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쉴로 - 이스라엘 마알레 아둠밈에서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11월 2021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쉴로 벤호드와 마알레 아둠밈 이야기

쉴로가 아빠(아브라함)가 본디 영국 출신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연했다. “근데 영어가 왜 이 모양이에요? 부모님 중에 영어를 쓰시는 분이 있는 것 치고 말이에요.” 나는 윙크를 하며 물었다. 그는 웃었다. “우리 어머니는 (이스라엘 토박이) 사브라고, 저는 같은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어요. 자라면서 몇 번 이사를 했지만, 항상 마알레 아둠밈(예루살렘의 광야쪽 변두리)에 위치한 같은 거리 내에서 옮겨다녔죠.”


Shani Ferguson
으로 Shani Fergu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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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로가 아빠(아브라함)가 본디 영국 출신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연했다. “근데 영어가 왜 이 모양이에요? 부모님 중에 영어를 쓰시는 분이 있는 것 치고 말이에요.” 나는 윙크를 하며 물었다. 그는 웃었다. “우리 어머니는 (이스라엘 토박이) 사브라고, 저는 같은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어요. 자라면서 몇 번 이사를 했지만, 항상 마알레 아둠밈(예루살렘의 광야쪽 변두리)에 위치한 같은 거리 내에서 옮겨다녔죠.”

쉴로의 어머니는 전통적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 10대 후반에 그녀와 몇몇 친구들은 예슈아에 대해 듣게 됐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으로의 초대에 응했고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그 결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그녀의 신앙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도를 하나님은 모른 체하지 않으셨다. 쉴로의 할아버지는 죽기 1년 전에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 예슈아와의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의 여생은 변화되었지만, 2차 대전의 공포 가운데 살았던 할머니는 하나님의 존재조차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한 채 강퍅하게 살았다. 그로부터 20년 후, 그러니까 사망 2개월 전에야 할머니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였다. 이스라엘과 당신의 아들 예슈아를 지키시는 그분을 말이다. 

이스라엘 땅에 대해 처음 동요를 느꼈을 때 아브라함은 젊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의 땅으로 이주하는 큰 걸음을 떼기 위해서는 성인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내 될 사람을 만나 IDF에 입대하기 전에 결혼을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이후에도 그는 50세까지 예비군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식물학 석사를 받았다. 

아브라함은 자연을 사랑했지만, 특별히 사막에 관심이 많았기에 부부는 당시 작은 정착촌이었던 유대 광야의 마알레 아둠밈으로 이사했다. 다른 신자들과의 공동체를 찾던 그들은 주말에 예루살렘에서 모이는 공동체에 속하게 됐다. 주간에는 (전부 마알레 아둠밈에서 오는) 상당수의 회중들이 도시 내의 여러 가정에서 주중 가정 모임을 가졌다. 

매주 예루살렘 예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운전을 하는 것이 진이 빠지는 일이었고(샤밭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유일한 휴일이기 때문), 서서히 가정 모임 멤버들이 마알레 아둠밈에 공동체를 세워야 할 필요를 함께 느끼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공동체 리더들을 찾아가 자기 도시에서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노력을 축복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리더십은 1년을 기다리며 기도해보라고 안내했고, 아브라함은 동의했다. 1년 후, 이 그룹은 축복 속에 파송을 받았다. 이들은 스스로 마알레 아둠밈 공동체라고 이름 지었는데, 자신들이 영향을 미치고 싶은 거주 도시의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그게 16년 전이었다. 

초기 마알레 아둠밈에 있는 아브라함의 집은 모임 장소가 되었다. 매주 주말에 가구 대부분을 밖으로 가져가 마당에 쌓아두어야 했다. 침실들은 아이들을 위한 공부 장소가 되었고, 플라스틱 의자들이 빈 공간만 있으면 놓여졌다. 

샤밭 예배 전에 기도하는 쉴로, 사라, 그리고 리더십 팀

PK(목회자 자녀)

쉴로는 일생의 대부분을 이 공동체 내에서 보냈다. 그리고 목회자 자녀들이 가질 수 있는 악명 높은 평판이 있지만, 쉴로는 한번도 심각하게 반항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왕이 누구신지가 언제나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에는 믿는 자로 사는 것이 삶의 최우선 순위가 아닌 때가 있었다는 것은 용인해줘야겠다. 예슈아는 중요했지만 친구들, 그리고 그가 살고 싶은 삶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15세쯤 쉴로는 청소년 여름 캠프에서 사라를 만났다. 사라는 예루살렘에 있는 기도의 집 주간 청소년 모임에 쉴로를 초대했다. 쉴로는 사라가 많이 좋았기에, 같이 있을 수 있는 핑계가 생겨서 기뻤다. 

그 모임 중에 청소년 리더가 예슈아께서 넓은 길과 좁은 길의 비유에 대해 하신 말씀을 나눴다. “그분이 얘기하는데,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애초에 길에 들어서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었죠. 스스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요. 저는 제 삶을 바라보며 스스로 생각했어요. ‘그 길이 좁은 것이라면 쉽지 않은 것이겠구나. 그 길로 가려면 희생을 해야만 하겠구나. 그런데 나는 예슈아를 따르기 위해 거의 희생하는 게 없구나.’ 그때부터 저는 생활 방식을 바꿨어요.”

예배 인도자

쉴로의 음악 여정은 6살부터 시작되었다. 악기에 관심을 표하자 어머니는 피아노를 사주셨고, 매일 연습하는 것을 철저하게 요구하셨다. 당시에는 싫었지만, 어머니 덕에 지금 쉴로에겐 광대한 창조성의 세상이 펼쳐져 있게 됐다.

쉴로는 13세에 처음으로 찬양곡을 썼고, 15세가 됐을 때는 아버지가 인도하는 공동체와 예루살렘의 기도의 집에서 예배 인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저는 재미있어서 인도를 했어요. 그런데 군복무를 하러 갔을 때쯤은 음악과 예배가 제 부르심 가운데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았죠.”

그래도 군대는 소모적인 곳이었기에, 이후 쉴로의 3년은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다행히 주말에 외출을 나오게 되면 예배 인도를 겨우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사랑하는 사라와 함께 결혼에도 골인할 수 있었다.

군복무를 마친 쉴로는 이미 하이테크 직군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생태였다. 계약서가 들어왔고, 쉴로는 이미 앞선 해에 그 자리를 위한 훈련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하기로 한 날짜보다 불과 몇 주 전에 쉴로는 기도 가운데 청소년 시절에 예배 인도를 하던 기도의 집 이름을 듣게 된다. “저는 누구한테도 기도의 집 스태프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없어요. 원한 적이 없으니까요. 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싶었죠.” 쉴로는 설명했다. “그런데 기도의 집 대표님이 저한테 전화를 해서 스태프로 섬기고 싶냐고 물었을 때,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을 확증해주시는 것임을 알았죠.”

“저를 훈련시키는 데에 1년을 투자한 제 친구는 제가 계획을 바꿨다고 하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저는 싹싹 빌며 사과했고, 주님의 음성을 따라야한다는 설명을 했죠.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갈등을 하고 있었어요. 하이테크 세계가 정말 좋았고, 이스라엘인으로서 기타치며 노래하는 것은 진짜 직업 같은 기분이 안 들었거든요. 분명 월급 액수 차이도 와닿았죠.”

“2년 후, 그 친구가 갑자기 저한테 전화해서 더 좋은 조건, 그것도 제가 시간 남을 때 재택 근무를 하는 것으로 오퍼를 해왔어요. 마치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했던 것을 보시고, 제가 둘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 같았죠.”

집보다 커지다

마알레 아둠밈 공동체의 지체들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모이기엔 너무 많아지자, (이스라엘 사람 기준으로는 “숲이구나” 할 만한)나무가 듬성듬성 심겨 있는 들판으로 옮겼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여름의 더위가 야외 예배를 진행하기엔 너무나 강렬해졌다. 모임 장소를 빌리는 것은 너무 값이 컸기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

결국, 가진 예산 안에서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사해 근처의 고고학 공원 끝자락에 있는 동굴로, 예슈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곳이었다. 그들은 공원 관리인들과 아주 잘 지냈지만, 얼마 못 되어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고 젊은 가정들이 의견을 내놓게 됐다.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것은 절박한 필요였다. 

어느날 밤, 쉴로의 어머니가 이 상황을 두고 기도하던 중에 “볼링”이라는 단어를 듣게 됐다. 다음 날, 친구와 함께 모임 장소로 가능성이 있는 곳들을 보고자 차로 다니던 중에 거대한 “볼링” 간판이 밖에 붙어있는 곳을 지나치게 됐다. 아직 마음 속에 그 단어가 생생했던 어머니는, 다같이 가서 보자고 했다. 정말로 볼링장이 영업 중이었고, 그 아래층이 임대 가능한 곳이었다! 물론 건물주가 “우연처럼” 그 자리에 있어서 장소를 볼 수가 있었는데 최근 문을 닫은 나이트클럽이었다. 건물주는 너무나 귀한 사람이었고, 그들에게 규모 대비 아주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모든 게 너무나 완벽해보였는데, 회계사와 이야기를 하고 보니 그만한 장소를 임대할 예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외부의 후원을 받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80여 명의 지체들의 십일조와 헌금으로 존재해온 것이다. 그럼에도 리더십은 이곳이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곳이라는 확신을 갖고 한 마음으로 임대차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 자리에 들어간 맨 첫 달부터 공동체의 헌금은 두 배로 뛰어 월세를 충분히 낼 수 있었다. 그게 9년 전이다. 

쉴로의 군복무 중. 마오즈는 그가 쓴 곡 하나의 뮤직 비디오를 촬영했다.

도시 너머

“제가 처음으로 이스라엘 밖에 사역 여행을 갔던 게 마오즈가 여러 이스라엘인들을 데리고 펜실베니아주의 MJAA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것이었어요.” 쉴로는 말했다. “저는 군대에서 2주 동안 특별 휴가를 받아서 마오즈 음악 팀 소속으로 갈 수 있었죠. 저희는 귀엽게 “그 땅에서 온 밴드(the Band from the Land)”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이 자리를 잡아버렸죠.”

“저는 미국에 가본 적이 없어서 문화 충격이 좀 거슬릴 정도였어요. 하지만 제 눈 앞에 다가온 음식의 양은 압도적이었죠. 전체적으로 놀라운 체험을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상에 전해줄 수 있는 축복에 대해 저는 눈을 뜨게 됐어요. 그 땅에서 온 밴드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긍정적이라, 이스라엘로 돌아온 뒤 마오즈는 저희 밴드의 앨범을 녹음했죠. 당시 제 곡도 2개나 녹음을 했어요.”

“처음으로 제가 찬양 사역을 하러 외국에 나갔던 것도 마오즈였어요. 싱가포르 출신의 마오즈 파트너들이 컨퍼런스를 하고 싶다며 이스라엘의 예배 인도자를 추천 받았죠. 마오즈가 저를 추천해서 제가 가게 된 거에요. 커다란 세상에서 사라와 홀로 사역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저는 얼마나 할 만한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유리 천장을 깨뜨린 저는 주기적으로 외국에 나가 예배 인도를 했죠.”

“그렇게 몇 년을 지내던 중에 저희 공동체의 지체 한 분이 제게 와서 말했어요. ‘곡이 정말 많으시네요! 녹음을 하셔야겠어요.’ 저는 곡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그렇다고 다 녹음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을 했죠. 하지만 그녀는 계속 저에게 격려를 하며 비용까지 부담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알아보기로 했죠.”

“‘그 땅에서 온 밴드’ 작업을 같이 했던 아비 페로딘이 제 앨범 프로듀싱을 맡아주기로 하며, 예루살렘에 위치한 마오즈의 ‘아티스트 모임’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것을 추천했어요. 저는 당시 아티스트 모임이나 그들의 비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마오즈와 지금껏 잘 지내왔고 마오즈의 시설이 퀄리티가 좋다 보니까 그러기로 했죠.”

전국이 봉쇄된 가운데 아티스트 모임 스튜디오에서 2집 앨범을 녹음하는 쉴로

“2019년 말, 저는 2집 앨범에 들어갈 히브리어 찬양 신곡을 충분히 만들어서 새롭게 녹음할 것의 세부 사항들을 계획하기 위해 아티스트 모임 스튜디오로 다시 찾아갔어요. 거기엔 2020년초에 진행될 몇 가지 프로젝트들이 줄을 서 있어서, 저는 3월쯤 녹음을 시작하기로 했죠.”

“그러다가 코로나가 닥쳐왔고 모든 게 봉쇄됐어요. 모든 것, 그러니까 응급 의료진, 슈퍼마켓 빼고요. 그리고 법의 기술적 해석 덕분에 아티스트 모임 스튜디오도 빠졌죠! 그래서 1차 유행 당시 온 나라가 집안에 앉아있을 때, 아비와 저는 스튜디오에서 히브리어 찬양 10곡을 편곡하고 녹음했죠. 한 번에 한 명씩 뮤지션들을 데려와 악기 녹음을 하면서요.”

“두 번째 프로젝트를 끝내고 있을 때는 모든 게 다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때 아티스트 모임의 ‘모임’이라는 이름이 갖는 역할에 감사하기 시작했어요. 이스라엘의 예배, 그리고 이스라엘 뮤지션과 예배 인도자들을 후원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가진 비전을 깊이 배웠죠. 그들은 단순히 스튜디오만 가진 게 아니었어요. 다양한 사역 단체와 예배 공동체에 속한, 달란트 있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었던 거에요. 단순히 같이 협업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주님 안에서 세워나갈 수 있도록요.”

모이기 위한 집, 기도하기 위한 집

마알레 아둠밈은 이사야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묘사한 바로 그 광야에 위치한 도시다. 이 광야에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창조주로부터 직접 응답을 받은 사람들의 길고도 아름다운 역사가 있다. 다윗 왕, 엘리야, 세례 요한 그리고 예슈아까지도 이 땅의 바위 언덕들 사이사이 울려퍼지도록 외쳤던 목소리의 주인공들이다. 이스라엘이 유수를 겪던 수 세기 동안, 바로 이 지역에 수도원들이 생겨났는데, 그들 역시 이스라엘의 광야 땅이 가진 영적 부요함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16년 전, 아브라함은 마알레 아둠밈에 신자들이 예배 공동체로 모이기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 데에 역할을 감당했다. 이제 13년 동안 예루살렘의 기도의 집을 섬겨온 그의 아들 쉴로는 마알레 아둠밈 공동체의 일환으로 기도의 집을 개척하는 데에 자신의 몫을 감당하려 한다. 수많은 자들이 광야에서 외칠 수 있도록.

수년을 지나면서 이 공동체는 수적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 내의 영향력 면에서도 자랐다. 많은 비신자들이 그들을 선한 사람들로 인식하며(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이 믿는 유대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고려할 때 상당한 성과), 그들이 이웃 가운데 어려워하는 이들을 도우며 예슈아의 빛을 발할 기회를 주고 있다. 

약 1년 전, 코로나가 모든 사람들의 예배 방식을 바꾸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봉쇄 가운데 수 개월 동안 집에 갇혀있을 때, 공동체 리더십은 사용하지도 못하는 건물의 월세를 내는 문제로 씨름했다. 아예 자리를 뺀다면 단기적으로 돈은 굳겠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때, 공동체의 모임 장소가 없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장일치로 내려진 결론은 구매하는 것이었다. 모임 장소의 필요는 사라질 것이 아니었고 이 장소는 성도들에게 좋은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임 장소 매입은 도시내 이 공동체의 입지를 더 굳혔다. 

(역시 이 공동체가 지금껏 지역내 끼쳐온 긍정적 영향을 인정하는) 건물주는 시장 가격 이하에 물건을 팔기로 하는 대신, 2021년 12월까지 계약금을 낼 것을 요구했다. 그들이 구매 의향서에 서명을 하고 몇 개월 후에  일상이 다시 열리기 시작하여 지역내 부동산 가격은 예외없이 치솟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두바이와 같은 사막 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야심찬 건축과 기술의 발전인 디자인 시티가 이 동네에서 보이는 곳에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9년 전에 미리 아시고 아브라함과 마알레 아둠밈 공동체를 인도하사, 이제 이스라엘 전체의 문화, 패션, 상업의 허브가 될 지역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만큼 떨어진 모호한 위치에 개척을 하게 하실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백성은 이미 이스라엘을 주님의 임재가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할 몫을 다하기 위해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후원 계좌: 하나은행 424-910030-90504 (한국 마오즈 이스라엘)*/”쉴로” 또는 “마알레”라고 표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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