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재탄생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까지 어느 공식 문서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데에 쓰였다. 20세기 초에 나온 사전들에도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 아래 유대적으로 보이는 깃발을 단호하게 썼다.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유대인이라 부르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 이름이 그 역사적 지칭 외에는 다른 연결 관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73명으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오케스트라는 전원이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이 발행하는 현지 신문도 <팔레스타인 포스트>라고 불렸다. 1950년, 이 신문은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이름인 <제루살렘 포스트>로 개칭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국가가 되고 난 뒤 그 용어를 “이스라엘”로 대체했다.

소위 신의 한수로 망연자실한 아랍인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이던 그 용어를 낚아채 한 민족 집단을 묘사하는 말로 재정의했다. 스스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브랜딩을 함으로써 아랍인들에겐 성지 탈환 전쟁에서 두 가지 주된 이점을 갖게 됐다. 먼저는 그 땅이 (사실과는 반대인) 자신들의 이름을 딴 것인 양 장소와 자동적으로 역사적 연계성을 갖게 됐다. 둘째, 그들은 중동 전역에 있는 다양한 아랍 부족들임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훨씬 소규모의 약자들인 양 홍보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1960년대에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팔레스타인 민족의 “오래된” 이야기가 탄생하게 됐던 것이다.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없는 다섯 가지

트럼프의 평화안이 공개되기 전에도 팔레스타인 당국의 압바스 수반은 이미 천 가지 거절 구실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이스라엘인들 간에 평화 조약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만든, 시작부터 싹을 자르는 여러 가지 때문이다.

1. 예루살렘은 공유하되 분할하지 않는다. 트럼프 평화안은 팔레스타인 측에 동예루살렘에 수도를 마련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곳인 성전산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앗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무슬림들은 성전산의 알 아끄사 모스크에서 평화롭게 기도할 권한을 계속 보장 받으면서도, 그곳에 대한 이스라엘의 궁극적 주권과 유대인 “불신자”들이 그곳에 나타난다는 것은 이슬람교인 팔레스타인이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2. 나라를 갖되 귀환권은 더 이상 없다. 팔레스타인 측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요구해온 것 가운데에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의 실질적 영토 내로 국적을 부여 받고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이 있다. 지구 상의 다른 모든 곳에서 “난민”은 실질적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집에서 떠나거나 집을 잃은 사람들을 묘사하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모든 후손들을 난민이라 여긴다. 아무리 해외에서 출생하고 중동에 발을 딛어본 적도 없어도 말이다. 이 때문에 추산 50만~70만의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 때 집을 떠난 것으로 이야기됨에도, 오늘날까지 “난민”으로 등록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5백만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술은 숫자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용되며, 최후의 전략은 유대 인구를 압도하고 본질적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투표를 통해 몰아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의 국가를 갖게 된다 해도, 그들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의 실질적 영토 내에 거주할 권리를 요구하는 일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3. 테러 조장을 중단한다. 야쎄르 아라파트의 PLO 헌장 원문은 이렇게 선언한다. “무장 투쟁이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전술 단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전략이다.” 압바스의 팔레스타인 당국도 계속해서 이 테러리즘과 순교, 그리고 유가족 지원을 통한 테러리스트 보상의 어젠다를 밀어부치고 있다. 이것을 중단하는 데에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순교자들의 피로 닦는 행위에 찬사를 보내는 현재의 학교 시스템에 대한 전적인 개조가 요구된다. 불과 2016년에도 압바스는 1972년에 이스라엘의 올림픽 선수들을 뮌헨에서 살해한 테러리스트의 이름을 따서 학교를 지었다.

4. 지도에는 비밀스러울 것이 별로 없다. 팔레스타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팔레스타인 “민족”에 대한 리더십을 자처하는 3개 주요 정당 즉 PLO, 파타, 하마스의 로고에서 그들이 그리는 별로 애매할 것 없는 이미지에 여실히 나타난다.

5. 유대 민족을 인정한다. 팔레스타인은 근본적으로 유대 민족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인 인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되려 그들은 오늘날의 유대인들이 유대교라는 종교를 믿고 민속 경전을 고수하는 무작위 집단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믿는 책이 가짜이기 때문에 그 민족 역시 가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스라엘을 유대 민족을 위한 나라로 인정하라는 것은 성경과 민족, 유대인의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