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틴의 자동차 정비소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12월 2020

기근과 풍요의 해에 주신 일곱 가지 이야기

IstandwithIsrael의 감동적인 사연

여러분이 이와 같은 IStandwithIsrael 사연을 더 많이 만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마오즈 이스라엘에 후원하시면, 이스라엘을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축복하는 역사를 만들어주시는 겁니다!


Shani Ferguson
으로 Shani Fergu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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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틴

지난 2006년, 저는 사업 파트너와 함께 자동차 정비소를 개업했습니다. 2014년쯤 모든 게 잘 안 풀려서, 파트너가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저는 그가 남기고 간 청구서 더미를 보면서 모든 걸 버리고 도망갈 것인가, 이 산을 믿음으로 마주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시 부목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제 어려움을 담임 목사님께 나눴더니IStandwithIsrael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부채를 갚는 것은 제 책임이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저는 그것을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정비소에서 수익을 내려고 애쓰는 동안, 저희 가족의 생활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IStandwithIsrael은 저의 직면한 필요보다 훨씬 널리 내다봤습니다. 그들은 제가 장기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업과 가계의 예산을 짤 수 있도록 도와줄 재정 상담사를 보내줬습니다. IStandwithIsrael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저희 가족들은 밥도 못 먹기를 몇 달은 했을 겁니다. 

저는 빚을 갚고 사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에 거의 6년을 쏟았기에, 올해처럼 어려운 해에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저희가 모든 것을 주님께 하듯 하도록 부르신 것을 알기 때문에, 양질의 부품만 쓰고 저희 가게의 정직과 신용을 쌓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돌아보면 어려웠던 시기가 아버지, 남편, 사업가, 목회자로서 저에게 얼마나 큰 유익만을 줬는지 모릅니다. 이 자리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준 iStandwithIsrael에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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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

저는 우크라이나의 예술가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연극 배우셨습니다. 아버지는 화가로 시작하신 뒤, 후에 도예에 상당한 재능을 보이셨습니다. 얼마나 잘 하셨는지, 자기만의 도자기 공장을 여시게 된 겁니다. 저는 수년 동안 아버지를 도와 공장 운영을 했는데, 한 시점에 이르러는 이스라엘로 가고 싶은 내면의 갈망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게 됐습니다. 

제 남동생은 공장에서 제가 하던 일을 기꺼이 이어 받았고, 저는 아버지의 사업이 잘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저는 꿈의 여인을 만나 결혼하게 됐습니다. 저희 둘은 자녀를 많이 낳고 싶다는 점에 있어서 뜻이 같았고, 저는 재정적으로 여력을 갖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에서 도예 작업실을 열었지만, 이곳의 규칙과 문화, 시장이 너무나 달라서 사업은 처절히 실패했습니다. 

이후 저는 몇 년 동안 예술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들에서 일하면서 이스라엘 최고의 예술학교인 베짤렐(언약궤를 설계한 브살렐의 이름)에서도 일했습니다. 사업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이 분야에서 많은 친구들과 인맥을 쌓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도를 했습니다. 

첫해에는 거의 수익이 없었습니다. 그 해는 정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게 버텼습니다. 저희처럼 식구가 많고 계속 늘어나고 있는 가족의 경우엔, 자기 사업을 하지 않고선 식구들을 먹여살릴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음 해에 사업은 성장하기 시작했고 저희 가족도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제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는데, 제 아내와 저는 13명의 놀라운 아이들을 세상에 데려 왔습니다. 

사업이 더 자리가 잡히면서, 단골 주문이 들어오고 저희는 꾸준한 수입에 의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급작스레 중단됐습니다. 저희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나 저희 그릇에 음식을 담는 식당들이 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도 저희는 계속 아이들을 먹이고, 사업의 기본 비용을 충당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저희 가훈은 여호수아 말씀인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입니다. 저희 아이들이 수학을 배우든, 요리를 하든, 음악을 연주하든 도자기 컵을 만들든, 저희 가족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합니다. 저희는 항상 하나님께서 작은 새들과 식구가 많은 가족들 모두 돌보신다고 믿어 왔습니다. 

저희는 IStandwithIsrael에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입니다. 이번 가을 절기 직전에, 거의 한 달 동안 사업장을 닫아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iStandwithIsrael의 간사님들이 제 작업실에 와서 저희 가족을 돌보는 데에 쓰라고 돈을 주셨습니다.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아이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얼마나 실질적인 가르침이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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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밀라

루드밀라는 항상 사교성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82세가 되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복지 센터에서도 그녀는 파티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드밀라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위협이 커지면서, 어머니와 할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소련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살아보고자 돌아갔습니다. 루드밀라는 학교를 마쳤고 행정직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람들과 일하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금세 깨달은 그녀는 이후 37년 동안 영업 일을 합니다. 물론 이 시간 동안 그녀는 결혼도 하고 두 아이도 키웠습니다. 한참 후, 자녀들도 커서 각자 결혼을 했을 때, 루드밀라의 남편은 죽었습니다. 

어느 해, 동네의 유대인 센터에서 절기를 기념하고 있을 때, 그들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에이전시 이야기를 듣습니다. 루드밀라의 두 자녀는 가족을 다 데리고 가기로 결단했고, 루드밀라는 이미 70세였음에도 성지에서 손주들이 자라는 것을 볼 기회를 놓칠 순 없었습니다. 일단 자리를 잡자, 아들은 제조업 쪽에 일자리를 얻었고 딸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루드밀라는 은퇴를 하여 노화로 인한 질병들을 겪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가족들과의 활동에 열심히 관여했습니다. 물론 코로나가 터져서 모두가 집안에 격리되어 있도록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말입니다. 82세에 집안에 홀로 있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난 여름 집 마루바닥에서 끔찍하게 넘어져, 5시간 후에야 누워있던 루드밀라를 두 자녀가 발견했습니다. 자녀들은 어머니를 위해 대안을 속히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루드밀라의 건강 상태는 악화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요양소 등지에서 노인들이 끔찍한 대우를 받는다는 뉴스가 산더미처럼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어머니의 여생을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의료계에서 일하고 있는 루드밀라의 딸은 그들이 바라는 모든 의료적 전문성과 개인적 돌봄을 제공하는 시설을 하나 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자녀가 가진 모든 돈을 끌어모아도 입소에 필요한 최초 비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딜레마를 듣게 된 목사님은 이스라엘의 믿는 이들의 필요를 돌보는 IStandwithIsrael 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여름이 끝나기 전, iStandwithIsrael은 요청된 전액을 승인했고, 루드밀라는 새로운 집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5개월을 지낸 현재 그녀는 모든 직원들에게 “밝은 빛”이라 불리며 모두를 마냥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윗 왕에게 보여진 그것이 오늘날 나타난 듯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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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슬란 & 야엘

저(야엘)는 첫 호흡을 내뱉은 때부터 쭉 이스라엘에 살아왔습니다. 루슬란은 그보다 약 10년 늦게, 열두 살의 나이로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족과 함께 이주해 왔습니다. 양가가 멜렠 하카보드(영광의 왕) 공동체를 다녔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2년이 되지 않아, 루슬란은 찬양 팀에 들어갔고 이후 15년 동안 섬겼습니다. 저는 청소년기에 청소년 찬양 팀에 들어갔고 지금까지도 청소년 모임을 섬기고 있습니다. 

루슬란이 군대에 있을 동안 저희는 사랑을 시작했고, 그가 제대한 직후 결혼을 했습니다. 그게 7년 전쯤이네요. 저희는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젊은 부부들이 그렇듯 오래되고 작은 아파트에 세들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루슬란은 전자 회사에서 컴퓨터 부품을 제조하는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맞춤 케이크 사업의 고객층을 키웠습니다. 첫 아기가 태어났고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고 있었습니다. 

저희의 계획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 언젠가 아파트를 하나 사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저희만의 사업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부부로서는 커다란 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파트 계약금만 해도 다른 나라에서의 총 매매비용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젊은 가족들에게 이렇게 버거운 장애물을 인정한 정부는 건축 업체들에 각 동마다 몇 호를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여 추첨을 통해 분양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저희 부부는 그 수만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이길 자신이 없었지만 그 날을 맞기 위한 준비는 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할인된 가격이라고 해도 저희가 계약금에 상당하는 돈을 모으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저희 꿈을 크게 지지해주셨고 저희가 부모님 댁에 살면서 한 푼이라도 더 아끼게 해주셨습니다. 언젠가 저희가 자가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말이죠. 

2020년이 막 되었을 때, 모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듯했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바로 그 때쯤, 루슬란은 직장에서 감원이 있어서 실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희는 아파트에 당첨됐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이 새 아파트 프로젝트에 2주 내로 계약을 해야 했습니다. 저희가 원하던 바로 그 동네의 아파트였죠! 

너무나 기쁜 일이어야 했을 그 일생일대의 기회가 최악의 타이밍에 온 것입니다. 그래도 루슬란은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저희는 믿음으로 기한 내에 계약금 나머지를 벌 수 있을 거라며 서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 겁니다. 저희 둘째가 태어나기 전 그 소중한 몇 달은 잃어버린 시간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6개월 후에도 여전히 이 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희에겐 시간이 없었죠. 

저희 공동체의 여러 친구들이 과거에 IStandwithIsrael 의 도움을 받았던 이야기를 해주며 꼭 지원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올 한 해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어려웠고, 이런 때에 아파트를 사겠다고 도와달라는 신청서를 낸다는 것이 저희가 봐도 이상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간 중에도 인생은 멈추지를 않고 가고 있으며, 가족들은 계속해서 자라나고 장래를 위한 중요한 결정들을 지금 내려야만 하는 겁니다. 저희는 iStandwithIsrael이 저희에게 너무나 의미 있는 이 일을 도와주기로 결정해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 드립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을 때 갑자기 하나님께서 그 길 끝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순간은 정말 굉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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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 수지*

이집트 국경 근처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는 다섯 아이를 둔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기드온은 이스라엘 북부의 한 키부츠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면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몇 달 동안 해외로 가서 환기를 하며, 학업이나 일을 할 준비를 합니다. 인도는 그런 쪽으로 인기 있는 장소인데, 2~3년간 복무하면서 불과 12만원의 월급을 받아온 군인들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기드온도 인도를 택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두 사람을 만납니다. 아내가 될 수지와 영원한 구세주 예슈아죠. 

기드온은 수지와 함께 완전히 변화된 채 이스라엘로 돌아왔고, 북부의 갈릴리 근처로 이사했습니다. 그는 어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가 태어날 때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골란고원의 안락한 초목을 떠나 네게브 사막의 건조한 모래 속에서 살아있는 증인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살다보니 생활비가 아주 적게 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대 단점은 마을이 너무나 시골이라, 마땅한 학교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12년 동안 수지는 홈스쿨을 했고 기드온은 사막 투어 가이드와 보안 쪽 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3년 전, 그들은 자녀 중 한 명이 특수교육을 받아야 함을 알게 됐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몇 시간 떨어진 예루살렘 쪽의 기숙 학교 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때 큰 아이 둘은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고, 수지는 농사 일을 하며 기숙 학교 비용을 충당하려 했습니다. 농사는 진이 빠지는 일이라, 당연히 수지는 다른 아이들의 홈스쿨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 동네의 “마땅한” 학교라곤 사립학교 밖에 없었지만 감당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관광 산업은 최근 몇 년 동안 성장이 이어졌고, 곡물 바이어들이 계속 물건을 사들이는 한 생활은 가능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두 가지 직업이면 충분히 괜찮았을 겁니다. 그러나 2020년은 예전과 달랐고 학비는 불현듯 압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IstandwithIsrael은 그들의 목회자가 요청한 대로 자녀 교육비를 도와주기로 했고,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저희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저희는 하나님께서 주님께 소중한 문제를 돌보느라 바쁘게 지내는 당신의 백성들의 문제를 돌봐주시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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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 야엘

야엘과 저는, 저희 둘과 아이들이 이스라엘에 사는 장면을 제가 머리 속에서 본 그 날 이미 결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야엘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야엘은 정말 당황했습니다. 그녀는 미국이면 몰라도, 이스라엘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매해가 지나면서도 이민을 가지 않았고, 저는 점점 내면의 공허감을 느꼈습니다. 

야엘은 결국 엄청난 서류가 요구되는 이민 절차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머리 속으로 너무나 벅찬 작업이라, 하나님께서 간섭해주셔야만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서 유대적 뿌리를 증명하는 원본 서류는 찾기가 어려운데, 특히 세계 대전과 소련의 붕괴 이후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벨라루스 이스라엘 대사관은 제가 KGB 기록 보관소 깊이서 발견한 원본 문서들을 보여주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무신론자로 살았는데, 이스라엘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오기 이전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2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도착하자 책상에 앉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필요한 곳에서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에일랕은 이스라엘 최남단의 도시입니다. 홍해 모서리에 있고, 이집트, 요르단과의 국경 사이에 끼어 있죠. 저는 에일랕에서 저희 부부가 빛이 되어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곳에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투어 가이드로서 돕고, 이스라엘 여행자들이 독특하게 연결되도록 도우면서요. 

IStandwithIsrael 은 제 훈련비용을 내주었고 저희 사업은 번창했습니다. 에일랕의 경제의 80~90% 가량이 관광업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래서 코로나가 터졌을 때, 저희 도시 전체가 정지되었습니다. 저희는 이 땅이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이 될 것을 압니다. 이곳의 역사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기  때문이죠. 

그런 가운데 iStandwithIsrael은 저희가 재정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이 덕분에 저희는 끝없어 보이는 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현지인들에게 계속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조금 걸리겠지만 때가 되면, 저희는 해외에서 온 사람들에게 왜 이 땅이 온 우주를 만드신 분께 그토록 특별한 지를 보여주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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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달랴

저희 가족 대부분은 홀로코스트 중에 사망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이스라엘로 따로 따로 이주하고 나서야 알게 됐죠.1957년에 저는 8살이었는데, 부모님이 저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음성이 아주 좋으셨고, 모국어가 아닌 히브리어를 하실 때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콜 이스라엘 국영 라디오에 성우로 채용이 되셔서 40년간 일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살아남긴 했지만 홀로코스트는 영원한 상처를 남겨, 저희 가정 생활은 제가 자라는 내내 그렇게 좋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청소년기 대부분을 홀로 보냈습니다. 무신론자로서 저는 늘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죠. 군대에 들어갔을 때 저는 공군에서 3년을 복무했고, 이후로 국방부에서 20년을 일했습니다. 짧게 말하자면 제 인생은 이랬습니다. 길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게 몇 년 전 영화로 나왔습니다.

저는 국방부에서 나와 사업을 하기로 하고 펍을 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알콜 문제를 겪었고, 제가 선택한 사업은 제게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죠. 언젠가 저는 누군가에게서 예슈아에 대해 듣고서 완전히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순식간에 변화되어, 가족들은 제가 마약을 한다고 확신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집안을 춤추며 다녔고, 복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어본 가장 좋은 그 소식을 거리의 사람들에게 전했죠. 제 알콜 중독도 견디고 함께해 준 저희 식구들은 제가 갑자기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보이자 적대적으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저희 가족 모두는 예슈아를 체험하고 메시아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카페를 하나 열었습니다. 너무나 성공적이라 지점도 하나 차렸죠.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 인티파다가 터져서 모든 게 어려워졌습니다. 식당, 버스가 테러 공격의 타겟이 되었고 많은 사업들이 무너졌습니다. 저희는 모든 것, 결국 집까지 잃어버렸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때쯤 제 아내가 저와 함께하고 있어서, 저희 둘은 북쪽으로 가서 카르멜 산에 위치한 공동체에서 섬기라는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저희는 드루즈 마을에 위치한 한적하고 작은 집을 찾았는데, 공동체에도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였고 저는 그곳 커피숍 운영자로 고용되었습니다. 제게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던 것이 카페 운영을 즐기면서도 하나님의 왕국을 송축하면서 단순한 삶을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지난 해, 저는 병원에서 아직 치료가 가능한 단계의 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좋은 소식은 제게 필요한 치료를 이스라엘에서 가장 잘 하는 병원이 근처 하이파에 있다는 것이었죠. 나쁜 소식은 그래도 저희 동네에서 족히 40분은 차로 가야 나오는 거리였는데, 저희는 이 드루즈 마을을 기반으로 그냥 살았기 때문에 수년 동안 차가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제 딸이 치료 때마다 태우고 다녀주었는데, 전이가 되면서 저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자주 응급으로 병원에 갈 일들이 생겼습니다. 

병원에선 말했습니다. “병원 가까이로 이사 오셔야 될 것 같아요.” 전 원하지 않았죠. 제 마을과 그 가게들, 이웃들이 좋았으니까요. 저희와 이웃들은 서로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아는 사이였습니다. 하이파 같은 대도시로 이사를 가면, 모든 것에 두 배씩 내면서 하나의 점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해서 매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제가 치료를 마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공동체 리더들에게 저의 딜레마를 이야기했고, 그들은 제가 이사하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그들은 병원 가까이로 이사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며, IStandwithIsrael에 연락을 했습니다. 몇 주가 되지 않아 저희 요청은 승인이 되었고 저는 이렇게 치료를 받는 병원에서 불과 7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결과는 아주 고무적이고, 저는 이 병마를 이겨내고 저희 가계 가운데 믿음의 다음 세대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낙천적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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