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유대인 - 그리고 당신이 들어본 적 없는 다른 역사적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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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24년 1월 3일 |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
유대인들이 전적으로 아랍인들의 땅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라는 오해와 달리, 이 전단지는 오토만 제국과 대영제국 시절 유대인 민족기금이 팔레스타인에서 합법적으로 넓은 땅을 사들인 모금 운동을 선전하고 있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서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고 외치면, 우리는 “너희 의견은 사실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대응한다.

누구로부터 해방한다는 건가? 무엇을 위해? 팔레스타인이 언제 자유로웠는지 이야기해보라. 그래야 목표를 알 수 있으니까. 아래는 이스라엘과 이 지역에 대한 수많은 흥미로운 사실들 중 15가지를 추린 것이다. 사람들이 시위를 하는 주제에 대해 그만큼 열정을 갖고 공부를 한다면 지금과는 생각이 달라질 것을 우리는 믿기 때문이다.

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에 아랍 국가가 아니었다. 유대 민족은 다른 이들의 국가를 빼앗은 것이 아니다.
  • 사실 대영제국이 중동을 통치하고 있었고, 결국 불안한 그 지역의 통치에 질려 UN에 결의를 요청했다.
  • 대영제국이 세계1차대전 이후 이 지역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기 전, 오스만투르크가 1500년대 초반부터 통치해왔다. 투르크 족은 아랍 민족과 다르다.
  • 사실, 팔레스타인은 어느 나라의 이름이었던 적도 없다!
②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 로마다!
  • 유다 땅에서 유대성을 없애고자 로마는 주후 130년대 중반에 그 땅을 필리스티아(팔레스타인)이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성가신 유대인들의 봉기(주후 70년, 132년)에 질려 유대인들을 다 추방하고 지명을 바꾸기로 한다. 이 이름은 옛 블레셋에서 따온 것으로, 현대의 아랍 민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블레셋은 주전 600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절됐다.
  • 팔레스타인은 지역이었지 국가가 된 적이 없다. 팔레스타인 국가, 혹은 정부의 대통령이 있었던 적도 당연히 없다. 마치 미국의 한 지역이긴 해도 따로 정부를 가진 적 없는 뉴잉글랜드와 같다 할 수 있다.
  •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랍이라는 민족의 특성과 아무 관계가 있었던 적이 없다.

고대 팔레스타인을 묘사한 1845년 영국에서 판각 및 인쇄된 19세기 지도. 출처: eldadcarin/Getty

③ UN 분할안 투표(1947년 11월 29일)는 이스라엘에만 국가를 세울 권한을 준 것이 아니라, 요르단강 서안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에게도 이스라엘 옆에 독립 아랍 국가를 세울 수 있게 해줬다.

 

  • 아랍은 “분할"을 거부했다. 그들은 1948년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는데 거절한 것이다.
  • 유대인들은 “분할"을 받아들였고,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은 재탄생했다.
  • 서안지구의 아랍인들은 요르단의 일부가 되었고, 가자의 아랍인들은 이집트에 속하게 됐다.
  • 아랍인들은 UN 투표 다음 날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언했다. 5개 아랍 국가와 현지 주민들이 신생 유대 국가를 공격했다가 패했다.
  •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아랍 국가를 따로 가질 수 있었는데, 전쟁을 택한 것이다.
④ PLO가 탄생했을 때, 요르단은 서안지구를 통치했다.
  •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안지구는 이미 아랍인들의 손에 있었다. 요르단이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자는 이집트가 통제했다.
  • 그들이 해방시키고 싶어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영토 내에 있었다.
  • 다시 말해, 그들의 목표가 서안지구와 가자에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요르단, 이집트와 싸워야 했다!
  • 물론 그들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절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의 최초 헌장은 온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촉구했다. 그들의 지도에는 이스라엘은 언급도 되지 않는다.
  • 주: 그렇다고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게 아니다. 그들 각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위대한 그들의 가치를 논하는 게 아니라, 역사를 논하는 것이다.
⑤ 1948년 이스라엘이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은 아랍인이든 유대인이든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유대인이 소유한 신문은 '팔레스타인 포스트'라고 불렸다.

질문:

  1. 유대인이 왜 다른 민족의 이름을 따서 신문사 이름을 짓겠는가?
  2. 유대인이 왜 아랍 국가의 이름을 따서 신문사 이름을 짓겠는가?

물론 그럴 리 없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는 아랍의 한 민족을 지칭한 적이 없다. 기억하라. 로마가 지어낸 이름이다. 만들어진 서사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 대변인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만들어진 민족'이라고 한 것이다.

⑥ 예루살렘은 다윗 왕 통치 하에 이스라엘의 수도였다. 팔레스타인은 물론, 다른 어떤 나라의 수도였던 적이 없다. (이스라엘이 통치하기 전엔) 아랍에게 의미있는 도시였던 적이 없다.

  • 다시 말해, 히브리 성경엔 나와도 꾸란엔 이런 내용이 없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시 137:5~6)”
  • 오토만 제국은 400년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렸다. 그들이 무슬림이었지만, 그 도시는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 유대 민족이 돌아와 그땅의 소유권을 찾기 시작한 후에야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 중요해졌다.
  • 유대인들은 그 땅을 구매했지 훔친 적이 없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어떻게 훔치겠는가? 투르크 통치 하에 있었는데 말이다. 유대인들은 유대민족기금이라는 것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땅들을 사들였다.
  • 마크 트웨인이 투르크 통치 하의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 이런 기록을 남겼다. “토양은 너무도 비옥하나 황폐한 나라여, 통째로 잡초에 버려졌구나…침묵과 애통의 광활한 땅이여…우리는 다니는 모든 경로에서 인간 하나를 보지 못했다. 어느 곳에도 나무 한 그루, 관목 하나 찾기 어려웠다. 무가치한 흙에서도 잘 자라는 올리브와 선인장조차 그 나라를 가히 버렸도다.”
  • 1919년, 현재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땅에 약 50만의 아랍인들이 있었다. 그 숫자는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시점까지 130만으로 급성장했다. 다시 말해, 1919년부터 1948년까지의 30년 동안,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절반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중동 전역에서 이민자로 왔는데, 유대인 개척자들이 땅을 고르고 농장을 세우면서 기회가 창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팔레스타인 문화에는 긴 역사가 없으며, 그들은 그저 이 도시를 따른 것일 뿐임을 증명한다.
⑦ 이스라엘이 1967년에 예루살렘을 수복했을 때는 팔레스타인이 아닌 요르단으로부터 그 도시를 탈환했다.  

질문:

  • 1948~1967년에 요르단이 그 땅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왜 팔레스타인이 예루살렘 소유권을 주장하는가?
  • 1948년에 요르단 사람들은 왜 서안지구에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지 않았는가? 그들이 가진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 이유는 간단하다. 요르단은 요르단강 동편에 살던 아랍인과 요르단강 서편의 아랍인을 구별하지 않았던 것이다.
⑧ 이스라엘은 6일 전쟁 중에 요르단을 공격할 계획이 없었다.

요르단의 후쎄인 왕은 이집트의 나쎄르 대통령이 거짓으로 알려준 정보를 믿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말해줬던 것이다. 후쎄인 왕은 더 많은 땅을 차지할 욕심에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요르단 군대는 불과 며칠 만에 요르단강 뒤로 쫓겨났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1967년 예루살렘을 탈환하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을 손에 넣은 것은 6일 전쟁의 군사 목표 중 하나가 아니었다. 요르단이 준 선물이었다.

이스라엘은 UN을 통해 요르단 왕에게 이스라엘은 요르단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언했다. 그들이 이 충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예루살렘은 아직 요르단이었을 것이다.

1968년 5월 17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거리를 행진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로 통일 예루살렘 1주년과 독립 2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출처: Keystone Press/Alamy Stock Photo

⑨ 팔레스타인어라는 언어는 없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랍어를 쓴다.

⑩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풍부하지 않다.

중동의 아랍 역사는 풍성한 반면, 팔레스타인의 문화가 수 세기를 거슬러올라간다는 내용이 자세히 담긴 역사책은 없다.

⑪ 중동 대부분의 아랍 국가는 생긴지 얼마 안 됐다.
  • 요르단은 1922년에 대영제국이 세웠다. 그들은 옛 팔레스타인의 80%를 차지했고, 트랜스요르단을 세웠다. 이들은 1946년에 독립했다.
  • 시리아는 1946년에 나라가 되기까지 프랑스의 통치 하에 있었다.
  • 레바논은 1943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이라크는 1958년에 독립 국가가 되었다.

이 나라들은 오토만투르크 제국 내에서 세계1차대전 이후에 생겨났다. 1920년 산레모 회의 이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회의들의 목적은 어느 연합군 국가가 오토만제국에서 패배한 지역 중 어느 부분을 맡을지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⑫ (이란, 튀르키예 등 중동의 비아랍 국가들을 빼놓고도) 아랍 국가들의 총 면적은 이스라엘 1.6%와 비교가 안 되는 98.4%다.

⑬ 유대 민족은 1800년대 후반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아랍 민족이 아닌 투르크가 통치하고 있었다.
  • 이 땅의 모든 부분을 돌아온 유대인들이 돈 내고 산 것이지, 전혀 훔친 바가 없다!
  •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던 1948년에도, 아랍인들은 새로운 국가에 와서 함께 살도록 초청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여 중동의 가장 진보적인 아랍인들이 되었고, 시리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본 적도 없는 자유를 누리게 됐다. (나는 아랍인들이 운전 연수 받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스라엘의 아랍인들은 중동에서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완전한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아랍인이다.
  • 하지만 80만 가량의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났는데, 5개 아랍국이 신생 유대 국가를 짓밟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도박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들은 난민이 되었다.
  • 아랍 국가들은 이 난민들을 자국으로 편입시키는 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난민 캠프에 가둬두고 있다.

1901년, 오토만, 그리고 이후 대영제국 통치 중에 유대민족기금 캠페인이 토지 구매를 목적으로 세워졌다. 출처: Wikipedia

⑭ 이스라엘은 아랍인을 포함해 아무도 돌보지 않는, 늪지대에 해충이 가득한 불모지였다.

유대인들이 돌아오기까지 이 땅은 수 세기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이 돌아와 이 땅이 번창하고 생산적으로 만든 후에야 이 지역의 아랍인들이 관심을 기울였고, 그때 팔레스타인 서사가 만들어졌다.

⑮ 예루살렘의 종교적 의의

예루살렘 또는 시온(예루살렘의 기초가 되는 산)은 히브리 성경과 신약에 1,000번 가까이 나타나는 반면, 꾸란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역사적 진실이지 아랍인들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거나, 인종 차별을 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랍인들을 사랑하시며, 아브라함과 맺으시고 이삭, 야곱을 통해 확정하신 언약을 무시하실 수 없다.

저자의 허락을 받아 재게재

론 캔터는 셸라누 TV의 대표 겸 CE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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