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1939년 발행 불어 사전엔 “팔레스타인”이 분명 유대인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되어 있다. Alamy Stock Photo
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March 2020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의 강탈 및 도용

이스라엘의 재탄생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까지 어느 공식 문서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데에 쓰였다.


Shani Fergu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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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혼돈이 잦은데 대부분 그 이유는 그 고대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가 아주 상이하기 때문이다. 고대에 로마가 광활한 영토를 통치했을 때, 그들이 정복한 유대 지역은 언제나 실망의 근원이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로마의 이교적 행위들과 가이사가 신이라는 주장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종교적 열심 가득한 자들의 난투와 봉기에 질린 로마는 마침내 예루살렘을 으스러뜨리고 그 안의 유대 주민들을 거의 다 추방시켰다. 그들이 카이사르에게 일으킨 그 끝없는 문제들에 대한 종지부로 로마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그들의 악명 높은 대원수 블레셋을 따서 “팔레스타인”으로 바꿨다. 블레셋은 이미 수백 년 앞서 멸종되었(고 그들은 아랍 인종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이 용어는 따지고 보면 어떤 민족에게도 이 땅을 할당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모욕감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겨난 주후 70년으로부터 그 후손들이 돌아와 독립을 선언한 1948년까지 박혀 있었다. 그 지역엔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주권 국가가 세워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재탄생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까지 어느 공식 문서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데에 쓰였다. 20세기 초에 나온 사전들에도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 아래 유대적으로 보이는 깃발을 단호하게 썼다.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유대인이라 부르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 이름이 그 역사적 지칭 외에는 다른 연결 관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73명으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오케스트라는 전원이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이 발행하는 현지 신문도 <팔레스타인 포스트>라고 불렸다. 1950년, 이 신문은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이름인 <제루살렘 포스트>로 개칭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국가가 되고 난 뒤 그 용어를 “이스라엘”로 대체했다.

소위 신의 한수로 망연자실한 아랍인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이던 그 용어를 낚아채 한 민족 집단을 묘사하는 말로 재정의했다. 스스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브랜딩을 함으로써 아랍인들에겐 성지 탈환 전쟁에서 두 가지 주된 이점을 갖게 됐다. 먼저는 그 땅이 (사실과는 반대인) 자신들의 이름을 딴 것인 양 장소와 자동적으로 역사적 연계성을 갖게 됐다. 둘째, 그들은 중동 전역에 있는 다양한 아랍 부족들임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훨씬 소규모의 약자들인 양 홍보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1960년대에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팔레스타인 민족의 “오래된” 이야기가 탄생하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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