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10월, 2020

지도자들의 시작은 제자들로부터

여러분이 슈무엘 살루에이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혹시라도 갖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지금 그는 40대지만 곧 20대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왜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이 그에게 몰렸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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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i Ferguson
으로 Shani Ferguson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슈무엘의 부모는 모두 인도에서 이민 왔지만, 조금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데이지의 가족은 아주 보수적인 유대인들이었고, 그녀가 겨우 열 살 때 이스라엘에 왔다. 다비드의 가족은 유대인이지만 전혀 종교적이지 않았으며, 다비드가 20대 때 이스라엘에 왔다. 다비드와 데이지는 결국 결혼하여 1남3녀를 낳았다. 결혼 초반에 데이지는 자파에서 베이트 임마누엘이라는 공동체를 발견했다. 거기서 그들은 예슈아를 알게 됐고, 다비드도 곧 함께했다. 둘 다 보수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데이지의 가족은 이 결정을 아주 굳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다시는 그녀를 안 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운명했을 때도 데이지가 가족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아무도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슈무엘은 믿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의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겪는 유혹과 자기가 늘 들어왔던 하나님에 대한 관념에 부딪히는 경험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그는 필드 하키 팀에 들어갔는데, 그 덕분에 파티에는 덜 참석하게 됐을지 모르지만 주말 연습으로 인해 그는 더 이상 공동체 예배에 나가지 않는 구실을 삼았다.

슈무엘은 믿는 친구가 꽤 있었는데, 그들은 주중 청소년 모임에 오라고 슈무엘을 계속 초대했지만 슈무엘은 시간이 있을 때도 오히려 파티 후속 모임을 찾아가길 더 좋아했다. 청소년 모임에 한 번 가서 늘 그렇듯 뒤에 앉아있던 그는 초청 강사가 말을 마치기만 기다렸다. 그래야 친구들과 놀러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사가 메시지를 나누는데, 슈무엘은 강사가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고 그곳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슈무엘은 그 감정이 무엇이든 그보다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예배 끝에 주님께 헌신하라는 초청을 무시했다. 하지만 예배를 마치고 그는 몸이 안 좋다며 친구들에게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고, 침대로 기어들어가 통곡을 했다.

변화가 일어나다

“아침에 일어나서 초청 받은 이틀 간의 청소년 캠프에 가는 차를 탔어요.” 슈무엘은 말한다. “도착해보니 한 청소년 리더가 저를 향해 걸어오더니 불쑥 이런 말을 하는 거에요. ‘무슨 일이니? 너 달라 보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너무 이상해서 전 그를 방 구석으로 끌고 가서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얘기해줬어요.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요. 그는 너무 신나 하는 거에요. 우린 함께 기도했고, 그는 주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하신 말씀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남은 고등학교 기간 동안 저는 모범생이 되었다고 하긴 그렇지만 분명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어요. 제 생각에 저는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너무 나쁘게만 안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실 거야.’

그리고 이제 군복무 차례가 되었죠.” 슈무엘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군대를 가는 게 문제가 되는 건 입대 시에 주님을 정말 사랑하더라도 인생이 완전 군대에 의해 돌아가게 된다는 거죠. 살아있는 모든 순간 군대의 일정을 따르고, 한 가지 생각을 가진 군인으로 만들어버려요. 수주 내지 수개월 동안 한 사람의 신자도 만나지 못할 수 있죠. 처음으로 부모를 떠난 18세 동료들 무리에 섞인 채 폐쇄적 생활을 해요. 전투를 함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유대감을 키워야만 해요. 성경 읽기, 기도, 찬양 듣기로 영적 충전을 하는 것이 쉽게 되는 게 아니라고 표현해 둘게요.

이후 군생활 중에 제 일정이 조금 풀어졌을 때, 청소년 리더의 친구 한 명이 저에게 그들의 청소년 여행에 같이 가자고 했어요. 제가 야전 의료 훈련도 받았고, 무기를 소지할 수 있어서요(이스라엘에서 그런 현장학습을 갈 때 요구되는 사항). 이러한 여행에는 일주일 동안 젊은이들이 지중해부터 갈릴리까지 행군을 하는 여정이 있는데, 여기서 인생과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죠. 저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휴가 기간 중에 가는 걸로 담당 사령관과 이야기를 했어요.

재밌는 것은 저는 문제가 생기면 도우려고 거기에 갔던 것이지 어떤 영적인 역할을 담당한 게 아니었다는 거에요. 자연스레 저는 성격이 그렇다 보니 어린이들과 친구가 됐어요. 하지만 제가 농담을 하고 레바논에서 지내면서 겪은 전쟁 이야기를 해주면, 청소년들이 저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인생의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해오는 거에요.

저는 질문들을 청소년 리더들에게 넘겨주려고 했어요. 왜냐면 저는 그런 질문들이 제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게 만드는 것인지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 여행 내내 저는 믿지 않는 이성친구를 사귀어도 되는지, 믿음 없이 죽은 아버지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훈련을 받았어요. 어떤 답변들은 공부를 하고 찾아내야 했지만, 제가 답을 알고 있는 질문들도 있었죠. 저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데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여행 이후, 저는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깨달았어요. 저는 정말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저는 오랜 시간 성경을 공부해, 아이들이 다음에 또 질문을 퍼부으면 견고한 답변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가슴 깊이 진리라고 믿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 상태로 계속 살면 그럴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알았고요.

저는 항상 야외 활동을 좋아했고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대 후 저는 지리를 전공하고 결국 이스라엘 최대 항공사인 엘알의 보안 직종에 일하게 됐어요. 이 직업 때문에 저는 전 세계를 무료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실제로 그렇게 했어요!) 마침내 뉴욕 시의 돈도 많이 주는 보안 관련 직업을 갖게 됐죠. 전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지만, 항상 그곳에 사는 것을 꿈꿔왔기 때문에 이 직업은 제게 꿈을 이루는 기회였어요.

아리&쉬라 소르코람 & 코비&샤니 퍼거슨

영원한 것

9/11이 터졌을 때 저는 뉴욕 JFK 공항에서 최고 기밀 문서를 남아메리카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달하기 위해 떠나는 비행기 안에 있었어요. 기내 창문으로 타워에서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날 비행은 취소될 것이라는 걸 바로 알았죠. 저는 차를 타고 맨하탄으로 재빨리 돌아갔고 그때 도시 전체에서 나던 연기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나요. 저는 많은 바리케이드를 지나 서류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어요.

그 날 이후 세 가지가 제 머릿속에 박혔어요. 첫째, 공격에 대한 뉴스가 전해지자마자 바로 제 전화는 쉼없이 울려댔어요. 온 가족과 이스라엘의 친구들이 제가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이로써 저는 저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죠. 둘째, 저는 보안업계에서 일하는 제 역할이 이처럼 실제적인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했어요. 저는 전 세계에서 많은 공격들로부터 보호하는 이스라엘의 보안 산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어요. 그리고 셋째로 저는 얼마나 인생이 덧없고 생명을 얼마나 순식간에 잃을 수 있는지를 생각했어요. 제 인생을 통해 하는 일이 영원한 의미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스라엘로 돌아가야겠다는 판단을 했죠.

뉴욕에서 외교관 및 다른 고위급 보안 관료들과 3년을 보낸 후, 저의 계약은 끝났어요. 이제 이스라엘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것을 알았는데, 단순히 이스라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이 모든 시간 동안 저는 사역으로의 부르심을 알면서도, 그게 얼마나 돈이 안 되는지를 생각했죠. 하지만 더 이상 부르심을 무시할 순 없었어요. 제 친구들은 뉴욕에서 5년 동안 계약이 연장되는 것을 거절하다니 미쳤다고 했어요. 그렇게 긴 연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요.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어떻게 값으로 매기겠어요?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전 즉시 이스라엘 외교부로부터 보안 관련 채용 제안을 받았어요. 여러 공동체를 방문해보고 아리 소르코람이 목회하고 있던 텔아비브의 히브리어 공동체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꼈죠. 내키지 않았지만 저는 주님께서 제가 당신을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다른 공동체로 부르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공동체에 몇 번을 방문했더니 목사님이 저에게 청소년 담당 목사가 얼마 전 떠나서 파트타임 자리가 있는데, 최저시급(당시 4.5달러)을 줄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적은 급여를 받다니 모욕감을 느끼는 동시에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주님께 내어드린 양털과 같은 것이었죠. 저는 전화기 옆에 앉아서, 두 군데에서 확실히 채용 제안이 들어왔는데 먼저 전화가 오는 쪽을 선택하겠다고 기도했어요.

거의 즉각적으로 목사님께 전화가 왔어요. 목사직을 받아들였죠. 다행히 저금해 놓은 게 있어서 괜찮았어요.

일을 시작했을 때, 저희 공동체의 청소년들은 영적인 이야기라면 전혀 관심이 없었고, 사실 열 명도 안 되는 아이들과 매주 모이는 게 무슨 재미가 있었겠어요? 저는 저희 공동체와 아리의 공동체의 청소년들이 함께 모이면 서로 얻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버려진 지 얼마 안 되는 지하 공간을 차지하여, 텔아비브의 모든 믿는 청소년들을 그 중립적인 장소로 오라고 했어요. 빠듯한 예산으로 그곳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만한 놀이터로 만들려니 힘이 들긴 했지만, 해냈어요.

장소가 준비되었을 때 저희는 첫 번째 모임을 발표했어요. 처음 걸어들어온 사람은 아리 공동체의 청소년 리더였죠. 그 아이 이름은 수지인데, 도와주려고 일찍 온 것이었어요. 저는 인생 가운데 굉장히 집중된 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그 친구에게 제가 개인적으로 시간을 낼 수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 전혀 오해하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잘라 말했어요. 수지는 반대로 제가 아주 속물 같은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바랐던 대로 텔아비브의 믿는 청소년들은 이런 일들을 함께하는 것을 좋아했고, 우리는 여러 공동체의 청소년 리더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관계를 강화했어요. 그런 시간들 가운데 저희 여럿은 커피샵에서 함께 했고, 한 번은 다른 모든 아이들이 계획이 있다면서 다 일어났고 저만 수지와 남게 됐어요. 제가 굳이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댈 게 없어서 남아있었죠. 우리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니, 수지가 이야기를 했고 저는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앉아있었죠.

다음 날 저는 한 친구에게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모두가 저를 먼저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친구는 대답했죠. “너를 계속 사로잡아서 한 마디도 못하게 할 수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면, 그 사람이랑 결혼해야지!” 다음 번에 그 친구는 생일 파티에서 우리 둘이 함께 이야기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저희에게 장래 가족 앨범을 위해 기념품으로 줬어요. 그때 저는 이 만남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녀와 함께 할 미래에 대해 기도하는 데에 시간을 써야겠다고 결단했죠. 저는 수주 동안 이것에 대해 기도하며 지낼 줄 알았는데, 불과 몇 시간만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응답을 분명히 받게 됐어요.

결혼을 하고서 수지와 저는 계속 저희 공동체에서 섬겼어요. 저는 집사가 되었고, 그 다음엔 부목사가 되었죠. 또 우리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저희 집으로 초대해 아이들이 연간 다양한 청소년, 청년 캠프를 이끌어갈 수 있게 도왔어요. 군복무 때문에 이스라엘의 청소년 사역은 아주 독특합니다. 입대 전, 복무 중, 제대 후 젊은이들에겐 아주 폭넓도록 다양한 영적 필요와 일정들이 있어요. 그 때문에 활동들이 모두 맞춤이 되어야 하죠.

슈무엘, 수지, 그리고 자녀들

가장 필요가 큰 곳

“14년 동안 섬긴 저희는 텔아비브의 분주한 생활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15분 정도 외곽으로 떨어져 있는 조용한 믿음의 공동체로 이사할 기회를 얻었어요. 이 때에 이르러 저희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으니 이제 때가 된 것 같았죠. 저희는 이사를 했을 뿐 아니라 가족 관계를 강화하고 다음 단계를 위한 주님의 뜻을 구하고자 안식년을 갖기로 했어요. 저는 사방에서 채용 제안을 받았지만, 어떤 것도 주님께로부터 오는 확실한 응답이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이동을 많이 하고 싶지 않았죠. 가족들 곁에서 지내며 제 시간을 젊은이들에게 쏟고 싶었어요.

어느 날 저는 앞마당에 앉아 주님의 뜻을 구하는 가운데, “가장 필요가 큰 곳”에 저를 꽂아주시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한 사람이 렠흐 렠하 티셔츠를 입고 걸어가는 거에요. 렠흐 렠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버지의 집을 떠나 당신께서 보여주실 곳으로 가라고 하실 때 사용하신 표현이거든요. 또한 제대 후 이스라엘 청년들을 위해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제자훈련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하고요(유대인과 아랍인 모두).

그는 제게 뭘 하고 지내는지 물었고, 저는 안식년 중이라고 했죠. 그는 자신이 17년간 렠흐 렠하를 이끌어 왔고, 이제 곧 안식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어요. 자신의 자리를 잘 인수할 수 있도록 후임자를 떠나기 전에 훈련하고 싶으니 기도해보지 않겠냐고 물었죠.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저는 바로 주님의 응답을 들었어요.

렠흐 렠하는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첫째 달에 우리는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주님의 마음과 주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둬요. 둘째 달에는 전국에서 강사와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성경과 기본적 신학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배워요. 강의들은 단순히 영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 관리, 재정 관리, 자신의 장단점 식별과 계발 등 실질적인 주제도 다뤄요. 셋째 달에는 ‘배운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시간으로 자신의 영적 은사를 연습하고 키워갈 기회를 제공하여, 지역 사역체에서 봉사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제자훈련 프로그램 전체는 저희가 아브라함처럼 이 땅을 종과 횡으로 다니면서 진행돼요. 일부 참가자들은 감정적, 심지어 정신적 질병으로부터 치유되었다면서 다른 이들의 치유를 돕는 날을 고대한다고 고백해요. 또 처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신의 신앙에만 근거했고 자라면서 생긴 연관 관계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걸 얘기해요. 그들의 간증은 참가자마다 모두 다르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은 모두를 파송하는데 수료자 모두가 이스라엘 땅과 각자의 부르심에 깊이 뿌리를 내려 열방에, 그리고 자기 민족 이스라엘에 빛이 될 것을 확신하게 돼요.”


샬롬,

저 샤니는 평생 정통파 유대인들을 알아 왔습니다. 이들은 보통 믿는 유대인인 저희들에게 관심이 없지만, 때로 부모님은 예슈아의 유대성과 그에 따른 이야기들을 가지고 간단한 대화를 시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정통파 유대인 여자 아이와 가깝고 개인적인 관계를 갖게 됐을 때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그 아이는 초정통파 공동체에 소속되어 아주 엄격하게 자랐는데, 가족끼리라도 성별이 다르면 일정 연령 이후에 한 방에 있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아이는 저에게 자기 또래의 청소년이 반항을 한다고 저지르는 금지된 행동이 돼지고기를 먹거나 쇼윈도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그 아이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쇼윈도를 구경했는데, 그 모습이 학교 팀에 의해 사진에 담겼고 다음 날 교장 선생님이 아이를 나무랐던 것입니다.

어느 날 마음이 상해 침대에 누웠는데, 아이는 이런 음성을 실제로 듣게 됐습니다. “가서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찾아라.” 그게 뭔지 전혀 모른 아이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라면, 그게 누구인지 일주일 안에 알려주시라고 아니면 마음대로 상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일주일 후, 아이는 가족이 구독하는 초정통파 신문을 읽다가 사역 센터의 특정 주소를 기재하며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한 경고를 실은 기사를 보았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그곳에 가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가족들은 그녀가 저지른 일을 알게 되자 엄청나게 팼습니다. 너무나 심하게 얻어 맞아 완전히 청력을 상실할 정도가 됐습니다.

바로 이 기간 중에 제가 이 아이를 알게 된 겁니다. 진심어린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년 동안 정통파 세계에서 학습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구시고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계신지에 대해 배워온 많은 것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아이가 미국의 신학교에 들어가 제자 훈련을 받게 됐을 때, 코비와 저도 미국에 있었습니다. 아이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미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했고, 아이를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성장한 종교적 배경을 도무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여러 단계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는데, 신학적, 감정적, 그리고 관계적인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생활 동안 아이의 위치가 정통파 유대인들에게 발각되어 정통 유대교 공동체로 강압적으로 끌려갔고, 마음을 바꾸기도 전에 강제 결혼을 당했습니다. 저희는 그 친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따금씩 저는 그 친구가 얼마나 불행하고 덫에 걸린 듯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이야기해주는 메시지를 받는데, 연락을 해보면 다시 닿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부분적으로는, 이스라엘에서 집중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그렇게 열을 내는 것입니다. 아주 세속적인 배경 또는 깊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이스라엘인들 모두 예슈아를 따르기로 결단을 했을 때 거기에 따르는 많은 가족적 역학이 있고 학습된 내용을 제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이 개인적인 어려움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볼 때, 저는 그 아이에게 익숙한 땅, 익숙한 언어적 환경 속에서 렠흐 렠하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렠흐 렠하 프로그램에는 매년 사이클마다 수십 명의 참가자로 진행되는 여러 개의 사이클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번 사이클에는 25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어떻게 된 건지 현재의 어려운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젊은이들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주님과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갈망으로 이끈 것 같습니다.

저희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누구도 렠흐 렠하 프로그램에서 거절하고 싶지 않고, 이 조건은 여러분이 바꿔주실 수 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다음 훈련과 강의 세션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2만 달러를 모금하는 것입니다.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지도자는 제자로부터 시작되며, 오늘 여러분과 저희가 함께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도자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아리&쉬라 소르코람 & 코비&샤니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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