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프에렡 예슈아 공동체의 다른 리더들과 함께 바트 미쯔바를 행하고 있는 모티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2월 2022

거기서 나와 해낸 유일한 사람

샤니 소르코람 퍼거슨이 정리한 모티 코헨의 이야기

나는 아리가 내게 온 힘을 다해 도움을 준 것처럼, 새 신자들에게 지혜와 계시를 부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청소년 모임에서 내가 처음으로 메시지를 전했을 때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성경은 고사하고 읽기 자체를 어려워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성경을 읽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동네 물을 다 흐려놓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 동네에서 나를 옮겨주셨음을 상기시켜 주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뒤집으사 청소년들이 안전을 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게 하고 계신다.


Shani Ferguson
으로 Shani Fergu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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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이 전국에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는 때, 유월절로부터 33일이 지난 라그바오메르였다. 나는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해변에 있었는데 하나가 내게 오더니 내가 죽이려고 벼르던 놈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20명 가량이었는데, 이 녀석은 남동생과 단둘이 있었다. 모두가 기대에 차서 나를 쳐다봤다. 함께 할 기세였고, 내가 싸움을 일으키기만 하면 됐다.

그 밤에 있었던 일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일단 내 배경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전통적 유대교 가정 출신이지만, 그렇게 종교적이진 않았다. 유대인으로서 우리는 샤밭에 운전을 하지 않고 절기들을 지키는 등의 표현을 하고 살았다. 나는 심각한 난독증 때문에 행동과 학습 관련 문제들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교육 체계는 학습 장애를 다루는 방법을 아는 수준이 못됐다. 우리 선생님들은 그냥 내가 일부러 수업 시간에 소란을 피운다고 생각하여 1학년을 한번 더 다니게 했다. 

마침내 나한테 진짜 학습 장애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 깨닫고 나를 특수 교육반에 배치했다. 그들은 내 문제가 뭔지 몰랐지만, 그건 상관 없었다. 당시 모든 학년에는 진단명과 무관하게 모든 문제아들을 위한 특수반이 하나씩 있었다. 

10살이 되었지만 나는 초등학교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적절한 반에 나를 옮겨주려고 여러 번 애를 썼고, 그 과정에서 나는 몇 달 동안 연속으로 집에 있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10살 밖에 안 된 나는 길거리에 있던 16~17살들과 같이 놀았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했다. 한 번은 장난을 치다가 우리 동네에 있는 학교 땅에서 불을 피웠는데, 불이 순식간에 학교 건물까지 번져버렸다. 경찰이 우리 가족을 조사했고, 사회 복지국 공무원들까지 동원됐다. 그들은 다시 한번 나한테 맞는 방식을 찾으려 했지만, 적합한 게 없었다. 그래서 12살이 되었을 때 나는 가족들과 떨어져 문제아들이 있는 기관으로 보내졌다. 옆 동네인 파르데스 하나에 있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14세와 군대 갈 나이 중간이었다. 나는 가장 어린 아이들 반에 배치되었다. 

폭력이 엄청 난무하는, 힘든 곳이었다. 심지어 교육자들도 폭력을 썼다. 우리 부모님은 이러한 결정에 굉장히 속상해하셨지만 사회 복지국은 나에 대한 영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나 때문에 우리 형제자매, 친구들과 다른 동네 아이들까지 망나니 짓을 하게 되어, 다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를 옮겨야 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처음으로 내가 제대로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 난독증의 심각성을 보고 내 행동이 왜 그런지를 이해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도록 허락 되어서, 아버지가 항상 나를 방문해오셨다. 아버지는 말이 많은 분이 아니었지만 그냥 나와 함께 앉아 있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주시며 내 더러운 옷을 가져가시고 어머니가 빨아준 옷으로 바꿔주시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 

1년 동안 부모님은 나를 그곳에서 빼내기 위해 싸우셨다. 사회복지부에 찾아 가시고 동네 복지사들과 상담을 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소연하셨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나는 페탘흐 티크바에 있는 기숙 학교로 옮길 수 있었다. 나에게 큰 발전이었던 이유는, 처음 있었던 기관이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곳이었다면 새로 다니게 된 기숙 학교는 가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13살이 된 나는 7학년에 배치 받았고, 곧 내 학습 수준은 3학년에 가깝다는 판정을 받았다. 나의 지식 결핍은 학습 탓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연유도 있었다. 이스라엘 국가인 “하티크바” 가사를 모른다고 친구들은 나를 비웃었다. 학교를 다니면 거의 바로 아이들이 외워야 하는 곡이기 때문이다. 한 선생님이 내가 어려워하는 걸 보시고 나를 특별 프로젝트로 삼으셨다. 향후 3년 동안, 그분이 내게 투자해주셔서 매일 방과 후에 읽기, 쓰기, 수학, 기본 역사를 3시간씩 공부했다. 

전국 청소년 컨퍼런스에서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한 16세의 모티

세상에 분노하다

학습적으로는 진전이 컸지만, 인간으로서 내게 가장 지배적인 성격은 분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온 세상에 대해 화가 나있었다. 나는 집에, 부모님과 있고 싶어하는 어린이였다. 그런데 기관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곳에 있을수록 나는 더 불만이 쌓였다. 종종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나는 폭력적 행동으로 즉각 반응했다. 

청소년기에 내가 겪은 가장 심각한 싸움은 16살 때였다. 한 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유명한 골칫덩이를 지나치게 됐다. 그는 나를 째려보았고, 내가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나에게 도전했다. “뭘 꼬라봐?” 나는 그를 보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를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심각한 범죄자인 것, 그리고 그와 어울려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내가 걸고 있던 목걸이를 낚아채며 다시 말했다. “뭘 꼬라보냐고?” 나는 그를 밀쳤고 그는 칼을 꺼내 내 왼쪽 귀를 베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왔고, 온 동네가 살인 사건 현장처럼 폴리스 라인이 쳐졌다. 그들은 그 놈을 잡았다. 왜냐하면 바로 동네에 사는 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나는 그 일을 두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모두에게 복수할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죽여버리겠다고. 나는 정상적이지 않을 정도로 집착을 하고 있었다. 밤에 잠도 잘 수 없었다. 그를 칼로 찌르는 상상을 하며 누워있었다. 나는 칼을 샀고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생명줄?

이 일이 있기 불과 몇 주 전, 내 기숙 학교 친구들 메이탈과 힐라가 처음으로 아리와 쉬라, 그리고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얘기를 해준 그 친구들은 앞서 해변에서 아주 착한 젊은이들을 만났고 라맡 하샤론에서 열리는 그들의 모임에 여러 차례 참석한 상태였다. 나는 궁금한 게 많았고 메이탈은 모두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일단 라맡 하샤론에 와서 이 사람들을 만나봐. 그러면 다 답해줄 거야.” 친구는 말했다. 그래서 난 가기로 했지만, 내 속셈은 그들이 유대인이 아니며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이라는 건 없음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나는 그들이 하는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그들은 남달랐다.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이었는데, 눈에서 특별한 빛이 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표현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제 그것이 진짜 기쁨과 평안이었던 것을 안다. 또한 이 사람들은 전심으로 믿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우리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타낰흐(구약) 말씀만을 가지고 내게 예슈아를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나는 직접 신약을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펜까지 꺼내들고 신약에서 유대인을 미워하라는 등의 반유대적 표현을 모조리 찾아내려 했다. 

첫 인상

처음으로 신약을 펼쳤던 순간이 기억난다. 부모님 댁에 있었는데, 방문을 닫고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세 가지 인상이 떠오른다. 일단 현대 히브리어(헬라어에서 번역)로 돼있는 신약이 좋았다. 읽는 즉시로 이해가 됐던 것이다! 타낰흐의 고대 히브리어를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일반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러니 나같은 사람에겐 어땠겠는가!

둘째, 나는 예슈아께서 유대인이심을 보여주는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 큰 감명을 받았다. 다윗 왕의 후손이시라는 것이었다! 예슈아께서 유대인이시라는 것은 내게 엄청난 계시였다!

셋째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나오는 모든 것의 유대적 문맥이었다. 수콭(장막절), 유월절, 샤부옽(오순절)이 있었고 성탄절, 부활절 등 익숙지 않은 전통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들에 반하는 표현들을 찾고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타낰흐를 인용한 내용들과 유대인들을 죽이는 게 아닌, 치유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예슈아를 영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도 유대인, 증조 할아버지도 유대인이기에 유대 정체성을 박해 가운데서도 지키기 위해 견뎌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우리 가족 장남으로서 그 유산과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예슈아를 믿으면, 유대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기 위해 싸워온 온 집안에 대한 배신이 되는 것이었다. 조상들의 땅에서 태어나는 특권을 누리기까지 한 내가 어떻게 그 유산을 끊어버릴 수 있겠는가?

내 마음과 머리는 격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아리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모임을 마치고 나올 때면 항상 마음 속에 기쁨이 가득했다. 그렇게 아리가 나의 영적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컨퍼런스

청소년 컨퍼런스는 내게 전환점이 되었다. 텍사스에서 온 스캇 윌슨 목사님의 메시지는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분이 전한 한 마디가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선하든 악하든] 자그마한 씨앗 하나가 큰 열매를 맺습니다.”

컨퍼런스 마지막 날, 나는 청소년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방방 뛰며 춤추는 것을 보고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경험상 하나님께 기도하기 원할 때엔, 경건하게 회당에서 시두르(기도서)를 읽는 것이다. 그들의 자유롭고 호들갑 떠는듯한 모습은 아주 이상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뱃속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뭘 잘못 먹었나 했다. 그러다가 이것이 유쾌한 느낌이며, 온 몸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감지하는 가운데 머릿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느껴져)왔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 거야.” 몇 분 후,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예슈아를 통해 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한 것이야. 예슈아를 영접해야 해.”

내적 갈등이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하지만 예슈아는 원하지 않아. 하나님은 원하지만 예슈아는 싫어.” 스스로 갈등하는 가운데 그 유쾌한 기분이 점점 더 강해졌다. 다음으로 나는 곁에 서있던 샤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눈을 뜰 때마다 샤니가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샤니는 내게 예슈아를 영접하는 기도를 하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속으로 순복하며 말했다. “예슈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영접할 준비가 됐어. 예슈아를 영접할게.”

컨퍼런스를 마칠 때는 너무나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이었다. 당시는 유월절 휴가 기간이었는데, 나는 바로 집으로 향해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을 비롯한 모두에게 내 체험에 대해 말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봐요!” “예슈아를 통해서만 이런 기쁨을 얻을 수 있어요!” 그 기분은 몇 주 동안 사라지지 않고 강력하게 남아있었다. 모두들 내가 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처음에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반대를 하셨다. 부모님이 얘기하실 거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실제로 벌어졌다. 내가 가족들을 배신했으며,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얘기였다. “예슈아는 히틀러보다 나쁜 사람이야. 히틀러에게 영향을 줬다고. 그래서 6백만의 유대인들이 죽은 거야. 히틀러도 기독교인이었어…” 내가 사실이 아니라고 배운 모든 이야기들을 하고 계셨다. 

불과 몇 주 후, 라그바오메르 절기가 되었고 우리는 해변에서 모닥불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돌아다니다가 칼로 내 귀를 자른 놈과 마주쳤다. 몇 달 동안 내가 죽이겠다고 다짐했던 그 녀석 말이다. 

그들은 뛰어와서 내게 말했고, 모두가 내가 그를 치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은 내 상처에 공감하며 큰 싸움이 벌어지기를 고대했다. 엄청난 부담이었다. 떠벌려 놓은 게 많았기에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가 밉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도 더 이상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내 자존심을 지키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를 놔주라고 했고, 그 녀석은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친구들은 날 알았다. 내가 예슈아 얘기를 해온 것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 폭력이 나의 방식인 것도 알았다. 내가 사람들을 구급차에 실려가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을 알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야? 어떻게 쟤를 보내줄 수 있어?” 친구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여 물어왔다. 나는 스스로도 충격을 받아, 친구들에게 내가 예슈아를 믿으며 더 이상 폭력을 쓸 수 없다고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고등학교의 남은 시간을 모두에게 예슈아에 대해 증거하며 보냈는데, 들은 많은 친구들이 아리와 쉬라의 공동체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참석했다. 한번은 내 친구 우리가 방문을 했다. 그는 6개월 전에 계단에서 굴러, 그 이후로 허리 통증을 심각하게 겪고 있었다. 아리는 자신이 기도하면 기적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리가 기도했더니 실제로 갑자기 그가 몸을 굽히며 전에 전혀 할 수 없었던 동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큰 소리로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었다. 나는 많은 친구들에게, 당시에 그리고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말씀을 나누고 있고, 내가 그들의 마음에 뿌린 씨앗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가 살던 나쁜 동네에서 나를 꺼내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마침내 우리 가족은 더 안전한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됐지만, 그때 나는 이미 군대에 들어가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옛 회당을 찾아갔다가 내 옛 친구 하나와 마주치셨다. 그는 마약에 중독되어 깡마르고 치아가 다 빠진 상태였다. 그는 아버지께 말했다. “우리 동네에서 성공한 건 모티 밖에 없어요!” 그는 내 어린 시절 친구들 이름을 모두 읊었다. “이 친구는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었고, 이 친구는 살해됐고, 이 친구는 감옥에 있고…”

그 날, 항상 내 신앙에 반대하던 아버지는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더 이상 예슈아에 대해 반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내 말에 동의는 안 하실지언정 아버지는 내가 동네 최악의 아이였던 것을 깨닫고, 오로지 내 믿음이 나를 구원했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셨다. 회당에서 이러한 계시를 받으셨다는 것이 내겐 너무나 놀랍다. 어쨌든 그 날부터 아버지는 내 믿음에 반대하지 않고 계신다. 

모티가 가장 사랑하는 일 중 하나는 거리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나눠주며 사역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보통 샤밭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회당에서 누가 데리러 왔었다. 그래서 나는 운전 면허를 따자마자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태우러 다니는 일을 자청했다. 당시 이스라엘엔 많은 사람들이 차가 없었고 버스는 샤밭에 다니지 않았다. 그러니 계속해서 모임에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차로 태우러다니는 것이었다. 한동안 아버지는 차를 쓰지 못하게 하셨고, 결국 아리가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자기 차를 내주었다. 나는 오전 8시에 집에서 떠나, 여러 도시에서 사람들을 여러 차례 태워 라맡 하샤론으로 데려가는 일을 11시까지 계속 했다. 그리고 나서는 모두를 태워다주고 저녁 8시에야 집에 돌아왔다. 

주님 안에서 성장하면서 나는 공동체의 청소년 모임에서 큰 형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가르치는 건 그다지 몰랐지만, 션과 아옐렡 부부가 내게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나는 아리가 내게 온 힘을 다해 도움을 준 것처럼, 새 신자들에게 지혜와 계시를 부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청소년 모임에서 내가 처음으로 메시지를 전했을 때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성경은 고사하고 읽기 자체를 어려워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성경을 읽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동네 물을 다 흐려놓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 동네에서 나를 옮겨주셨음을 상기시켜 주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뒤집으사 청소년들이 안전을 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게 하고 계신다. 

텔아비브 거리에서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도와주는 모티

모티는 군 제대 이후 고등학교를 마쳤고, 이 때에 난독증을 완전히 치료 받았다. 이후 이스라엘 성경 학교(ICB)에서 성경 상담학 석사를 받았다. 모티와 다른 청소년 리더 엘리 비른바움, 그리고 슈무엘 살라웨이는 요엘 골드베르그가 시작하였다가 해외에 가게 되어 잠시 비운 청소년 모임을 이어 받았다. 이 모임은 당시 최고의 활동과 최대 인원으로 전국 최고의 청소년 모임이 되었다. 이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모티는 티프에렡 예슈아 공동체의 장로가 되었지만, 거리의 방황하는 아이들을 향한 열정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신자들과 협력하여 일주일에 며칠씩 노숙자, 마약 중독자,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며 원하는 경우 말동무가 되어주어 기도도해주는 사역을 자원하고 있다. 

마오즈 팀이 그의 사역을 촬영하러 따라갔을 때, 그들은 따라온 각 사람에게 모티가 전해준 세심한 지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치아를 잃은 이들을 위해 특별히 부드러운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자신을 찾아오는 각 사람의 음식 관련 필요에 따라 여러 모양의 음식들을 만들어 대접했다. 

국내 원화 계좌: 하나은행 424-910030-90504 (한국 마오즈 이스라엘)

미화 계좌: 하나은행 424-910008-47238(한국 마오즈 이스라엘/MAOZ ISRAE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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