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프에렡 예슈아가 탄생한 라맡 하샤론의 마오즈 센터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11월 2021

티프에렡 예슈아의 탄생

그 모든 시작 - 10부

5756년 새해 전야, 그러니까 성경에서 나팔절로 알려진 절기를 앞두고 유대 국가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행진해 들어와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은 다윗 왕의 대관을 1년 내내 기념한다고 발표했다.


Shira Sorko-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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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6년 새해 전야, 그러니까 성경에서 나팔절로 알려진 절기를 앞두고 유대 국가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행진해 들어와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은 다윗 왕의 대관을 1년 내내 기념한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와 랍비들은 예루살렘이 주전 1004년에 이스라엘 수도가 되었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므로 그레고리력 주후 1996년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가 된 지 3000년째 되는 때였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이것이 더 놀라웠던 이유는 그레고리력으로 예슈아께서 탄생하신 지 2,000년째가 되기 때문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메시아 예슈아께서 주전 4년에 태어났음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베들레헴에서 아기들을 죽인) 헤롯 대왕이 주전 4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1996년은 예슈아의 2천 번째 생일이 있는 해였다!

아리와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동체 개척을 다시금 원하시는가를 두고 씨름하고 있었다. 우리는 느껴지는 생각들을 사역의 파트너인 아르니와 요니트 클라인과 논의했는데, 모두 같은 뜻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이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고 있는 가운데, 적은 무리의 우리 신자들은 텔아비브에서 북쪽으로 몇 km 떨어진 곳에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지중해 근처 샤론 평야에 살고 있었기에 “하샤론 공동체”라고 이름을 붙였다. 결국은 우리 집보다 성도 수가 많아져 모임 장소를 텔아비브로 옮기고 이름 역시 티프에렡 예슈아(예수님의 영광)라고 바꾸게 된다.

홀로 자축한 이스라엘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스라엘의 건국 기념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전례 없는 소리와 빛의 향연이 3000번째 기념일의 시작을 장엄하게 알렸다. 이후 몇 달간, 100회가 넘는 컨벤션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기독교 행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홀로 기념하고 있었다. 몇몇 나라들이 수콭(장막절)을 예루살렘에서 지키기 위해 올라가지 않을 날에 대한 섬뜩한 리허설처럼, 1996년 열방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다윗 왕을 기념하는 이 이스라엘의 축제를 보이콧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대관식을 치른 다윗은 그의 후손이 언젠가 세상을 영원토록 통치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매체들은 갈라 오프닝에 국가 수반이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유럽 대사들조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미국 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핑계는 이 도시의 유대 민족 역사에만 편중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고도 슬프게도, 다윗 왕의 생애와 왕으로서의 업적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는 이 세상 문제들에 여전히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세상에 상기시켜주는 불편한 계기였다. 그분께서 이 도시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사실로 열방은 불편함을 느꼈다.

예언적으로 우리는 이것이 국가의 생사가 갈라지는 중추적인 해가 될 것을 느꼈다. 

이스라엘을 나누기로 결정한 이쯔학 라빈

국가적 행사와 병행되게, 로쉬하샤나(신년) 일몰 직전에 이쯔학 라빈 총리는 야쎄르 아라파트와의 오슬로 2차 협정에 조인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창설하기 위한 시계 바늘을 돌렸는데 그것은 결국 이슬람 국가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국경은 텔아비브 메트로플렉스의 주변까지 닿아 이스라엘이 일부 지역에서는 폭이 겨우 14km 밖에 안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소유권 증서는 성경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철렁했다. 

뿐만 아니라 협정의 재가와 동시에 라빈은 즉각 천 명의 테러리스트들을 풀어주었는데, 그 가운데 6~700명은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자들이었다. 라빈 총리는 그후 2년여에 걸쳐 그에 5배에 해당하는 테러리스트들을 풀어줄 계획이었다. 물론 새로운 테러의 물결이 뒤따르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1995년 9월자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에 이렇게 썼다. “이스라엘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사람들은 다음 버스 폭탄이 언제 터질지 주목하고 있다. 모두가 이 땅의 소동과 대혼란에 대한 진짜 해답을 찾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거듭나 성령 충만한, 담대한 메시아닉 신자 외엔 누구에게도 답을 가질 수 없다.”

1994년 10월 19일, 22명의 이스라엘인들이 죽고 104명이 부상을 입는 자살 폭탄 사건이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야쎄르 아라파트와 오슬로 협정을 맺고 난 뒤 일어난 수많은 테러 공격 중 하나에 불과했다.

삶은 이어지고, 새로운 공동체는 뿌리를 내리고

이스라엘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테러 공격이 이어지는 불확실성 가운데서 어떻게 일상의 삶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 정말 주목할 만하다. 버스 폭파라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운전을 하고 갈 때 내 차 옆에 버스가 있는 채로 빨간 불에 서게 되는 상황은 싫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때를 위해 공동체를 개척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었다. 완전히 초짜 신자들, 그리고 관심은 있지만 헌신하지 못한 이들…모두에게 많은 관심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롤 모델이 되어 섬겨줄 신자들이 많이 없었다. 

토요일에는 버스가 없어서, 아리가 여러 시간 동안 30~60km까지 떨어진 곳을 다니며 성도들을 태워왔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설교를 하고, 방문객 및 등록 성도들과 두 시간 여를 보낸 뒤, 모두를 집에 태워다주기 위해 몇 바퀴씩을 돌고나면 자정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예슈아 믿는 이들을 생각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당의 차갑고 격식 갖춘 느낌을 즉각 떠올린다. 우리는 그들이 예슈아를 따른다는 게 무엇인지 매일의 평범한 삶 가운데 체험하기를 원했다. 커다란 주택인 우리 마오즈 센터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구도자들은 집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안도감을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또한 뒷마당이 있어, 예배가 끝나고 나면 하나씩 음식을 해와서 점심을 나눠 먹었는데, 새 신자들 간에는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구도자들에게 복음을 열띤 분위기로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 마오즈 센터가 자신들이 거듭나 유대인 메시아 예슈아와의 관계 가운데 성장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불과 15분 떨어진 곳에 지중해가 있었기에, 우리는 새 신자들을 데려가서 예슈아와 함께 장사되고 부활하는 것을 상징하는 침례를 주었다. 우리가 새 신자들과 함께 해변을 찾는 시간은 꾸준히 이어졌다.

나라를 집어삼킨 두려움

온갖 종류의 테러 공격들이 줄어들 줄 모르는 가운데, 오슬로 2차 협정의 조건들은 이스라엘 국민들의 의식 가운데 무겁게 짓눌렀다. 이쯔학 라빈 총리와 야쎄르 아라파트 수반은 팔레스타인에 9천 명의 경찰을 세울 것에 합의했다. 눈 깜짝도 안 하고 아라파트는 순식간에 3만 명의 무장 병력을 모았다. 그 “경찰관” 대부분은 테러 우두머리들 출신이었다. 그의 목표는 “경찰 병력”을 5만 명 이상의 잘 무장된 팔레스타인 군대로 변모시키는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제루살렘 포스트>의 편집자들은 이렇게 정리했다.

사상 최초로 대규모의 PLO 군대가 이스라엘 인구 밀집 지역 교회에 배치되는데, 이스라엘의 중심부를 지배하는 전략적 지역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조정이 불안, 테러, 궁극적으로는 전쟁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의 세계에 사는 것과 같다.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고

이스라엘은 그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가?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의 존재 권리를 인정하고 PLO 통제 지역 가운데서 테러를 그치겠다고 했다. 이것들은 아라파트가 오슬로 1차 협정을 맺을 때 했다가 테러 공격을 지속적으로 주도하여 수백 명의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죽이는 가운데 깼던, 동일한 약속이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했던 질문은 (오슬로 2차 협정을 공동 설계한) 라빈과 시몬 페레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이스라엘의 유업을 줘버렸냐는 것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보수주의자요 <워싱턴 포스트>의 (세속) 유대인 언론가였던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이런 촌철살인을 남겼다.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를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믿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조각조각 넘겨주는 것이 무슨 기이한 협상의 전략인가?

아무리 협상 초보자라도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 붙들고 있으라. 지금 최종 상황 협상을 시작하라. 예루살렘을 원하는가? 지켜내려고 하라. 예컨대 서안 지구를 포기하는 대가로 말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협상의 때에 이미 서안 지구를 포기한 상태라면,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의 절반 뿐이다. 팔레스타인이 요구하는 대로 절반을, 유대 민족도 너무나 신성하고 핵심적인 절반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팔레스타인이 예컨대 2백만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을 요구해올 때 무엇을 제시할 것인가? 백만만 주겠다고 역제안을 할 것인가?”

미국의 제시 헴즈 상원의원과 벤자민 길먼 하원의원도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로부터 구하고자” 양원에서 애를 썼고, 아라파트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팔레스타인 당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제한하고 한정할 것을 제안했다. 믿을 수 없지만, 이스라엘은 이 제안을 독려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아라파트가 솔로몬 성전의 마지막 잔재인 통곡의 벽을 포함하는 고대 도시 예루살렘을 요구해오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스가랴서 12장 3절의 말씀과 같았다.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해변이 마오즈 센터에서 불과 15분 떨어져있어서 우리는 새 신자들을 지중해로 데려가 침례를 주는 일이 잦았다.

몸이 일어나다: 나라를 위한 중보 기도

이스라엘의 조그만 메시아닉 지체들 가운데에는 전례 없는 연합이 일어나, 16개 공동체가 (텔아비브 근처) 야르콘 강둑 주변에 함께 모이는 일이 있었다. 우리 위의 유칼립투스 나무들은 거대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지중해의 뜨겁고 아직 물기 묻은 바람으로부터 그늘을 제공해줬다. 

거대한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무리가 이미 모였고, 버스마다 가득 찬 이들이 계속 내렸는데 세파르디, 아쉬케나지, 에티오피아계 믿는 유대인들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6~700명의 성인들은 진중했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기도 사역 단체 IFI(이스라엘을 위한 중보자들)의 엘리야후 벤하임은 금식과 겸비함으로 우리 나라의 죄를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라며 공동체들이 함께 모일 것을 촉구했다. 

불과 일주일 밖에 안 된 우리 공동체도 나팔절과 욤 키푸르 사이 경외의 날들 사이에 낀 안식일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PLO의 야쎄르 아라파트 수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이스라엘의 이쯔학 라빈 총리와 쉬몬 페레스 외무장관,
Alamy Stock Photos/Entertainment Pictures

예루살렘의 메시아닉 지도자 르우벤 버거는 옛 선지자들이 부르짖던 외침을 메아리치듯 울렸다.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며

만민의 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시며 (욥 12:23~24)

그 다음 우리는 주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 나라의 정부 지도자, 국민들과 메시아의 몸 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했다. 그 무리 가운데에는 다양한 정치적 시각들이 있었지만, 모두 우리 나라가 불경건함으로 길을 잃었다는 데엔 동의했다. 우리는 다니엘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와 민족의 죄를 고백하러 나아온 것이었다. 

단체 기도로 그 시간을 마치자, 그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헤비메탈 콘서트를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한 팀이 출동했다. 이후 보고를 들으니 많은 청소년들이 팀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한 청년은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접했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팀원들이 들고 있던 성경, 도서, 전도지를 너무나 갈급해했고, 단 한 조각의 인쇄물도 남아나지 않았다.

팀원 하나는 전 세계에서 그런 전도 캠페인에 많이 참여했지만 이런 말을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집회 외에 청소년들이 복음에 대해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갈급해하는 건 처음 봐요.”

꿈: 부서진 기차

하지만 국가적으로 이스라엘을 나누려는 라빈의 계획은 이어져갔다. 10월 중순,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 11월호를 준비하는 가운데, 나는 오슬로 1차, 2차 협정의 불가피한 결과로 인해 전례 없이 큰 슬픔을 느꼈다. 우리 나라의 방향성에 대해 한참을 고심하다가 잠이 든 나는 꿈을 꿨다. 

우리는 끔찍한 기차 사고를 보고 있었다. 많은 객차들이 다양한 각도로 선로에서 벗어난 채 누워있었다. 기차 내부를 보니, 이스라엘 군인들이 모두 좌석에 족쇄로 매인 채 가득 들어 있는 모습에 너무나 놀랐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들은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죽었지만 몸은 멀끔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스럽고 체념한 모습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나는 좌석 열수를 세어보기 시작했다. 객차마다 66개의 좌석이 있었다. 각 열에는 6개 좌석씩, 통로 양편으로 3개씩의 좌석이 있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통곡을 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2주가 흘러 1995년 11월 4일이 되었다. 오후 9시 반에 우린 소식을 들었다. 라빈 총리가 총에 맞은 것이었다. 오후 11시 2분, 라빈이 서거했다는 발표가 전해졌다. 

2022년 1월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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