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 사진의 이스라엘 경찰은 조사와 무관 사진 제공: 드림스타임, 호세 마리아 에르난데스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4월, 2020

이스라엘의 핍박을 이해하려면

“또 우편이 왔다고?” 차에 타서 가득 쌓인 봉투들을 치우면서 말했다. 때는 1992년이었고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이라는 개념은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이 들어본 가장 이상한 것 중 하나였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지만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우편을 받기 위한 특별 우편함을 설치했다. 우리는 그들이 처음 갖는 불안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대화 나눌 수 있는 신자와 연결해주는 일을 했다. 물론 도착한 모든 우편이 관심자에게서 온 것은 아니었다.


Shani Fergu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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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편이 왔다고?” 차에 타서 가득 쌓인 봉투들을 치우면서 말했다. 때는 1992년이었고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이라는 개념은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이 들어본 가장 이상한 것 중 하나였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지만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우편을 받기 위한 특별 우편함을 설치했다. 우리는 그들이 처음 갖는 불안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대화 나눌 수 있는 신자와 연결해주는 일을 했다. 물론 도착한 모든 우편이 관심자에게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죠. 한 우편물은 우리가 전도하며 나눠준 책자의 페이지들로 가득했다. 발송자는 우편을 보내기 전에 그 종이들을 화장지로 쓰고 보낸 것이었다.” 나는 우편물 더미를 뒤적이다가 또 다른 소포를 찾았다. 무엇이 들었는지 보려고 조심스레 열어보는데, 위에서부터 고운 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재였다. 그들은 책을 불태워 되돌려 보낸 것이었다.

난 너무 어려서 이 비밀 우편함 덕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된 열매가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믿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끝없는 적대감을 표했던 것은 기억난다.

나는 우리가 누군지 알고 나서는 입에서 불을 뿜으려 하던 정통 유대교인들이 기억난다. 정부가 유대인 랍비 예슈아를 믿는 것은 모든 유대적인 것에 대한 배신이라고 정의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기억난다. 세속 유대인들이 마치 우리가 외계인을 믿는 사람들인 것처럼 쳐다보던 것도 기억난다. 그들은 꼭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우리는 그들에게 이상한 존재였다.

또 여름에 미국에 갔던 것들을 기억한다. 거기서는 기독교인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큰 미소를 머금고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즐겨했다. 그들은 모두를 사랑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무시했다. 나는 교회 건물과 학교에 다니면서 벽마다 크게 붙어있는 10/40창 지도를 본 기억이 난다. 그 “창” 안에 있는 모든 나라는 인구, 경제 상황, 종교 현황 등의 통계로 밝게 색칠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을 뺀 모든 나라 말이다. 이스라엘은 마치 존재도 안 하는 것처럼 회색이었다.

청소년이었던 나는 이것을 신학적으로 다 이해하지 못했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수 세기 동안 기독교 신학에 속하지 않았으며, 세계 무대에 갑작스레 나타난 이스라엘이 많은 신학자들을 허둥지둥하게 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어쩔 줄 모르게 했다는 사실 말이다.

몇몇 신학자들이 여기에 이목이 끌리게 하려고 시도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든지, 이스라엘은 휴거 후에 구원 받는다든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부했기에 더 이상 구원을 받지 못한다든지. 마지막 경우가 사실 가장 오래된 이론으로, 초대 유대인 사도들이 죽고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보다 많아지면서 기독교인들은 바로 여기에 합의한 듯하다. 또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대량으로 “하나님을 죽인” 민족 집단을 없애는 일에 있어 하나님을 “돕도록” 설득하는 데에 쓰인 이론이었다. “없앤다”는 것은 죽이거나 그들의 악독한 유대 유산을 부인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도록 강요한다는 의미였다.

전반적으로 볼 때, 현대 기독교인들은 적대적이지 않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모두 개종해야 한다는 오래된 사상을 지니고 있다. 그래도 오늘날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지지로 이스라엘 정부를 어리둥절하게까지 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만으로 관광, 기도, 정치적 지지와 수십억 달러의 돈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지지는 유대인들의 가슴 속에 있던 과거의 상처를 상당히 치유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의 이스라엘 지지는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지지하는 건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다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로마서 15장에서 바울 사도가 기독교인들의 이스라엘 지지가 마땅한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맞다. 이스라엘이 세상에 제공한 영적 축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스라엘 전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신자들은 예루살렘 신자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보를 기꺼이 걷었다. 그들은 정말로 빚진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의 신자들로부터 복음이라는 영적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최소한 그들에게 재정적으로 갚는 일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롬 15:26~27)

바울 당시 기독교인들이 새 옷과 새로운 회당 건축을 위해 헌금을 걷어 바리새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어린 유대인 학생들이 사두개식 교육을 받도록 자금을 대는 것은 어떤가? 그런데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다윗의 별만 있으면 후원을 하는 것이다.

세속 이스라엘 정부보다 랍비들의 지시 사항을 훨씬 가치있게 여기는 정통 유대교인들은 흔히 법률 적용에 정면으로 맞선다. Reuters/Darren Whiteside

그 교묘함

종종 이스라엘의 핍박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그러면 나는 어깨를 으쓱할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끝없는 로켓 발포와 버스 폭파 위협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싫어하는 폭력적인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하지만 멈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핍박에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종교 핍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곪도록 놔두면 상태는 더 악화되기 쉬운 것이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이스라엘 유대인 신자들에 대한 핍박이 대부분 상당히 교묘하고 내밀한 활동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메시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베진 않는다. 그런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무리들이 단순히 이스라엘 신자들의 믿는 바 때문에 우리를 대적한다고 해서 보호를 위해 별다른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정부는 신자들이 특정 직업을 갖지 못하도록 금지시키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한 문화적 두려움만으로도 일부 고용주들이 신자들을 채용하는 일을 단념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차별 금지에 대한 법률이 있음에도 말이다. 정부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장소를 임대하여 함께 예배할 권리를 금지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기업 소유주들이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장소를 임대해주었을 때 정통 유대인들이 보이콧할 것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상당한 숫자의 관광객도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컨퍼런스나 여름 캠프를 열기 위해 난데없는 장소를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아예 행사를 갖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통 유대교 활동가들이 성도들의 출입을 위협하기 위해 차를 둘러싸고 모임 장소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성도들은 경찰이 지금껏 이들을 흩어놓기 위해 도움 요청을 무시했다고 말한다. Photo courtesy: Beth Hallel congregation

들어본 적 없는 일

여러분은 아마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기쁘고 영적 감동이 있는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여기 와서 돈을 쓰고 돌아가는 이방 기독교인 관광객과 평생 예슈아를 따르는 유대인이라고 하며 사는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 큰 차이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민주국가이며 종교의 자유가 당연히 주어진 곳이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해본 사람이면 누구든 알지만, 법률은 그것을 시행할 작정을 한 사람이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종교로 인한 차별적 행위의 가장 잘 알려진 케이스 중 하나는 프니나와 가족들이 소유한 코셔 베이커리 프니나 파이다. 이 가족은 예슈아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종교 활동가들의 표적이 되었다. 기독교인이나 아랍 무슬림들이 코셔 음식을 판매할 수 없다고 하는 법은 없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들을 구체적으로 노린 공격이었다. 베이커리 소유주가 신자들임을 알게 되어 격노한 활동가들은 영혼에 멸망을 가져오는 선교사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맛있는 크로아상을 먹으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닥쳐오는지 경고하는 팜플렛을 들고 베이커리 앞에 서있었다.

그러한 활동이 일부 고객들만을 부정적으로 설득하자, 한 활동가는 달려들어 벽에 걸려있던 프니나의 코셔 인증서를 찢어버렸다. 일부 이스라엘 동네에서는 코셔 허가가 없는 것이 사형 선고와 같다. 초정통파 유대인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많은 유대인들은 그런 사업체를 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들의 충성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양심상 프니나의 “비코셔” 패스트리를 사다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정통파 관계자들이 유대인 신자들의 사업체를 공격하는 이러한 태도를 허용할 경우, 이것이 전국의 신자들에게 가져온 파장을 알고 있기에, 마오즈 동역자들은 총체적인 법정 공방을 펼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했고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대법원은 프니나 파이가 소유주의 신앙과 상관 없이 코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여기서 종결됐다면 모든 수고가 무의미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랍비 당국은 대법원이 자신들의 종교적으로 내린 결정에 대한 관할권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랍비 당국이 묵인할 수 있도록 법원이 벌금을 물릴 때까지는 여러 차례의 공격이 더 필요했다. 현재 프니나 파이는 두 지점에서 운영되며 많은 고객들은 그 음식에 만족하고 있다. 프니나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 메시아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그녀의 편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유대인 신자들은 전반적으로 어려울 때에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편이 되어줄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

드문 경우지만,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한 부당하고 심지어 불법적인 핍박이 이스라엘 언론에서 인정되는 때가 있다. 그런 기사 중 하나는 4천 단어 분량으로 메시아닉 유대인들과 맹렬히 싸우는 반종교 자유 단체를 폭로하는 내용이었는데, 2009년 10월 3일에 발표된 이 <하아레츠> 신문 기사였다.

정부가 아니라 정부에 누가 있느냐의 문제

이스라엘 정부에는 많은 부처가 있고, 그중 일부는 초정통파 활동가들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년 동안 유대인 신자들이 시민권 받는 것을 당국은 굉장히 어렵게 만들어 왔다. 정부가 이민을 하고자 하는 믿는 유대인들의 개인적 삶에 대해 어떻게 알아내는지에 대해선 항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소문에 따르면 정부 내의 사람들이 야들레앜힘이라고 하는 단체에서 주로 보내는 “탐정들”에 의존한다고 한다. 이들은 유대인들이 예슈아를 믿는지를 확실히 보려고 염탐하는 사람들이다.

정부가 민간인, 스스로 지명한 염탐꾼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여 행동한다는 것만 해도 나쁘다. 그런데 초정통파 내부의 사람들이 내무부를 조종하며 정보를 공유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증명할 방법은 없다. 정부 건물에 몰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데없이 우리 그리고 전국 신자들의 집주소로 우리의 종교적 믿음에 오류가 있으니 “참된” 유대교로 개종할 것을 독려하는 적대적 글들이 담긴 “전도용” 잡지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 잡지들은 우리의 법정 성명을 모두 기록하여 발송되었는데, 우리는 정부 관련 서류가 아니면 이 이름들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부로부터 신앙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전혀 없음에도, 정부의 누군가가 우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이 비정부기구로 하여금 집주소 등 우리의 개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같다.

수년전 우리 어머니의 집주소를 알아냈을 때 초정통파 폭도들은 집밖에서 최루탄을 던져 복도가 불길에 휩싸이게 하고 어머니를 3층짜리 아파트에서 못 나오게 가둬두었던 적이 있다. 다행히도 소방대에서 와서 불은 끌 수 있었다.

부모님이 결혼하고 텔아비브 근교에서 사신 지 수년 후 부모님의 차 밑에 차량용 폭탄이 설치되었다. 감사하게도 수상하게 보이는 물건을 발견하고 폭발물 처리반에 연락해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범죄에 대한 반성이 없는 야아콥 테이텔은 장기간의 조사와 법정 공방 끝에 아미 오르티즈에 대한 살인 미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Apimages/Dan Balilty

이런 식으로 메시아닉 유대인이 표적이 되었던 가장 잘 알려진 공격(그 잔혹성 때문에)은 이스라엘 목회자의 아들인 아미 오르티즈다. 그는 부림절 선물 꾸러미로 포장된 폭탄이 아빠 이름으로 현관에 배달되어 온 걸 열다가 부상을 당한 피해자다. 아미는 당시 15세였는데 2년 넘도록 14번의 수술을 통해 심히 화상 입은 몸을 다시 회복해야 했다. CCTV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법적 압박이 셌기 때문에 이 사건은 범인이 제대로 심판을 받은 몇 안 되는 경우였다. 그는 종신형을 받았다. 이 공격 같은 경우에는 외로운 늑대 형의 유대교인의 소행으로 밝혀졌지만, 분명 그 일이 있기까지 목회자 오르티즈를 표적으로 해온 시위들로 인하여 시발된 공격이었다. 

이보다 덜 알려졌지만 훨씬 거슬리는 상황이 수년 전에 한 믿음의 가정에게 일어났다. 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가 교장실에 불려가 가족의 종교 활동에 대한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심문을 당했던 것이다. 아이는 그 대화를 비밀로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숨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 앞에 세워둔 가족의 승합차가 폭발하게 되면서 알려지게 된다.

감사하게도 이스라엘 정부에는 원칙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부당한 일이 일어날 때, 메시아닉 유대인은 필요하다면 대법원까지 항소를 해나갈 수 있다. 대법원은 개인의 의견과 상관 없이 법을 시행해온 아주 좋은 역사가 있다. 안타깝게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압박하고 상당한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법원까지 가보는 건 꿈꿀 수가 없다. 이스라엘의 적은 신자들 무리는 이 숫자를 채우지 못한다. 이들이 입장을 명확히 하려고 시도하면, 많은 경우 스스로 표적이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이스라엘 신자들의 편이 되어줄 것인가이다.

이스라엘이 외교적 비난과 제재라는 포화를 끝없이 맞고 있을 때, 이스라엘은 복음주의자들이 어쩌면 세계 최강의 동맹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학살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지켜내기 위해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앉혀졌던 에스더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바로 이 때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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