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감추는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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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25년 2월 1일 |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

2024년 12월 8일이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헤즈볼라와의 새로운 휴전 협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미국이 공동 서명한 역사적인 문서에 서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휴전 조건을 위반할 경우 헤즈볼라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완전한 자유를 보장한다는 미국의 중요한 보장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주요 쟁점은 헤즈볼라가 무기 재보충, 추가적 테러리스트 밀수 등을 통해 조건을 불이행할 것인지 여부가 아니라 그 시점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시급한 질문들도 제기되고 있었다.

레바논 북쪽 국경에서 1년 넘게 대피해있던 6만 명의 이스라엘인들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일까?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가자지구나 레바논,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근로자들이 전투에 참전하여 파산한 이스라엘 북부의 많은 기업들은 어떻게 될까? 피해를 입거나 파괴된 많은 주택과 창고는 어떻게 될까?

지역사회를 재건하는 데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보도가 여기저기 떠돌았다.

바샤르 알 아싸드는 25년 동안 시리아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2024년 12월 8일 여러 시리아 민병대 반란군에 의해 타도되었다.

도미노 효과

중대한 날이었던 바로 12월 8일, 이스라엘인들이 레바논 국경을 따라 감히 평온을 꿈꾸던 날, 모든 시선이 갑자기 옆집에서 포효하는 쪽으로 향했다. 이스라엘이 동시에 싸우고 있던 7개 전선 중 하나였던 시리아가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사실 시리아는 14년 동안 계속되는 내전에 휩싸여 있었다. 2023년 8월부터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정권에 반대하는 다양한 파벌 간의 투쟁이 격화되었다. 그러나 레바논의 잔인한 헤즈볼라 전사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지도력이 박탈되어 패배를 인정한 바로 그 날, 시리아의 다양한 이슬람 신학을 가진 무장 파벌들은 용기를 내어 아사드 군대와 전면전을 벌였다.

아사드의 몰락과 반군의 급속한 진격은 중동 전체를 놀라게 했다.

이 혁명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요?

시리아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시리아 국민이 단일 민족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리아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부족과 종파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각 종파는 각자의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오스만 제국이 함락되었을 때 이 지역이 독립된 드루즈 국가까지 포함하는 프랑스 위임통치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1945년, 시리아라는 신생 독립 국가가 UN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법적으로 국가 지위를 확립하고 프랑스의 법적 권한을 종식시켰다. 또한 다양한 종파의 자치권을 종결시켰다.

시리아의 종파간 폭력은 결코 멈추지 않았고, 시리아는 안정적인 통치보다 계엄령과 쿠데타 시도에 더 익숙했다. 1970년 하페즈 알 아사드의 유혈 사태로 인해 그는 철권 독재자가 되었다. 하페즈는 사망할 때까지 통치했다. 그의 둘째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가 2000년에 그의 뒤를 이었다.

서방은 영국 태생의 시리아인과 결혼하고 런던에서 교육을 받은 바샤르가 자유, 시민 의식, 경제적 성공을 촉진하는 서구적 가치를 지닌 국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샤르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 국민에 대한 아버지의 잔인한 통치를 이어갔고, 이란 및 헤즈볼라와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에 대항했다. 그렇게 12월 8일, 그의 통치가 전복되자 도망치는 바샤르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것은 러시아였다.

바샤르는 잔인하게도 팔레스타인인을 포함해 시리아에서 5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스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타락을 의심하는 누구라도 그 끔찍한 증거는 부인할 수 없었다. 동영상에 담긴 고문당하고 훼손된 수만 명의 수감자들의 모습은 암울한 현실을 보여줬다. 지하 감옥에서 그들을 구출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수감자들 중에는 실제로 햇빛을 본 적이 없는 포로로 태어난 아이들도 있었다.

이스라엘의 샬다그 정예 공군 전투기들이 역사상 가장 위험한 원정을 떠나는 모습. 육군 공식 사진.

행동에 뛰어든 이스라엘

시리아 정권 붕괴에 대한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대응은 다양한 테러 단체들이 시리아 전역에서 아사드 전 대통령의 대규모 무기를 손에 넣기 전에 파괴하는 것이었다.

12월 8일부터 이스라엘의 전투기는 48시간 연속으로 480회의 공습을 실시했다. 탱크, 전투기, 헬리콥터, 선박, 방공 시스템, 스커드 미사일, 해안 대 해상 미사일, 방공 미사일, 공장, 첩보력, 격납고 등 시리아 국가 군대가 수십 년 동안 구축해 온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이는 반군 정부가 군사 역량을 재건하기 위해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같은 몇 안 되는 무기를 손에 쥐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새로이 기능을 갖춘 군대를 설립하려면 조직화와 숙련된 인력 양성에 수년이 걸릴 것이다. 반군 전사 중 한 명이 이스라엘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보이는 헬리콥터의 비행 갑판에서 스위치를 뒤집으며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는 등 일부 동영상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는 눈에 띄게 분명해졌다.

알 아싸드 대통령은 통치 기간의 절반 이상을 시리아를 구성하는 여러 종파와의 내전에 휘말렸다. 이 기간 동안 아싸드는 시리아의 넓은 지역을 파괴하고 50만 명의 자국민 학살을 지휘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시리아 모래와 토양 아래고 위고 숨겨진 화학 무기를 포함한 첨단 장비의 위치를 어떻게 거의 샅샅이 알았을까? 레바논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수십 년 동안 군사 기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정확한 기회를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또한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기 전인 2024년 9월, 이스라엘은 시리아 영토 깊숙한 곳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원정대일 가능성이 높은 비밀 습격 작전을 수행했다.

공군의 정예 샬다그와 669 특공대 등 IDF 병력은 지상군 120명과 함께 시리아에 비밀리에 침투했다. IDF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비밀리에 활동하는 3대 특공대 중 하나인 샬다그는 헬리콥터를 통해 시리아 과학 연구 및 연구 센터의 시설로 이송되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이 시설은 헤즈볼라 요원들과 함께 미사일과 군사 장비의 제조 허브 역할을 했다.

인근에서 이스라엘 전투기의 집중 폭격으로 군인들의 주의가 돌아섰다. 이스라엘이 단순히 무기의 중심을 공중에서 폭격하지 않은 이유는 샬다그 군인들이 방대한 양의 문서를 검색하고 발견한 후 폭발물로 시설을 조작하고 원격으로 복합 시설을 폭파했기 때문이다. 문서를 통해 시리아의 모든 주요 현장, 창고 및 군사 공장이 밝혀졌다. 모든 이스라엘 군인은 무사히 귀국했다!

시리아 신행정부의 지도자 알샤라아가 카타르의 국무장관과 그의 수행원들을 환영하는 모습. 현재 많은 외국 관료들이 알샤라아를 방문하고 있다.

아흐메드 알샤라아 알리사 아부 모함메드 알졸라니

자연계에선 공백이 환영 받지 못하기에, 시리아가 함락되자 서방 지도자들을 위한 새로운 권위의 목소리를 내는 자를 찾기 위한 노력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시리아의 잘생긴 반군 지도자 아흐메드 알샤라아는 아랍 뉴스 채널에 출연했다. 긴 수염을 다듬고 군복을 벗고 정장과 넥타이를 매었다. 그는 이성적으로 희망의 말을 전했다. 알샤라아는 뉴욕 타임즈와 유럽 언론에 빠르게 포착되었다.

실제로 알샤라아는 아랍 세계에서 아부 모함메드 알졸라니로 알려져 있었다. 알졸라니는 한때 IS와 알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한 적이 있다. 결국 그는 스스로 테러 단체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HTS)을 설립했다. 알졸라니는 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전 세계에서 수배 중인 미국의 5대 테러범 중 한 명이었다.

알졸라니는 기독교인, 드루즈족, 알라위파에 반대하는 폭력 캠페인에 참여했다. 일부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의 HTS 군대는 극단주의 이념에 반대하는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 마을 전체를 학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하드주의자들은 자동차 폭탄 테러, 자살 공격,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무차별 포격을 자행했다. 알졸라니 민병대가 통제 하의 여성들은 종종 전사들에게 강제 결혼을 강요 당했다. 그래서 미국은 그에게 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아싸드의 몰락 전, 아부 모함메드 알졸라니는 무장하고 극도로 위험한 인물로 여겨졌다. 그의 체포에 1천만 달러의 포상금을 건 미국 정부의 포스터.

서방식 지혜

서양인들이 중동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 상황이 있다면, 테러리스트들은 무기 훈련보다 전략적 서구 사상 연구에 시간을 더 쏟는다는 것이다.

알졸라니(현 아흐메드 알샤라아)가 민주적 미래를 약속하며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세계 언론에 연설하기 시작했을 때, 전 세계는 경청하기 시작했다. 몇몇 멍청한 이스라엘 기자들조차도 아랍 기독교인과 소수 민족은 물론 다수의 아랍 반대파를 학살하고 고문해 온 피비린내 나는 악랄한 테러리스트가 부드러운 정치인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 큰 소리로 궁금증을 드러냈다.

2024년 12월 20일, 미국의 고위 관리인 바바라 리프는 다마스쿠스를 방문하여 알샤라를 만났다. 그녀는 그가 여성의 권리부터 모든 공동체의 평등한 권리 보호까지 다양한 문제에 있어 "매우 실용적"이고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즉시 미국은 끔찍한 테러 활동을 벌인 알샤라아의 머리에 걸린 1,000만 달러의 포상금을 없앴다. 그는 HTS 군대를 해산하고 시리아의 모든 민병대로 구성된 대규모 군대를 만들 계획이기 때문에 미국 테러 감시 목록에서 HTS 군대에 대한 삭제 요청을 할 필요도 없다. 그는 4년 이내에 선거를 약속했으며, 그들은 3년 안에 새 헌법을 제정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알샤라아를 믿어도 될까?

서방의 언론인과 지도자들은 알샤라아를 실용적인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긍정적인 사고가 현실을 구성하는 열쇠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이 지역의 해결책과 시리아 난민들의 서방 국가로부터의 본국 귀환을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멀리 떨어진 이슬람 땅에서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현지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면 된다.

시리아가 함락된 첫날, 새로운 지하드주의 지도부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리아의 드루즈족 여섯 명이 모여 이스라엘에 자신들을 이스라엘 영토로 흡수해 달라고 공개 간청했다. IDF는 시리아 드루즈족에 대한 보호를 약속했지만, 합병에 대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

또한 이스라엘 골란 고원의 드루즈 주민들은 1967년 전쟁 이후 언젠가 시리아에 다시 합류하기를 바라며 거부했던 이스라엘 시민권을 적극적으로 취득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스라엘은 기꺼이 응해 왔다.

다른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에 녹색 왕자로 알려진 모싸브 하싼 유쎄프는 하마스의 공동 창립자의 아들로 거듭난 기독교인이다. 그는 수년간 이스라엘을 위해 간첩 활동을 했으며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강력한 옹호자이다. 그는 알샤라아를 인정하거나 정당성을 부여하지 말라고 서방에 명시적으로 경고했다. 그는 "새로운 이슬람 제국이 탄생했다. 먹이지 말고 굶겨라."라고 말했다

이미 새로운 연립정부를 구성한 알졸라니는 요르단, 튀르키예 및 기타 지역에서 온 알려진 외국 테러리스트들을 새 정부에 투입시켜 국제 사회와 많은 시리아 시민들을 경악케 했다. 이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여전히 이 새로운 수니파 무슬림 지도자들이 시리아의 대규모 소수 집단, 특히 기독교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집중되어 있다.

아싸드에 반대하는 수많은 반군 단체 중 하나가 또 다른 시리아 마을을 장악했다.

기독교인 및 소수자

이스라엘의 현재 지향점은 이것이다. 한번 이슬람 테러리스트는 영원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스라엘은 알졸라니가 표면적으로 자유를 선포하면서 영리하게도 단계적으로 샤리아 법을 도입하는 역사적 선례를 따르고 있다는 데 한치의 의심도 없다. 제루살렘 포스트는 "알졸라니는 실용주의자가 아니라 정교한 전략가다."라고 전했다.

시리아 기독교인들은 지난 역사를 통해 이슬람 통치자들의 방식을 잘 알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이슬람주의자들은 한 지역을 점령했을 때, 다양한 소수 민족에게 종교적, 문화적 자유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는 "법치주의"라는 문구를 찾아보라. 그것은 곧 샤리아 법을 의미한다.

현재 인터넷에는 시리아의 이슬람 민병대가 적들의 목을 베는 영상이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 지금 바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희생자는 아마 알라위파 시민들일 것이다. 쿠르드족도 있을 것이다. 또 종교적 소수자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기독교인도 포함될 것이다.

이것이 새로워진 시리아다.

역사적으로 샤리아 법 하에서 이슬람 국가 내의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수는 거의 0까지 줄어들었다. 기독교인들이 도망치고 납치되며, 인신매매되거나 살해되면서 그 수가 감소한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숫자의 증가는 출생을 통해서만 공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무슬림은 기독교 개종이 권장되지만, 기독교인이 무슬림에게 신앙을 전하려 했다가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시위 속에서 아이러니컬하게 보일 수 있지만, 중동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 그리고 지하드주의를 따르지 않는 무슬림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은 놀라울 것도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존재와 안정을 지원하는 것은 실제로 만인에게 유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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