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오즈 이스라엘 보고서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의 이야기들

일부 인물들은 이름과 얼굴을 감추어 박해를 당하지 않도록 했지만, 올해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의 존귀한 후원자들을 통해 도움을 받은 몇몇 사람들의 실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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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이 설립되고 얼마 후, 어떤 남성이 이스라엘의 한 과부를 후원하고 싶다며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는 야고보서 말씀을 읽은 사람이었다. 욥에서 이사야, 디모데서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이러한 취약 계층을 돌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말씀들은 아주 명료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의 과부를 돌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두 명의 후보자를 찾아주었다. 그는 두 명 다 후원하기로 했다.

수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구체적으로 지정된 후원금을 때때로 받았다. 그런데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이 탄생했을 때, 갑자기 이스라엘의 어려운 이들에게 전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매달 수천 달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믿는 유대인들이 신앙 때문에 낙인 찍혀서 이스라엘내 자선 단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었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은 강력한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을 알았기에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은 그때부터 수백 명의 어려운 이스라엘 가정과 개인들에게 7백만 달러가 넘는 액수를 전달해주었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 무엇이 다른가?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의 차별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이스라엘에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할 점은 그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누가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알아내기 위해 스스로의 어려움을 알릴 방도가 없다.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에 살며 일해온 우리는 전국의 공동체와 신자들과 개인적 관계가 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낼 수 있다!

둘째는 단지 고치는 것이 아닌 세우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안 좋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스스로 좋은 상황을 향해 갈 수 있도록 후원하고 싶다. 우리가 비극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부터 닥쳐온 재정적 구멍을 메우는 일을 도와줄 수 있지만, 또 사람들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탁월하게 나아갈 수 있는 사다리를 지어준다면 어떨까? 이것이 처음부터 우리의 원칙적 지침이었다!

일부 인물들은 이름과 얼굴을 감추어 박해를 당하지 않도록 했지만, 올해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의 존귀한 후원자들을 통해 도움을 받은 몇몇 사람들의 실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 – 외로운 군인들을 위한 프로젝트

이스라엘에서 부모로서 믿는 자녀를 키울 때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튼튼한 뼈대를 심어주는 데에 18년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후에는 군대에서 존재의 핵심까지 무너뜨려 군인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이 외로운 군인들에겐 자신들을 위해 기증된 장소에, 이스라엘의 수호자들을 기다리며 사랑해주고 돌봐주며, 양육할 헌신된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내가 만나본 가장 믿음이 견고한 사람이 자신이 군대에 있었을 때 “내 목표는 제대를 하는 시점까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군대에서 그가 성취할 수 있는 전부라고 느낀 것은 스스로 진리라고 믿는 것을 붙드는 것이었다. 탈출구 없는 매일 가운데 18~20세의 안 믿는 동료들의 압박과 유혹을 견디면서 말이다. 이러한 고투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독감을 만들어준다.

하나님의 도를 따르고자 갈망하는 군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소속감과 영적, 육적 안식처다. 그 장소는 보통 군인들이 주말에 찾아가는, 가족들이 있는 집이다. 하지만 “외로운 군인들”은 이스라엘에 찾아갈 수 있는 집도 가족도 없다. 이스라엘 CBN의 댄 칼슨과 협력하여,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은 외로운 군인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준비하도록 도왔다. 이 장소는 단순한 기숙사나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가 있는 곳이 아니다. 이 외로운 군인들에겐 자신들을 위해 기증된 장소에, 이스라엘의 수호자들을 기다리며 사랑해주고 돌봐주며, 양육할 헌신된 사람들이 있다.

두 번째 이야기 – 사라

작업치료사는 다양한 장애나 제한(질병 혹은 수감)이 있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창의적 방법으로 도와주는 직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리듬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혹은 취미를 선택하는 데에 도움을 주면 좋아할 수 있지만 아예 작업치료사의 도움이 있어야만 정신적, 신체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제가 이 편지를 쓰는 건 제게 주신 장학금을 통해 여러분이 보여주신 너그러운 마음에 대해 얼마나 깊이 감사하는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은 제 삶의 어려움을 경감시켜줬을 뿐 아니라 제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가기 위해 준비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도와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땅의 믿는 이들 가운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기에, 많은 다른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축복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본인의 건강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라는 직접 작업치료사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 때문에 풀타임으로 학업을 할 수가 없고, 그처럼 복합적인 공부를 위한 학비를 벌도록 일을 하는 것도 육체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은 그녀가 하이파의 한 대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을 허가했다. 그녀는 4년만에 우등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교는 그녀의 열정과 능력에 너무나 감명을 입고, 석사를 건너뛰고 박사 학위로 바로 가도록 허락했다. 작업치료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이런 제안이 있었던 것은 최초였다! 우리는 주어진 장학금에 대해 철저한 청지기 의식을 가진 그녀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예슈아 안에서 탁월한 삶을 교수와 동료들에게 보임으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려서 기쁘다.

세 번째 이야기 – 리틀 하츠 유치원

히브리어로는 인생의 첫 5년을 “부드러운 연령”이라고 부른다. 이 연령대의 아이들이 너무나 영향을 잘 받기 때문이다. 인생의 이 시기에는 별일 아닌 것 같은 한 번의 만남이 인생 전체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한 번의 만남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1년간 만나는 것들이 얼마나 막대할지 생각해 보라. 이 때문에 운동가들은 이 연령대를 먹이 삼아 자신들의 가치를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0~5세에게 영적, 감정적 안전처를 제공하는 것이 그토록 중대한 것이다. 이 때문에 리틀 하츠가 존재한다.

“저희 유치원을 신뢰하고 저희가 하는 일에 참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 공동체의 아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일을 계속하지 못했을 거에요!”

리틀 하츠는 예루살렘 유일의 믿는 유치원이며, 이스라엘 전체에서도 믿는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예루살렘에 살지도 않는 학부모들이 예루살렘 시내의 엄청난 교통체증을 하루에 두 번씩 뚫고 아이들에게 이 기회를 제공해주려 한다.

그러나 이 작은 피난처의 아름다움은 아이들에게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리틀 하츠의 교사인 나딘은 무슬림 가정 출신이다. 이슬람을 버리고 예슈아를 따르기로 용단을 내렸을 때 나딘의 가족들은 그녀와 의절했다. 아랍 문화에서 가족과 의절을 하면,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로서 그렇게 되면 인생 가운데 결혼을 하는 것 외엔 다른 대안이 사실상 없다. 그리고 신용을 보장해 줄 가족이 없이는 결혼도 상당히 어렵다.

올해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의 후원자들 덕분에, 리틀 하츠는 수십 명의 어린이들을 학부모들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돌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나딘에게 풀타임 일자리를 제공했고 하나님께 함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유대인과 아랍인으로 구성된 가정도 선사해주었다.

Credit: Roma Black/Shutterstock

네 번째 이야기 – 줄리아

줄리아는 5년 전에 남편 다비드와 함께 알리야했다. 첫 몇 년 동안은 보통 그렇듯이 히브리어를 배우고 일자리를 찾는 데에 썼다. 하지만 줄리아는 곧 최저임금을 받는 직장을 너머 사진 커뮤니케이션 학위를 따려 했다. 줄리아의 학업 프로그램은 강도가 세서, 예루살렘의 하다사 아카데믹 칼리지에서 학업을 풀타임 직장과 병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비드가 하는 일로 기본적인 생활비를 감당했다.

“저희가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해준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에 감사 드립니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메시아닉 신자들을 돕기 위해 후원을 해주신 전 세계의 믿는 분들은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신 거에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지원해주시는 거죠. 다른 갈 곳이 없는 저희들을요.”

줄리아와 다비드는 러시아에서 항상 열심히 일했고 자급자족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생활비는 러시아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나라에서, 가족들의 도움도 전혀 받지 못한 채 앞으로 생활의 터전을 위한 기초를 놓아야 했다.

줄리아는 4년간의 학업을 거의 다 끝냈었다. 미래는 밝았고 그래서 그냥 생존하는 게 아니라 곧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학위 과정을 수료하려면, 졸업 프로젝트를 위해 값비싼 사진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자신의 직업을 위해 이 장비가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장비를 무턱대고 구매하는 것은 그녀에게 족쇄로 다가왔다.

기쁜 소식은, 다비드와 줄리아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부르셨다는 것 때문에 가족들과 가까이 사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영적 형제자매들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됐다. 줄리아는 모든 필요한 장비를 살 수 있게 됐고, 학업을 마쳤으며 이미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 – 베스볼로드

이스라엘로 이민 왔을 때 우리 아이들은 어렸고, 가족으로서 우리는 이스라엘 생활의 모든 측면을 금세 받아들였다. 우리는 사회 깊이 들어가면, 한 세대 만에 우리 가족이 이스라엘 생활을 전부로 알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자리를 구했지만, 우리처럼 예슈아를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 특히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제가 이 꿈을 잊지 않고 당신의 선하심을 신뢰하도록 배우게 하신 것을 깨닫습니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을 통해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은 많은 신자들이 저와 같은 고백을 할 것으로 봅니다.

저희 온 가족을 대표해서 이 어려운 때에 저희를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주님께서 제 꿈을 이뤄주신 여러분께 모든 축복을 허락해주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100배로 갚아주시길 원합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성경을 펼쳤는데, 숫자가 써있는 작은 쪽지가 떨어져 나왔다. 나는 우리가 키예프에 갔을 때 그 쪽지를 준 남자가 떠올랐다. 우리가 이스라엘로 이민 간다고 했더니 그는 우리에게 그 쪽지를 줬다. 나는 그 번호에 전화를 걸었고 우연히도 우리 동네에 사는 믿음의 가정과 연락이 됐다! 그들은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했고, 우리가 1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적 집이라고 여기는 공동체를 찾도록 도와줬다.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고토 이스라엘을 제대로 만지고 느끼고 보고 싶었다. 우리는 현대적인 곳과 고대 유적 모두를 살피며 전국을 여행했다. 보는 것들이 너무 좋았고, 각 장소에 대해 더 배우고 싶었다. 이 땅에 흔적을 남긴 문명들에 매료되었고, 우리가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되리라고 한 예언의 성취를 살아가고 있음에 경외감이 들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방문했을 때, 나는 내가 이 아름다운 나라에 대해 배우게 된 모든 것들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들은 모두 이 땅에 대한 내 사랑이 전염성이 있다고, 투어 가이드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소련에 살 때 아내와 나는 아주 간단한 직업에 대한 훈련만 받아서 상당히 기본적인 공장 기계 노동자 이상으로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것은 꿈도 못 꿔봤다.

수년이 지나면서 나는 매번 친구들이 방문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매번 나는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거라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투어 가이드가 되려면 일반적인 히브리어 실력으로는 안 된다. 내 상사는 시간을 빼주지 않을 것이고, 준다고 하더라도 급여를 받지 못하면 내가 공부를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 코스가 너무나 비싸다 등등.

친구들과 공동체 리더들이 시도를 해보라고 나를 격려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을 돌보아 주신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리라고 결단했다. 그들은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믿는 자들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해줬고, 그렇게 스스로 이 꿈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여겨왔던 모든 이유들은 사라졌다! 상사는 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며칠의 휴가를 줬고,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에 제출한 학비 지원서는 승인되었다!

이제 나는 학업의 첫 해를 마쳤고 히브리어 때문에 마주한 온갖 도전들을 다 극복했다. 나는 이 땅을 거쳐간 유대인과 다른 민족들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 너무나 많이 배웠다. 1년이 남았는데, 이 땅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해줄 생각을 하면 기다릴 수가 없다.

여섯 번째 이야기 – 라헬

브라질에서 성장한 어머니는 흑마술에 빠져 있었다. 내가 8살 때 사탄을 숭배하던 어머니의 친구는 내가 자신의 우상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여러 향을 혼합한 폭발물이 내 얼굴에 터지도록 만들었다. 연기가 걷혔을 때 내 머리는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은 것이 보였다. 나를 보호해주신 것이 하나님이심을 난 깨달았다. 그래서 10년 후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을 때 나는 즉시로 받아들였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저에게 중요합니다. 비싼 생활비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스라엘 생활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은 바라볼 다른 곳이 없는 이들에게 소망과 도움을 줍니다. 저는 저를 축복해주신 여러분께 하나님께서 두 배로 더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저는 과거의 어려운 재정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성경 학교에서 3년을 보냈고, 거기서 남편 요시를 만났다. 함께 우리는 다섯 자녀를 낳았고 2001년에 이스라엘로 알리야했다.

이스라엘 생활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언어는 너무나 어려워서 겨우 최저임금 일자리만 구할 수 있었다.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은 너무나 어렸고 자주 아팠다. 그러나 9살짜리 마르쿠스가 간질 진단을 받았을 때 인생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르쿠스를 돌봐야 하는 시간, 거기에 딸려온 병원비까지 더해져 압도당했다. 요시는 이것을 감당하지 못해 사라지기 시작했고, 나는 빚을 지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알지도 못한 사이에 우리는 내가 모르는 내용으로 10만 셰켈 (약 3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결혼 28년 만에 나는 요시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더이상 아빠가 집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요시는 떠났고, 나가면서도 내 통장을 훔쳐갔다. 요시는 내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썼고, 이제 아들의 병원비에 남편의 빚과 소비까지 감당해야 했다. 우리가 갈라서고 이어진 법정 소송은 너무나 비싸고 진빠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판사는 어느 정도 내 편을 들어주어 전체 빚 중에 23,000셰켈(약 7백만원)만 변제할 것을 명령했다. 그래도 나는 56세의 이민자이자 아이가 셋 있는 미혼모로, 직장도 없었다. 여생 동안 남편의 빚을 갚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절망이 되었다.

우리 공동체는 남편의 빚을 2년 동안 갚아온 나를 도우려 했다.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에 신청해준 것도 그들이었다. 나머지 빚을 청산할 액수를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에서 보내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이제 내 마음과 몸은 평안하다. 밤에 잠도 자고 소망도 가질 수 있다!

일곱번 째 이야기 – 옥사나

나는 언어 교사다.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했다. 하루는 직장에서 유대인이라면 이스라엘로 알리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스라엘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신이 났다. 나는 배를 타고 이스라엘로 왔다. 도착했을 땐 조금 비가 오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 땅에 손을 대고, 내 머리 위의 무지개와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을 올려다 보았다. 아주 감격적인 도착의 순간이었고, 난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집에 왔다는 느낌이었다.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면서 두 팔 벌려 자신의 공동체로 나를 환영해준 신자들을 만나게 됐다. 여기저기서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고맙다고 했지만, 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당시엔 아는 게 별로 없었는데, 구소련의 사람들 대부분은 예슈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에 대해 기분 나빠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신앙은 나에게 거슬릴 게 없었다.

어느 날은 사람들이 샤밧 예배에 나를 초대했다. 대단히 이상한 경험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있다는 건 이해했지만, 그것이 내 개인적 삶과 무슨 상관인지 몰랐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 심령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모든 게 변했다.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왔을 때 나는 많은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파출부 일을 했다. 결국 나는 작은 가게를 열게 됐다. 2009년, 나는 요시 오바디야 목사를 만나게 됐고 그의 공동체에 출석을 시작해 이제 10년이 됐다. 이곳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시 목사는 내게 이직을 원하냐고 물었다. 공동체에 행정직 자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공동체 식구들 절반이 새로운 이민자라서 히브리어를 못했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경건한 환경에서 일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생활도 하고 초기에 지게 된 빚을 갚을 정도의 급여를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모든 빚을 청산하게 되었을 즈음, 나는 정부 주택 추첨에 대해 듣게 됐다. 내 나이가 많아지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30년간 인구가 2배 이상 늘었기 때문에, 주택 상황이 필사적이다. 이스라엘에선 작은 아파트가 3억원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대부분이 세를 얻어 산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여 아파트 건물을 건축하는 회사들로 하여금 몇 채를 상당히 인하된 가격에 팔도록 요구한다. 신청서를 받고 추첨을 진행한다. 당첨자들은 계약금을 내고, 서류를 제출할 시간을 어느 정도 부여 받는다. 실패하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간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집을 살 기회를 얻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주택담보대출은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계약금은 손에 없었고 날 속이지 않고 서류를 도와줄 좋은 변호사도 몰랐다. 그래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돈과 변호사 모두를 구해준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제 나는 고토에 집을 가진 사람이 됐다!

여덟번 째 이야기 – 리브카

우리 가족은 내가 10대였을 때 브라질에서 이민 왔다. 나는 군복무를 하고 직후에 내 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함께 우리는 아들을 낳고서 네타냐의 이스라엘 성경 대학에서 일한다. 나는 행정 업무에 꿈이 있는데, 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더 배워야 할 게 많음을 알았다. 나는 집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씩 공부할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 아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걸음마를 하는 아이라서 내가 돌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학비를 내기 위해 나는 투잡을 뛰어야 했다. 코스 학비를 지원해준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에 너무나 감사 드린다. 덕분에 나는 일도 아주 잘 하면서 가정에서도 할 일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Credit: RnDmS / Shutterstock

아홉번 째 이야기 – 에티오피아 공동체

H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의 목회자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이민온 유대인들 가운데, 에티오피아계는 현대 이스라엘 문화에 가장 적응을 어려워하고 있다. 이러한 단절은 의도적인 게 아니다. 이스라엘은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오길 원했다. 하지만 수천 명의 사람들을 제3세계 국가에서 현대 문화로 하룻밤만에 옮겨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의 어떤 나라도 수천 년 전에 쫓겨났던 민족집단의 일원을 회복시키는 이토록 광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가장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핸드북도 없다.

“저희 공동체는 가정의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정 폭력 문제가 있고 판자촌 같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들이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홀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승합차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저희를 이렇게 실질적으로 도와주신 여러분을 여호와께서 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내에서 에티오피아계의 이민에 반대한 유일한 집단은 초정통파 유대인들이다. 그들이 이스라엘에 오기 전에 상당한 규모로 복음에 노출되었다는 이유 뿐이었다. 하지만 이 땅의 법이 이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뒷받침해주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스스로 찾아온 대부분의 이민자들과 다르게, 이스라엘은 아프리카로 비행기를 보내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을 배로 이스라엘까지 몰래 빼돌린 이스라엘 요원들의 위장 전선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단에서 다이빙 리조트까지 운영했다.

그럼에도 에티오피아계 이민자들은 정체성을 두고 씨름한다. 장구한 사회 구조, 전통, 문화적 친밀감이 전국의 다양한 주택을 할당 받은 사람들로 인해 녹아내렸다. 적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숫자의 이스라엘인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새로 온 이들에게 아파트를 임대하거나, 이들을 채용하기를 거부한다.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것들을 이해하지 못할까 하는 우려다.

기쁜 소식은 이들이 오고 수십 년이 지나 이제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에 에티오피아계 국민들이 잘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로부터 교사, 크네셋 의원, 의사, 뷰티 퀸까지. 에티오피아계는 이스라엘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나쁜 소식은 불필요하도록 많은 숫자가 재정적, 사회적, 특히 가정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남성이 가족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 이스라엘과 같은 문화에서 많은 에티오피아계 아이들은 아버지 없이 자란다. 이것이 아직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H 목사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그의 공동체 성도 70%는 미혼모다. 어떤 정부도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선 하실 수 있다. 그래서 H 목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능력 주시기를 바란다. 그들이 하나님께 약속 받은 땅에서 번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주말 예배는 H 목사가 그들의 심령 가운데 생명을 전하고 용기를 주는 시간이다. 그런데 아직도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그가 성도들이 샤밧 예배에 나오도록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느라고 못 오는 게 아니라, 샤밧에는 대중 교통이 없어서 올 방법이 없는 것이다. 때로 영적 돌파를 가로막는 것은 실제 장애물들이다. 이래서 우리에게 “첩경을 예비하라” “돌을 제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새 승합차를 타고 샤밧 예배 가는 즐거운 모습

아이스탠드위드이스라엘의 도움으로 H 목사는 예배 참석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승합차를 구매했다. 이제 이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심지어 판자촌까지 몇 번씩 찾아다니며, 하나님께서만 유일한 길이시고 그분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이 땅에서도 그들에게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심을 아는 이들을 태운다.

이것들은 2019년에 변화된 인생 중 9가지만 고른 것입니다!

샬롬! 복된 하누카 보내세요!

올해 저희가 한 모든 일 가운데, 어려움에 있는 분들에게 “도와드리죠”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가장 기쁩니다!

저희의 결정 때문에 가족 전체의 매일의 삶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으면 겸손해지면서도 짜릿합니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선로를 옮겨 전혀 다른 길을 놓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그들의 매일의 삶-그리고 10년 후의 성취들-은 여러분이 변화시키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변화될 것입니다.

이 나눔의 계절에 여러분이 베풀 수 있는 곳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 전 세계 대부분의 잔치들은 2천년 전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일로 여러분의 삶이 변화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기에, 이 계절엔 이스라엘에 있는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돌려주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올해를 넘기기 전에 일회성 후원을 하실 수도 있고, 내년 매달 후원을 작정하실 수도 있습니다. 결정을 내리시는 그 순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은 여러분으로 말미암는, 여러분의 삶의 열매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와 그들이 여러분께 함께 감사를 전합니다.

아리&쉬라 소르코람
코비&샤니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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