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산에 서서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는 요세프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5월 2021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귀향할 때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 홀로 남겨진 순간부터 에티오피아계 이스라엘인들로 구성된, 히브리어 공동체를 시작하기까지, 이스라엘로 돌아온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의 놀라운 실화 스토리.


Shani Ferguson
으로 Shani Fergu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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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프(가명)는 할머니가 성지 이스라엘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시고 그를 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 공항에 홀로 남겨놨을 때 9살이었다. 누군가 일을 제대로 못한 게 분명했다. 요세프도 비행기에 탔어야 하지만, 그에게 약속되었던 비행기 표가 도착하지 않은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서류라는 것은 정말 골칫거리였다. 요세프는 출생증명서가 없었기에, 그는 당시 9살이었는지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 정도였으리라고 본다. 어쨌든 당시 시스템이 난리였긴 해도, 표가 없는 요세프를 비행기에 태워주진 않았다. 

할머니는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수년 동안 대기 명단에 있었기에, 비행기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유대 기구(Jewish Agency)는 요세프가 다음 날 비행기에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때까지 그는 혼자 있어야 했다. 요세프는 고립된 마을에서 자랐고 가족들과 도시로 이사한 지는 불과 비행기 탈 차례를 기다리기 위한 몇 달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공항을 홀로 떠났을 때, 요세프는 어머니가 형제들과 지내고 있던, 도시 반대편의 장소로 가는 길을 더듬어 찾아내야 했다. 

일반 에티오피아인들이 유대계에 대해 갖고 있던 적대감 때문에, 유대계 에티오피아인들은 대도시보다 마을에서 사는 일이 많았다. 그들은 수천년 동안 에티오피아에서 살았지만, 현지인들에게 “팔라샤(침략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에티오피아에서 뭐라도 잘못 되면-그러니까 의료 행위도 하는 주술사의 저주로부터 이상한 질병, 자연 재해까지, 항상 유대인 탓으로 여겨졌다. 그들의 공동체가 더 고립될수록, 핍박을 경험하는 일은 더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땅을 소유할 수 없었던 기간이 있었지만, 마을들에서는 최소한 유대 정체성과 전통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더 자유로웠다. 

이상하게도, 에티오피아인들이 유대계를 노여워했지만 정부는 그들이 나라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공산 국가였던 에티오피아는 유대계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밀실 거래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거래 중 일부는 주변 국가들과 이뤄져야 했고, 그러려면 에티오피아인들이 수단까지 엄청난 거리를 걸어 안전하게 공수되어야 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이스라엘은 많은 비행기를 보내 수만 명의 유대인들을 아프리카에서 공수해 데려왔다. 

신비의 예루살렘

에티오피아의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낙원처럼 신비한 땅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그들은 철따라 이동하는 황새들에게 이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오 황새야, 우리 땅 예루살렘은 어떻게 지내니?”

그래서 요세프가 마침내 이스라엘에 도착해서 할머니와 사촌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정말 천국에 도착했다는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착륙을 하자마자 그가 받은 것은 방독면이었다. 당시 요세프는 그 선물, 아니 아무 선물이든 받은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사이렌이 울리고 모두의 공황 상태를 통해 방독면이 목숨을 구하기 위한 용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였다. 당시는 걸프 전쟁 중이었고, 이스라엘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폭격을 받고 있었다. 

한 달 여 후 전쟁이 끝났을 때, 요세프는 느리고 지루한, 이스라엘 문화 동화과정을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그가 도착하고 몇 달만에 합류했지만, 그의 양아버지(친아버지는 요세프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고 어머니가 재혼을 한 것이다)는 그로부터 2년 후에야 합류하게 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가 가야 할 길은 멀고 먼 것이었다. 

요세프의 고향인 곤다르 근처의 유대인 공동체
출처: Alamy/travelib ethiopia

에티오피아인들의 고난

이스라엘은 긴급 상황 대처에 능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가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곤경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전세 비행기가 보내져 복잡하고도 위험한 군사 작전의 실행으로 그들을 구출하여 고토로 데려온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잘 하지 못했던 것은 에티오피아의 작은 부락 생활과 이스라엘의 현대적 생활 간의 광대한 문화적 간극을 고려하고 장기적인 문화적 동화의 해법을 계획하는 것이었다. 이는 에티오피아계의 동화 과정이 왜 난관에 부딪히고 또 모래밭에 가라앉는 것 같았는지를 설명해준다.

전 세계 열방에서 모인 이스라엘인들은 유대 사회에 다양한 피부색이 공존한다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고대 문화와의 연대감이 있어서 이민을 하고서도 고정관념을 넘어서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어쩌면 가장 어려운 과제가 스스로의 가족 구조 안에서 발견되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남편이 한 가족 단위에서 아주 높은 가장이었다. 존경과 존중을 받는 위계질서의 일부였다. 자기가 속한 곳을 알고, 가족의 필요를 공급함으로써 만족감을 누리는 존재였다. 여자들은 때로 근처 밭에서 일했지만 일차적인 직업은 주부였다. 

이스라엘에서 남자와 여자는 법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등하며 여자들도 남자와 똑같이 직업을 갖는다.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데에 있어서는 남자보다 더 나은 경우가 많았다. 직업의 기회는 남녀에게 동등했고, 기존에 남편의 농업 및 지역적 거래 기술에 의존했던 아내들은 이제 더 큰 수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빛나는 창을 가진 기사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이제 “그다지 좋지 않은” 이스라엘식 “후쯔파(뻔뻔함/무례함/도전 정신)”를 배운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에 진을 빼고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은 가정이라는 조직을 찢어놓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은 미국의 흑인 랩 문화에서 자신들의 롤모델을 새로이 찾았다. 에티오피아의 젊은 세대는 새로운 땅에 소속되기를 강하게 갈망하여, 히브리어를 포용하고 암하라어 사용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던 세대들 간에 단절이 심화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민자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는 부족적이고 항상 새 얼굴을 빠르게 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에티오피아의 문화를 버렸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문화를 마스터하기까지 갈 길이 멀었다. 이렇게 문화 사이에서 어중간한 상태에 있다 보니 많은 에티오피아계는 정체성의 위기를 맞았다. 아버지들은 가정을 세우고 꾸려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었고, 젊은 세대는 죽기 전에 소속감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버리고 있었다. 이러한 취약성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거리 생활로 내던져졌고 상당한 학대를 받게 됐다. 거리가 선사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에 연루된 것이다. 

에티오피아계 이스라엘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의회(크네셑) 밖에서 이스라엘로 데려올 수 있도록 허가가 나기를 바라며 친척들의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 
출처: Shutterstock/Magen

예슈아께서 친히 오셨을 때

요세프의 가정은 유년 시절 내내 여러 차례 이사를 하며, 가는 곳마다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하이파 근처에 정착했다. 그 장소 중 한 곳에서 할머니는 어느 날 집에 돌아왔다가 도둑 맞는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이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여러 차례 심장마비를 겪었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운명했다. 한때 사랑했던 아름다운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은 그렇게 계속해서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에서 나오는 이민자 보조금으로, 그들은 결국 작은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었다. 요세프는 이때 10대였고 유대교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는 배우는 모든 것에 열정이 있었고, 예식이 있으면 선창자(cantor)로 많이 섬겼다. 

그는 가족들과 가까웠지만, 어느 날은 어머니가 집에 오시더니 아버지와 요세프에게 예슈아를 믿는다고 했다. 요세프는 충격을 받아 정부 당국에 신고하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그와 양아버지는 어머니의 행동에 반대하는 중에 유대감을 형성했다. 설명과 논쟁, 기도가 필요했지만, 결국 요세프의 아버지도 믿음에 이르게 됐다. 

요세프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성을 잃었다. 어머니와 논쟁을 벌이던 중 한 번은 예슈아께서 얼마나 실재적이신지를 설명했지만, 요세프는 결국 이런 말을 했다. “예슈아가 진짜이고 내가 그를 따르기를 원한다면, 직접 나한테 와서 얘기하라고 하세요.” 며칠 후 밤에 예슈아께서는 요세프를 친히 찾아와서 말씀하셨다. 

헌신된 유대교인이었던 요세프는 예슈아에 대해 거의 들어본 게 없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부정적인 내용 빼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꿈에서 그가 보좌에 앉은 채, 밝은 빛에 둘러싸인 모습을 봤다는 것은 이전에 어디서 보았거나 책에서 읽은 내용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몇 년이 흐른 후까지 너무나 실제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는 말했다. “마치 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요. 한동안 저에게 말씀을 하셨는데, 말씀하시는 게 제 안에 들어와 저를 변화시키는 것 같았어요. 저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제 안에 채워지는 것 같았죠.”

요세프는 일어나 바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 믿어요.”

“제 친구들, 동급생들과 선생님들이 저한테 못되게 굴었어요.” 요세프는 거듭나고 얼마 안 됐던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에티오피아계 친구들이 저희한테 소리쳤어요. ‘우린 너희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피하려고 에티오피아를 떠나온 거야!’”

“저는 제 믿는 바가 진짜라는 걸 확신했지만, 또 한번의 사회적 거절을 당한다는 것은 어려웠어요. 저는 언어를 배우고 문화에 적응하며 수년을 보내고 드디어 친구를 사귀었는데, 이제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걸 또 한번 버려야했던 거에요. 그래도 하나님의 임재가 가까이 느껴졌어요. 마치 갓난아기를 품에 안아주시는 어머니처럼요.”

“일부 동급생들은 저를 교장 선생님과 부딪히게 하려고 했지만, 제 새로운 믿음에 대한 소문을 듣긴 하셨어도 제가 자원해서 어려운 친구들을 돕고 있다는 얘기도 들으셨죠. 그래서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질책하실 거라고 기대했지만 교장 선생님은 불현듯 다른 학생들에게 저한테 좀 배우라고 권면하셨어요.” 

서쪽 벽에서: 이스라엘로 이민한 에티오피아계 기성 세대가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오래된 스타일과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Shutterstock/Glinsky

근근한 생존에서 번영으로

요세프는 항상 다른 친구들을 돕되 전심을 다해 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예슈아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됐어도 그는 지역 청소년 모임에서 금세 자기 자리를 찾아 예배 팀에까지 참여했다. 고등학교 이후 요세프는 경제와 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진학했다. 그는 학비와 주거비까지 포함하는 장학금을 받았지만, 식비 등 기타 생활비에 있어서는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청소부터 과외까지 모든 일을 닥치는대로 했다. “때로 정기적인 일이 없으면, 식비를 벌기 위해 당시엔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어떤 정당이든 무슨 플래카드를 들든 신경도 안 썼죠. 완전히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저희는 그저 다음 날 돈을 받아 입에 풀칠할 수 있기를 바랐죠.” 

대학교는 힘들었지만 그 시간 동안 요세프는 지금까지도 “내 사람”이라고 부르는 여인을 알게 됐다. 그는 함께 대학교에서 공부하자고 그녀를 초대했고, 둘이 함께 학위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양가의 축복을 받으며 둘은 결혼을 계획하게 됐다. 둘이 거의 최초였지만, 에티오피아 전통을 이스라엘 스타일의 예식에 녹여내려는 결정은 옛 것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포용함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결혼 후, 요세프는 군대에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복무를 마친 그는 자신의 인종 공동체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에 축복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는 경영과 경제를 잘 알았고 특별히 복잡한 법적, 사업적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는 크네셑에 가서 인턴쉽을 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변호사로 개업을 하게 됐다. 혼자 그렇게 할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기에 다른 수십 명의 에티오피아계 변호사들과 협력했다. 또한 시간을 내어 청소년들을 돕고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심지어 어려운 이들에겐 법률 상담까지 무료로 해줬다.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죽여주는 상태였다! 

그의 인생의 목표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잘 사는 데에 있었다면, 분명 그대로 잘 가고 있었다. 

일부 에티오피아계 이민자들은 의무 복무 기간 중에 고뇌의 시간을 겪고, 다른 이들은 탁월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그들이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출처: National Library of Israel

침묵의 목소리

요세프의 명성이 쌓여가던 중에 몇몇 대형 기업들이 그에게 접근해왔다. 한 스카우트 제안에는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에티오피아에 마음껏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다. 그런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교육 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요세프는 곧장 침묵의 벽에 직면했다. 인터넷도, 전화도, TV도 없었다. 어떤 방해도 없던 것이다. 요세프는 말했다. “처음엔 압도적이었어요. 저는 항상 사람들과 활동에 둘러싸여 살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제 귀에 침묵이 울려퍼지는 거에요. 불현듯 딸랑 저와 성경, 하나님 뿐이었죠. 제가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곤 주님께서 제가 사역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음성 뿐이었어요.”

그의 커리어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치 있는 일이었고 요세프도 정말 좋아했다. 이렇게 일하는 가운데 그는 가족들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을 알았다. 사역자로서의 삶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자녀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자신이 내려야 하는 결정의 막중함을 파악한 그는 40일 간의 금식을 하기로 했다. 결국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됐을 때 성경의 사람들도 그렇게 했으니 말이다. 

금식이 끝났을 때 받은 응답은 분명했다. 분명하지 않았던 것은 요세프가 사랑하는 이들이 그 결정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였다. 아내는 그 결정으로 인한 파장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대답은 요세프를 당황하게 했다. “나와 결혼하자고 했을 때, 당신은 사역자가 될 거라고 얘기했어요. 그 약속을 지킬 날을 기다려왔어요.”

“돌아보니 제가 예전에 가던 길을 계속 갔다면 이미 집을 소유하고 가족들은 세상의 좋은 물건들을 품에 끼고 살 수 있었겠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 가운데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을 알죠. 왜냐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한 가지가 내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고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심을 아는 데서 오는 기쁨과 평안이거든요.” 

에티오피아의 아름다운 도시 아디스아바바에는 요세프에게 익숙한 현대적 기술이 없었다 
출처: Shutterstock/Paluchowska

다음 세대 에티오피아인들

러시아, 에티오피아, 미국,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믿는 이민자들이 오면 자신들의 언어로 공동체를 개척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공동체들은 같은 처지의 이민자들을 끌어당기고, 또 이스라엘처럼 살기 힘든 나라에서 교제와 영적 독려의 원천으로서 놀라운 역할을 한다. 덜 자연스럽지만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하는 것은 지체들이 이스라엘 생활을 충분히 하고 나면 그러한 공동체에서 히브리어 공동체로 전환하는 일이다.

히브리어 공동체가 탄생될 수 있는 이 외의 유일한 방법은 사브라(토박이) 세대 혹은 아주 어린 나이에 와서 이스라엘에서 성장한 이들이 전혀 새로운 일을 가지고 가지를 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공동체의 비전을 구상할 때 머릿속에 갖고 있던 개념이다.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히브리어를 쓰는 에티오피아계 공동체 말이다. 

“저는 저희 혈통에게 이스라엘 문화에 속하고 싶은 갈망이 깊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희가 에티오피아계 젊은 세대를 예슈아 안에서 일으키려고 한다면 저희의 영적 표현 역시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식이 되는 것이 아주 중차대함을 알았어요.”

요세프와 사모는 거실에 어린 세 자녀를 모아서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곧 친구들이 합류하기 시작했고 곧 그들의 집이 모임마다 가득 들어차게 됐다. 샤밭 때 주거지역에서 모임을 갖다 보니 이웃들이 찬양과 교제 소리가 시끄럽다고 민원을 내기 시작했다. 

현재 2년도 되지 않은 이 공동체는 상업 지역으로 옮겼고 팬데믹 기간 중에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별히 이 작은 나라에서 이러한 속도로 성장하는 공동체는 히브리어를 쓰는 에티오피아계 이스라엘인들의 추수가 얼마나 그때를 맞은 것인지 증명해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세대를 향한 이토록 깊은 영적 열정과 헌신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걸 잘 알고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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