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드 아웃의 청소년 리더 중 한 명이 소울드 아웃의 시카고 홈베이스인 마음과 영혼 카페에서 열린 예배 중 말씀을 나누고 있다.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3월 2022

소울드 아웃, 이스라엘에 오다

소울드 아웃의 시작

매년 이 추세는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 수가 늘고 미국인 수는 줄던 게 10년이 조금 지난 후, 리더십의 고삐는 현지인들에게 넘겨져 전적으로 이스라엘인에 의해, 이스라엘인을 위해 일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 대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것도 결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가간 방법 때문에 소울드 아웃만큼 "그 당시"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에 영향을 끼친 "외부" 사역 단체는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Shani Ferguson
으로 Shani Ferguson
read

“소울드 아웃(Souled Out)”이 이스라엘에 온 첫 여름, 미국의 청소년들과 청소년 리더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소울드 아웃은 에드와 캐시 배슬러가 이끄는 시카고 출신의 청소년 단체였는데, 이스라엘을 축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여름 한 달 내내 이스라엘에 왔다. 이스라엘의 믿는 이들을 만나 당시 이스라엘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맥을 짚어보는 것이 목표였다. 그들은 우리 부모님-아리와 쉬라-을 비롯한 몇몇 현지 신자들을 만났다.

다음 해 여름, 그들은 소수의 이스라엘 신자들이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함께할 수 있도록 미국의 십대들과 청소년 리더들을 가득 태운 또 다른 버스를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세 명의 이스라엘 신자들이 참여했다. 우리 오빠와 나, 그리고 스테판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아이. (현재 그는 마오즈의 아티스트 모임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예슈아의의 메시지를 담은 찬양과 춤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일상적 이스라엘인들에게 다가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소울드 아웃의 경우, 전체 팀이 이스라엘 현지 전도자로부터 이스라엘 문화에 대해 배우기 전에는 어떠한 아웃리치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듬해 여름 이스라엘 신자들 몇 명이 더 참여하여 버스에 탑승할 수 있는 미국 청소년들 수가 줄었다. 매년 이 추세는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 수가 늘고 미국인 수는 줄던 게 10년이 조금 지난 후, 리더십의 고삐는 현지인들에게 넘겨져 전적으로 이스라엘인에 의해, 이스라엘인을 위해 일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 대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것도 결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가간 방법 때문에 소울드 아웃만큼 “그 당시”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에 영향을 끼친 “외부” 사역 단체는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주님께서 도중에 허락하신 징검다리를 그들이 그대로 따랐을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지 리더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줄 만큼 오랜 시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제공할 것을 겸손하게 가져다준 패턴(그 다음 그것을 이스라엘식으로 적용하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주님의 몸에 비를 뿌려주는 외부 사역 단체와 이스라엘이 장기간 마실 우물을 파는 사역의 차이라고 하겠다.

소울드 아웃에서 만난 친구들과 시카고에서 함께 한 샤니(오른쪽)

소울드 아웃 바로 전 해

1995년 12월, 나는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었다. 텍사스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겨우 1년 넘게 마쳤는데, 그곳 사람들은 인구가 “두 그루의 관목과 나무 한 그루”라고 흔히들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영적 강도가 센 이스라엘에서 1년 정도 떨어져 있으면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외딴 곳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목장으로 보냈다. 마을 전체에 신호등은 하나 뿐이었고, 학교로부터 1~2m 정도 되는 거리에서 신호등을 통해 매년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우리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여학생들보다 꽉 끼는 청바지를 입었고 담배 한 갑을 뒷주머니에 쑤셔 넣는 것을 좋아했다. 씹는 담배 캔의 동그란 모양이 뒷주머니에 희미한 자국을 남기는 것이 쿨의 정수였다. 마을은 작았지만,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 고등학교는 내가 다녔던 학교 중 가장 컸다. 애들의 시골 억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짙었고 수학 선생님의 질문을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어서 쪽지 시험에서 한 번은 다 틀렸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 가기 전에 치어리더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이 학교에는 “벨스(Belles)”도 있었다. 나는 그 차이를 전혀 몰랐지만, 벨스는 의상이 반짝이가 더 많았고 반짝이는 카우보이 모자를 썼다. 그들은 항상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머리를 단발로 정리했고, 올림픽 체조에서 볼 만한, “돌리는” 봉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학교에는 백인과 흑인 아이들이 있었고, 모두가 잘 지냈다. 싸우게 될 때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에서 자라면서, 나는 세계가 나라마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있는 줄만 알았다. 전 세계에서 이민을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 부모님처럼 피부색이 다양했다. 미국 역사를 배운 적이 없었기에 한 나라에 피부색이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것은 새로울 게 없었다. 한번은 카페테리아에서 대기 중에, 우리 아버지는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젊었을 때 “아프로”식으로 입었다고 얘기했다. 줄에 서 있던 흑인 아이들은 우리 아버지가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에 너무 흥분했다. 정말 귀여웠다. 청소년이라면 특별한 범주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전혀 몰랐다. 내가 분명히 들어맞는 범주는 이스라엘과 유대인이었고, 거기에 속한 사람은 나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아마 많은 그 학교 친구들에게 있어 나는 유일한 유대인 동창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학교에 다닌다고 흥분했지만, 그들 중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과 함께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 것은 극소수였다. 나의 끈질긴 ‘이스라엘성’은 그 무엇보다 더 자주 나를 곤경에 빠뜨렸고, 종종 내가 어떤 문화적 금기를 위반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몇 시간 동안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동부에서 보낸 시간은 내 인생과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나는 그 시간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1996년 봄, 나는 방학을 맞아 이스라엘을 방문했고 아주 악명 높아진 전국 청소년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그 해 여름, 나는 여름 휴가를 맞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갔는데, 내가 아는 한, 시카고가 낳은 가장 멋진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며 한 달을 보냈다.

그때는 12월이었고 나는 영적으로 도전이 되는 이스라엘로 영구 귀국해야 했다. 에드와 캐시 배슬러 부부는 자신의 가족, 그리고 내가 이스라엘에서 여름 동안 사귄 모든 친구들과 함께 겨울방학을 보낼 수 있게 초대해주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미국의 가족 명절 전통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들 역시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그 시간을 처음 보낸 것이었다. 말수 적은 중2병의 이스라엘 청소년 스타일로 “크리스마스는 바보 같아”라고 설명했지만,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아침에 모두 잠옷 차림으로 나에게 줄 선물을 갖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이 예슈아를 위해 구운 생일 케이크부터 크리스마스 멜로디를 울리는 각양 방울이 달린 기이한 고양이까지, 그 경험은 문화적 뷔페 식사였다.

이스라엘에 돌아가서 그 매혹적인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이후로 매년 배슬러 가족의 집은 이스라엘의 믿는 사람들이 겨울 방학에 가장 가고 싶어하는 장소가 되었다.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유대인이다 보니 자라면서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고 그 경험으로 인해 이후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싶게 되진 않았지만, 그들이 베풀어준 가족 같은 따뜻함과 그들이 예슈아와 그분의 유대인 되심을 기억하고 축하했다는 점은 매우 즐거웠다.

시카고의 ‘마음과 영혼’ 카페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소울드 아웃

소울드 아웃이 이스라엘에 미친 영향

11학년을 마치러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는 여름이었는데, 소울드 아웃 청소년들을 버스에 가득 태운 배슬러 가족도 왔다. 그들의 방문이 당시 작고 지리적으로 널리 퍼져있던 이스라엘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젊은 이스라엘 신자들은 각자의 학교나 마을에서 믿음을 가진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기타나 피아노만 가지고 단순하게 찬양 드리는 작은 모임에 익숙했다. 그리고 50~100명의 교인이 있는 더 큰 공동체들 중 일부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샤밭 학교가 있었지만, 10대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마땅히 없었다. 갑자기 문자 그대로 매진된(소울드 아웃) 수십 명의 청소년들이 떡 하니 나타나 우정을 베풀고 심지어 동네에서 다른 믿는 친구들을 찾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이스라엘에 있는 우리에게는 “신병 지원” 효과를 주었다.

둘째, 당시만 해도 인터넷 미디어 시대 이전인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믿는 자들이 존재조차 몰랐던 기독교 음악의 테이프와 CD를 많이 가져왔다. 이것은 세속의 덕이 되지 않는 음악의 유혹 앞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던 청소년들을 위한 효과적인 대안이 되었다. 셋째, 소울드 아웃은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스라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열쇠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이 왔을 때 거리에서 함께 아웃리치를 했지만, 그들의 우선순위는 분명히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친구가 되어 격려해주는 것이었다.

배슬러 가족의 청소년들 중 최근 이런 회상을 했다. “저희가 초반에 이스라엘 청소년들과 놀고 있을 때, 한 목회자 자녀가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나요. ‘너희들도 여기 오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떠나고 사라질 거야?’ 그 친구는 너무 좋지만 잠깐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해외 방문객들과 친분을 쌓는 것에 감정적으로 너무 지쳐있었어요. 저는 그 아이에게 말했죠. ‘우리는 너희를 위해 오랫동안 이곳에 있고 싶고, 하나님이 우리가 이 나라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시는 한, 계속 올 거야. 그리고 미국에 있을 때는 서로 편지를 쓰거나 전화로 이야기할 수 있어.’ 그들은 그 약속을 지켰고 심지어 버스가 폭격을 당하고 로켓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격변의 시간에도 찾아왔어요. 그들은 이스라엘 신자들이 그런 시기일수록 더 친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했어요.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에 왔고, 그 사이에도 몇 달마다 소규모 그룹을 보내줬죠.”

이제 와서 돌아보면, 소울드 아웃의 운명이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한 일과 직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오기 시작한 해에 진심어린 청소년 그룹이 되었다. 그리고 사전에 계획한 것도 아닌데, 현지 이스라엘인들에게 리더십을 넘겨주던 해에 시카고에서의 사역 또한 끝이 났다. 시카고에서의 왕래가 중단되는 시점이 오긴 했지만,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이스라엘 신자들은 소울드 아웃과 함께한 우정과 경험 때문에 오늘날의 믿음과 인격에 이르게 되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에드와 캐시 배슬러 부부, 그들의 네 자녀와 고등학교 1년 동안 함께 지낸 아얄 소르코람(오른쪽)

소울드 아웃의 시작

배슬러 가족이 소울드 아웃을 잉태하게 된 것은 거실에서 거의 우연히 일어난 일이다. 에드와 캐시는 슬하에 네 명의 아이들(한 명은 10대의 나이에 입양)을 두었는데, 아이들이 친구들을 데려올 때 부부는 사랑으로 함께 어울려 놀아줬다. 시카고 외곽에 있는 배슬러 가족의 집은 외출을 하지 않아도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집에서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아이들이 가서 따뜻한 가정환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결혼 전부터 캐시는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이스라엘로 이민 가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비록 이스라엘에서 살려는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집에 몰려든 젊은이들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지만, 믿는 이스라엘 부모들의 절박한 고백을 듣자 젊은 이스라엘 신자들을 대하는 일은 그녀에게 필수가 되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스라엘로 부르셨어요.” 이스라엘을 개척한 믿는 부모들은 탄식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가족들을 이리로 데려왔어요. 우리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주님을 경외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죠. 그리고 나서, 18살이 되면, 우리는 아이들을 희생시켜야 해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속적이고 모든 것을 소멸하는 환경인 군대에 몇 년 동안 아이들을 넘겨주어야 하는 거죠. 아이들이 군대를 마칠 때는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신앙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쯬핰 라빈 총리가 암살된 후 에드와 캐시는 이스라엘을 다시 찾았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바로 그때였다. 그때, 배슬러 가족과 우리 부모님은 라빈이 살해된 텔아비브 시내 광장을 함께 걸었다. 그리고 몇 주 동안 젊은이들은 모여 울며 노래를 부르거나 추모 촛불을 켜고 정처 없이 불길을 응시했다. 이스라엘의 미래인 젊은이들을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했고, 먼저 소수의 이스라엘 신자들을 튼튼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10대 시절 고생하던) 오빠와 나를 두고 부모님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이듬해 봄 전국 청소년 컨퍼런스를 이미 계획해 두었기에 타이밍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에드와 캐시는 그 컨퍼런스에 대해 듣고, 자신들의 청년 리더들을 참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사역하는지 더 자세히 배울 수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역사가 탄생한 것이다.

다 큰 뒤에

에이탄 쉬쉬코프는 90년대 중반 이스라엘로 이주해 이스라엘 북부에 공동체를 개척했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깊은 열정을 가진 에이탄은 2000년대 초 소울드 아웃에 참여했다. 2005년 경, 배슬러 부부는 자신들이 낳은 “아기”가 잘 자라고 있으며 이제 손을 떼야 할 때가 되었음을 감지했다. 그들은 이후 몇 년 동안 훈련하고, 전략을 짜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후임자들에게 전수하여 그 아름다운 일들을 이어갈 수 있게 했다. 에이탄이 키를 잡은 이 작업은 전국의 이스라엘 청소년 리더들의 공동 노력이 될 것이다. 에이탄은 결국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에서 계속되고 있는 이 사역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수확”을 뜻하는 카찌르로 바꾸었다.

Discover something new about Israel.

See all Maoz Israel Rep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